기간: 2023.07.09.~22.
장소: San Francisco State University 및 샌프란시스코 시내 일대
학과에서 간 전공 연수였기에 같이 간 일행 역시 이 글에서 언급이 되긴 하나 무턱대고 그들의 실명을 까발릴 권한까지는 내게 없기에, 이 글에서는 모두 별명으로 처리하였다. 이 글은 무언가 전문적인 내용을 담았다기보다는 사학 전공하는 사람 1이 생각나는 대로 적은 무언가라고 생각하고 읽는 것이 더 편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2023.07.09.
10시간 조금 넘는 비행 끝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완전히 자유로운 여행은 아니고 연수를 목적으로 온 것이지만, 이러한 방편으로도 보통의 경우라면 가기 힘든 미국을 갔다 온다는 것에서 이번 연수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입국 수속은 생각 외로 시간 걸릴 것 없이 진행되었다. 다만 공항에서 주립대까지 가는 과정상 차량 대여가 불가피했다는 점, 업체와 컨택하는 것 때문에 진땀을 좀 뺀 것이 현지 도착하자마자 진을 다 뺀 요인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공항에서 주립대까지 차량을 써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거리는 절대 도보로 이동 못 하니까. 물론 대중교통으로도 접근할 수는 있지만, 당시 우리의 손에는 주립대학에서 제공하기로 한 대중교통 정기권이 없었고 이곳 지리를 모르기에 방법은 하나로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업체와의 컨택 때문에 진땀 빼는 것을 보고 ‘많이 경험하다 보면 좀 익숙해지고 여유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교수님의 조언이 있었지만, 그 말을 들으며 일일이 완벽을 기해야 한다고 여기는 이놈의 성격상 ‘이 성격 계속 가지고 가다가는 제 명에 못 죽을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도 무사히 도착했고 수속 역시 별 탈 없이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첫 단계는 무사히 끝났다.
처음 미국 땅을 밟았을 때 공항에서 느낀 것은 ‘예상외로 여기 안내에 한국어가 포함되어 있구나’라는 것이었다. 물론 중국어-일본어-한국어-스페인어 순서이긴 했지만, 나름 여기 들락거리는 한국인이 무시 못 할 수준으로 많기에 이렇게라도 해놓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순서는 아마 자주 들락거리고 이미 이곳에 살거나 일하고 있는 인구수에 맞춰 그리 써놓은 것이 아닐까 싶다. 미-중 패권 경쟁 내지는 ‘신냉전’ 시대라고 한다지만, 경제적으로건 인간적으로건 결속을 끊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해진 지금의 시대를 보여준 단서 중 하나가 아닐까.
두 번째로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은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상당히 희한한 모양새를 한 산의 모습일 것이다. 뭐랄까, 나무를 심다가 만 듯한 모양 같달까? 보통 한국에서 보는, 나무로 덮여있어 초록색으로 도배한 것 같은 모양 내지는 정말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과 바위만 있어 풀만 겨우 자라는 산을 위주로 보다가 이런 산을 보다 보면 산의 모양에 대한 이질적인 느낌을 지우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래도 이곳의 토질이나 기후 특성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그 당시에는 추측해보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추후 알게 되었는데, 그 점은 뒤에 밝히겠다.) 물론 우리나라의 산이 그렇게 된 것과 우리가 가지는 산에 대한 이미지는 1960~70년대에 집중적으로 실시한 녹화사업과 같이, 관(官) 주도로 나무를 심었던 우리의 경험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강렬히 느낀 것은, 역시 우리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드넓은 땅덩어리였을 것이다.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대중문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0년이 넘은 고물차를 똥차라고 욕하면서도 안 버리는, 아니 못 버리는 모습이 심심찮게 나오는 데에는 이 땅의 넓이가 차지하는 지분이 제1일 것이다. 그 점에서 ‘축복받은 땅’을 가졌다는 말 역시 나왔을 테고 말이다. 물론 ‘영국의 쌍둥이스러운 국가’이자 ‘영국의 최고이자 최악의 발명품’이라는 미국의 전체 역사를 생각한다면, 하워드 진이 기존의 프론티어 중심, 개척자 정신 중심의 사관을 비판하며 민중사관을 괜히 만들었겠냐는 소리 역시 충분히 할 수 있겠지.
-2023.07.10.
* OT, 현장수업(Castro street, Dolores park 등)
첫날이라 그런지 할 일은 많다. 평소 바쁠 때 비하면 그리 바쁘진 않은 날이었다지만, 시차 적응과 첫날의 휘몰아치는 일정 소화 때문이었을까, 저녁에 돌아와 샤워하고 개인 정비 끝내자마자 일정 회의할 때 되어서는 다음과 같은 마술이 일어났다. 그렇다. 일정 관련해 미리 뽑아놓은 목록은 일행한테 넘겨주고서, 병상에서 임종을 앞둔 이 마냥 침대에 누워 회의에서 겨우 몇 마디 하는 마술 말이다. 장삐쭈 <신병> 시리즈 외전에 나오는 주임원사식 발성으로 겨우 몇 마디 했다고 하면, 당시와 얼추 비슷할까...... 사실 이 일에 대해 현지에서 기록한 것도 그 다음 날인 7월 11일 아침이었다. 내일모레부터는 좀 나아지겠지.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첫 일정에서 보고 느낀 점 중 기억에 남은 것으로, 공원에서의 모습과 식사, 대중교통 시스템을 얘기해볼까 한다.
공원에서 본 것 중 가장 신선했던 충격은 바로 돗자리 없이 맨몸으로 천연잔디 위에 배 깔고 누워서 뭔가를 하거나 잔디밭 위에 누워 한숨 자고 있어도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고, 그런 행위에 일말의 거리낌 역시 없다는 점이었다. 아마 한국에서 그러는 모습을 일반적인 한국인이 봤다면 바로 ‘야, 잔디밭 아무데나 그렇게 앉고 하면 쯔쯔가무시 걸린다’거리며 진드기 걱정부터 하지 않을까.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그런 생각부터 먼저 했었다.)
두 번째로 내가 미국에 왔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식사에서였다. 처음 주립대학에서 먹은 미국식 조식을 포함해 내가 현지에서 먹은 식사의 전체적 평은 뭐랄까, ‘야채가 참 없구나’ 싶은 것과 ‘지독하게 짜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며칠 정도야 맛있게 먹겠지만, 계속 이렇게 장기간 먹으면 심장과 혈관, 췌장, 신장이 무사하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심심찮게 들었달까? 물론 그걸 버틸 능력이 되니까 이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먹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샐러드 형태로 보는 생야채는 보기가 힘든 대신 과일은 매일 제공된다는 점에서, ‘이 동네는 과일이 야채 대신인가?’라는 생각 역시 해봤다. 웃긴 것은 아침에 식당에서 제공되는 식단을 보며 카투사 출신들 하는 말이 자기들이 아침마다 먹는 식단이랑 판박이라고 했던 점이었다. 물론 나를 포함해 한국군에서 복무한 군필자들은 다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것들 아주 편해 자빠졌었구만’이라고 말이다. 물론 이것도 하루 이틀이지, 계속 먹으라 하면 양식이 입에 맞는 자라 해도 언젠가는 돈 주고서라도 밥 찾아 먹지 않을까. 그리고 무시무시할 정도로 짠 음식 간은 그닥 부럽지는 않았다.
음식에서 가장 많이 느낀 또 다른 점 중 하나는 분량이었다. 시차 적응 문제 때문에 Cho가 아주 그로기 상태가 되어 죽으려 들길래, 날도 좀 덥고 하니 열도 좀 식힐 겸 애 당분 보충시켜서 좀 소생시키자는 의견이 나와 아이스크림 한번 먹자는 결론으로 귀결된 적이 있었다. 그래서 Castro Street에서 현장 수업 끝나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렀는데, 내는 돈에 비해 양이 보통 이상이었달까, 6달러 내고 먹는 아이스크림이 한국에서 그만큼의 돈 주고 먹는 양의 1.5배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내가 평소 먹는 양이 평균적으로 0.7인분인 것도 감안해야겠지만 말이다.)
대중교통 시스템에 대해서는 이후에도 많이 언급되지만, 솔직히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내에서도 대중교통이 굉장히 잘 구축되어있는 축에 속하는 도시 중 하나이다. 당장 거기서 조금 떨어져 있는 LA만 해도 대중교통이 설치되어있는 건지 만 건지 싶은 요하네스버그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곳임을 감안한다면, 여기는 굉장히 잘 되어있는 축에 속한다. 물론 한국식 기준을 들이대면 할 말이 많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립대학으로부터 정기권을 받아 사용한 주요 교통수단이 바로 MUNI 시스템이었다. 물론 버스나 Uber 택시 써도 되고, 시외로 나갈 때는 BART라는 경전철 역시 쓸 수 있고 실제로 일정 내내 많이 썼지만, 그렇다 해도 우리가 가장 많이 썼던 수단을 꼽으라면 역시나 MUNI 시스템일 것이다. 어떻게 생겼는지를 대강 설명하자면, 지하철과 노면전차를 혼합해놓은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나라 지하철과 같이 선로를 차도와 분리해 운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선로는 아예 차도 위에 선로를 놓고 운용하는 점을 보면, 흡사 1960년대에 볼 수 있었던 노면전차 같은 느낌도 드는 대중교통이랄까?
다만 심심하면 지연이 일어난다는 점과 함께 문짝이 고장 나서 탑승자 전원 하차 같은 돌발상황이 가끔씩 일어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한국의 대중교통 시스템이 욕을 안 먹은 적이 없긴 하지만 이 동네와 비교하면 세계적으로 꿇릴 것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달까? 문짝 고장 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하차당해 다음 열차를 기다리며, 플랫폼에서 나는 ‘환승 시스템까지 다 포함해서 조밀성, 체계성, 운임까지 종합 평가하면, 한국의 대중교통 시스템은 체계성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일본 철도 시스템도 압살해버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다소 ‘뽕 맞은 듯한 생각’을 해봤다.
*LGBT Community, Castro Street
-1950~60년대에 등장한 히피 문화와 함께 시작된 공동체. 물론 이러한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전 세계에 산재해 있긴 하지만, 이곳은 1호점 같은 네임드급 커뮤니티라고 보면 되겠다.
-캘리포니아가 원래 스페인령이었다가 미-멕시코 전쟁 이후 미합중국의 정식 주로 편입된 과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볼 수 있는 주택 다수는 화려한 건물 채색 등 스페인-멕시코 주택에서 볼 수 있는 특성이 강력하다는 특징을 가진다. Castro Street 역시 말이다.
*Hispanic Community, Mission Street
-Castro Street 옆 구역. 밤이 되면 불 켜지고 활기 넘치는 화려한 공간이 된다고 한다. 물론 통금 등 여러 사유로 인해 직접 간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CAMP(Clarion Alley Mural Project)
-이 프로그램의 시작은 냉전기 미국이 중남미 지역을 대상으로 자행한 쿠데타 사주, 지역 및 세계 단위의 전쟁 개입 등을 미술을 통해 고발 내지는 비판하려 시도한 프로그램에서 시원을 찾는다. 현대에는 인종, 마약-약물 문제, 젠트리피케이션, 인종주의 등을 고발하는 등의 형태로 취급 주제를 확대해 작품활동을 진행하며, 그 결과는 민중예술의 대표적 표현 수단인 벽화의 형태로 확인할 수 있다. CAMP에서의 그림을 보면서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지금 그림 스터디 하는 두 명과 같이 왔으면 어땠을까?’ 아마 신나서 온갖 얘기를 다 하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본다.
+) 미국에 와서 길거리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래피티일 것이다. 물론 전철 등 공공시설물에는 그래피티 하지 말라고 경고문구를 붙여놓긴 하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는 듯하다. 자유지상주의 속에서의 규율에 대한 본성적인 거부반응인 것일까, 아니면 이러한 행위에 대해 그닥 거부반응이 없는 것인가? 물론 우리나라에서 그래피티랍시고 한 것의 대부분이 베를린 장벽 조각 훼손 등 반달리즘 형태로서 물의를 일으킬 사안으로 알려지다 보니 그리된 것 역시 고려해야겠지만, ‘예술의 장르로서 받아들일 것인가, 예술 이전에 공공의 규율의 문제를 따질 것인가’의 문제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2023.07.11.
오전수업: History in California
오후일정: 시내 관광.
(Cartoon Art Museum, Ghiradelli Square, USS Pampanito Museum, Pier 39)
저녁식사: Cioppino
이날은 첫 이론 수업일이었다. 우리가 강의식에만 너무 익숙해진 점을 의식해서일까 처음에는 자기소개를 해보자는 시간을 가졌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교수님이 미리 손을 쓴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학생이 강의 중에 말을 할 기회가 잘 없으니, 이 기회에 영어로 말하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달라고 현지 담당 교수에게 미리 메일을 보내 놓았다고 한다.) 다만 개인적으로 자기소개 시간이 그닥 내키지는 않았다. ‘굳이 내 개인적인 면을 까발려야 하나’는 생각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바로 인정이 불가피한 요소인 내 지독한 회화 실력을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교수님이야 내가 연구보조원으로 일하고 있는 것을 언급하시며 영어 잘 해서 보조원으로 뽑힌 것 아니냐 묻기는 하셨다지만, 솔직히 그 영어는 사료 해석할 때 쓰는 것이다 보니 독해만 주구장창 하지 회화를 자주 할 리가. 그나마 지금 하는 것도 이론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것이라기보다는 정규교육과정 내내 배웠던 걸 무의식적으로 적용하는 것이기에, 이게 알고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도록 하겠다. 덕분에 내가 간만에 시전한 영어 회화에서 얼마나 횡설수설하는지를 아는 시간을 스스로 마주했다. 물론 강철은 쳐맞아야 단련이 된다지만, 그 과정이 험난하기에 반은 빈말 섞인 불평이라 보면 될 것이다.
*Cartoon Art Museum
미국계열 애니메이션이나 미국산 히어로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가봐도 좋을 것이다. 전시 분량은 건물 1층 정도로 딱 지역 박물관 정도의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미국식 카툰도 볼 수 있지만, 동시에 미국 애니메이션의 출발부터 현재까지를 전시하는 공간도 있었다. 아마 조셉 바베라의 <톰과 제리> 시리즈나 디즈니 <미키 마우스> 시리즈 콘티와 셀, <개구쟁이 스머프>, <형사 가제트> 원화는 미국산 애니메이션을 그리 자주 안 보는 사람이라 해도, 친숙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Ghiradelli Square
원래 초콜렛 공장지대였던 것을 시 차원에서 상점가를 곁들인 광장으로 개조한 것이라 한다. 온 김에 Hot pudge sundae 하나 사서 둘이 나눠 먹었는데, 느낀 점은 하나였다. ‘진짜 달다. 혀가 저릴 정도로.’ 솔직히 이거 하나 먹으면 하루치 당분 요구량은 다 초과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시럽에 더해 초콜렛 안에 카라멜 필링을 채워놓았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흔히 미국인 하면 떠올리는 체형 중 하나를 만든 요인 중 하나는 이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그만큼 먹었기에 진화하듯 발전해온 것이 췌장의 기능이 아닐까. 아마 한국인이었으면 그 정도로 살이 불기 전에 심장이나 췌장에 문제가 생겨 죽었을 것이다.
*USS Pampanito Museum
태평양전쟁 당시 활동한 미 잠수함답게 일본해군 전투함정 공격뿐만 아니라 통상파괴, 해군항공대 조종사 구조 작전까지 전담한 잠수함 USS Pampanito를 개조한 박물관이다. 박물관 입구 위에 걸린 플래카드를 보면, 2차 대전기 여성의 사회참여로 대표되는 ‘We can do it! 슬로건과 리벳공 로지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해외답사 당시 갔던 블라디보스토크의 S-56 잠수함 박물관이 겹쳐보이는 곳이랄까. 격실 하나를 별도로 분리해 당시 쓴 물품 등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던 S-56 잠수함 박물관과 비교했을 때, 여기는 ’시설 그 자체를 보존한다‘에 근접했다. 다른 것 전시 없이 내부 형태만을 온전히 보존할 것인가, 안에 주제와 연관된 다른 유물도 같이 전시할 것인가의 문제는 군사장비를 활용한 박물관에서의 전시 기획자들이 할 최대 고민 중 하나일 것이다. 안을 돌아보며 든 생각은 ’확실히 이 당시에도 미국은 승무원 거주성을 최대한 보장하려 노력했다‘는 점이었다. 소련제 잠수함과 비교하면 그나마 공간 여유가 더 느껴지는 곳이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그래봐야 잠수함의 근무환경은 예나 지금이나 열악함으로 순위를 다투지만 말이다. 괜히 미군 잠수함 학교에서 항상 강조한 것이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가 아니다. 어지간한 나라가 공통적으로 함정근무자들과 잠수함 승조원들에게 식사에 있어 최대한 편의를 보장해주려 노력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임을 안에 들어가 보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녁식사 때 들른 식당에서 피자를 시켰는데, 역시나 여기도 피자는 짜서 그때부터는 그냥 이 동네 특징인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프론티어 ’개척‘다니던 시절에 열심히 돌아다니다 보니 염분 섭취가 필요했던 당시의 식습관이 아직까지 유지되는 것일까? 솔직히 여기에 와서 식사 자체가 입에 잘 안 맞는다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밥 먹는 내내 이 간을 현대에까지 계속 유지하면 심장이랑 혈관이 그닥 성치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심심찮게 들었달까......
+) 기숙사의 세탁실
: 세탁기의 성능이야 어차피 여기나 거기나 별 차이는 없는데, 문제는 건조기에서 나왔다. 모든 건조기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여기 건조기는 우리나라에서 시판되는 모델처럼 먼지 필터를 카트리지처럼 분리해 닦을 수 있는 형태가 아니라, 아예 필터를 나사로 박아놔서 정비를 하지 않는 이상에야 근본적인 필터 청소가 불가한 모델이었다. 그 말은 뭐다? 잘못하면 지뢰 밟는 거고, 빨래 다시 돌려야 한다는 거지, 뭐.
-2023.07.12.
현장수업: Chinatown, Lombard street, Postmouth square, City light bookstore 등
*Chinatown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살아남을 수 있을법한, 어마무시한 정착 능력을 선보이는 중국인들의 커뮤니티 앞에서 샌스란시스코가 예외로 남을 수 있을 리가 있겠나? 물론 농담이고, 여기 차이나타운은 1849년 골드러시 직전부터 구직 등의 이유로 유입된 중국인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한 공간이다. 초기 미주에 정착한 중국인 다수가 광동성과 홍콩 지역 출신이라, 여기서 쓰이는 중국어는 보통화가 아니라 광동어인 것 역시 하나의 특징이다. 물론 보통화를 쓰는 사람이 있긴 하다. 여기 오는 관광객 말이다.
초기 중국인들의 이주-정착에서 빠질 수 없는 의료기관인 동화의원(東華醫院) 역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우리가 갔을 당시에는 개원 120주년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중의학 병원이 중국인 커뮤니티 내에 존재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이다. 하나는 초기 정착 중국인들이 인종차별 등의 여타 이유로 미주 내에 백인들이 쓰는 병원을 이용할 수 없었기에 자체적으로 의료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세운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양의학이 동양 의학과 거쳤던 경쟁 과정의 초기 단계에 있었던 서양의학에 대한 불신이라 볼 수 있겠다. (이걸 서양의학이 지극히 당연하고 익숙한 것이라 여기는 지금의 관점을 잣대로 세워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경락과 혈(穴), 기(氣)로 병과 건강을 설명하는 의학 체계에 수 세기 동안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외과적 시술과 기초과학에 기반한 설명체계라는 완전히 다른 이해 방식을 들이밀었을 때, 별 거부반응 없이 이해 방식을 아예 바꿀 이들이 과연 많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있는 유명장소 중 하나는 바로 포춘 쿠키 가게인데, 여기서 파는 포춘 쿠키의 특징이라면 문구가 상당히 외설적인 것이다. 내가 뽑은 것에는 ‘Old age is time when sight of pretty girl only arouses memories instead of hopes.(나이를 먹었다는 것은 예쁜 소녀가 희망 대신 오로지 기억에서만 떠오르는 때를 이른다.)’라고 적혀있었는데, 이게 그나마 양반이었다. 다른 것들은 이렇게 적혀 있었다.
1. Marriage is good deal like taking bath not so hot once you get used to it.
2. Absent-minded nurse is one who makes patient without disturbing bed.
3. High fidelity is a drunk who goes home regularly to his wife.
4. Marriage is like long banquet with the dessert served first.
5. Slip cover is maternity dress.
6. Kiss is upper persuasion for lower invasion.
7. Cow who gets divorce got bum steer.
8. Nudists are people who go in for altogetherness.
9. Girl should use what Mother Nature gave her before Father Time takes it away.
10. Farmer who can't keep hands off wife better fire them.
11. If you want a youthful figure, ask a woman her age.
12. Fellow who lose girl, forget where he laid her.
13. You never know how a girl will turn out until her folks turn in.
14. Aviatrix who fly upside down sure to have crackup.
15. Shotgun wedding is case of wife or death.
16. Madam is someone for whom the belles toil.
17. Bird in hand is not as good as girl in bush.
18. A mistress is a cutie on the q.t.
19. Drive-in movie is wall to wall car-petting.
20. Woman's best asset, man's imagination.
21. Man with one track mind most likely possesses dirt track.
22. It is very easy to lie with straight face, but it's nicer to lie with curved body.
23. Man will often take girl to some retreat in order to make
advances.
24. Good resolution is like many a modern girl,
easy to make but hard to keep.
25. Boy who know love from A to Z, always make girl say: OH!
26. Sex is most fun you can have without laughing.
27. Eunuch not strange creature, just a man cut out to be a bachelor.
28. The best years of a woman's life usually counted in man hours.
29. Vicious circle is a wedding ring.
30. Next thing to a beautiful girl, sleep is the most wonderful thing in the world.
31. Money is poor man's credit card.
32. I know a girl who started out with a little slip and ended up with a whole new wardrobe.
33. Executive suite better known as sugar daddy.
문구가 이렇게 된 이유가 좀 엽기적인데, 이 가게가 원래 사창가의 ‘가게’여서 그랬던 것이 이유였다. 업소에 방문하는 손님 (이라고 쓰고 오입쟁이라고 읽는 이)들한테 서비스 차원에서 하나씩 나눠주던 것이 이렇게 하나의 사업 아이템으로 발전한 것이라나.......
*Portsmouth square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오래된 광장 중 하나이자 중국인 이민자들의 집결지 겸 아지트인 곳이기도 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나라에 비유하면, 탑골공원의 샌프란시스코 버전이라고 여기면 될 것이다. 탑골공원과의 차이점이라면, 여기는 장기 두는 대신 포커 친다는 것과 함께, 너나 할 것 없이 공장 굴뚝마냥 입에서 담배 연기를 줄창 뿜어댄다는 것 정도일까?
여기서 눈길을 끈 것이 있다면 1989년 천안문에 있었던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원래 시위대가 합성수지로 만들어 세웠다가 시위 진압 때 파괴된 원판을, 여기서 청동으로 복제해 세운 것이었다. 문제가 있었다면 이걸 보고 우리 모두 처음 한 생각이 놀랍도록 일치했다는 것이었다. ‘한국인이라 주장하지만 알맹이는 중국인이나 다를 바 없는 그놈이 여기 있었으면, 이걸 보고 분명히 고장난 발동기마냥 폭주했을 것이다’는 것 말이다. 도대체 뭐가 어찌 되어 먹었기에 우리 뇌가 타지 나와서까지 그놈에 대한 사항으로 잠식당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달까......
중국인들의 아지트와 같은 공간에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진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인들이 가지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자존심? 아니면 중국에 대한 반감? 미국인들의 입장에서야 민주주의는 자신들의 정체성이라 인식함과 동시에 한국 역시 북한의 존재를 인지하기에 민주주의가 중요한 것임을 알 것이라고 생각할 터이고, 현장 수업을 하던 교수도 그리 설명했지만, 사실 사상만큼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또 없을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것에는 현장에서 직접 사는 우리와 뉴스를 통해 피상적으로 접하는 것이 주(主)인 그들의 생각이 아주 같을 수는 없을 것임도 포함될 것이다.
*City light bookstore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중심이 되는 north beach 거리 근처에 있는 서점이다. 이 서점은 1960년대 Beat Generation에 해당하는 작가들이 1주일에 1번씩 회동을 한 곳이다. 그들이 모인 장소는 서점 2층을 가보면 볼 수 있다.
+) Beat Generation은 1960년대에 사회비판적 성격을 띠는 창작을 주로 한 문학 사조이다. 전체적인 계보만 간략히 따지면, 계보는 <위대한 개츠비>로 대표되는 1920년대 ‘잃어버린 세대’에서 출발해 1950~60년대에 등장한 대항 문화인 히피 문화의 뒤를 잇는다고 보면 되겠다.
거리를 둘러보면서 얘기가 나온 것이긴 한데, 미국의 특성 중 하나는 ‘잔인하면서도 희한한 규정으로 유지되는 공간이 아닐까’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거리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사람 중 둘이 코로나 이후의 집세 상승 문제와 가중되는 생활고로 인해 늘어난 노숙자, ‘마약과의 전쟁’ 이후부터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가 된 마약 중독자인데, 이들을 보며 나온 말이었다. 골자는 노숙자나 마약 중독자들이 길거리에서 뭘 하건 개인은 물론이고 공권력 역시 관여하지는 않는데 이들이 공개적인 장소로 진입하는 순간 가차 없이 제지하려는 구조가 얼핏 보면 이해가 안 가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길 가던 중 경찰이 누군가를 체포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며 나온 이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우리 기준에서 보면 경찰력이 말도 안 되게 강한 것과는 별개로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미국인들의 면모 중 하나가 오히려 음지에서는 더 가혹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경찰의 눈을 피해 대로변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아, 그리고 마이크랑 앰프 켜고 길바닥에서 예수 믿으라고 외쳐대는 것들은 여기도 존재하더라. 애당초 근본주의, 복음주의 개신교의 본고장이 미국이고, 그게 수입되어 변형된 것이 길바닥에서 ‘선교’하는 기독교이니만큼 놀라울 것은 딱히 없지만 말이다.
오늘의 일정 중 웃긴 일 하나가 있었다면, North Beach에서 만난 마크 프로서라는 형님(?)의 피자 예찬론이었을 것이다. 피자 가게를 소개해주면서 길바닥에서 피자 예찬론을 펼치던데, 나는 여기서 실제로 미국인이 FXXKING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예찬론을 벌이는 것을 처음 봤다. 물론 카투사 출신들은 ‘원래 미군들 평소 말할 때 입에 달고 사는 표현이 그거라 별로 놀랄 것 없다’고 말했지마는, 그 표현이 발화 상황과 어우러지면서 웃음 무장해제의 순간을 만든 게 아니었을까. 내용은 대강 ‘이 가게 피자가 XX 죽여준다. 마르게리타 피자를 꼭 먹어봐라. 카운터에 가서 마크 프로서, 내 이름을 대면 알 것이다’였다.
-2023.07.13.
미국에서의 몇일간의 생활 중 자잘하게 느낀 것과 본 것으로 시작해볼까 한다.
1. 길바닥에서 낯선 이를 만나도 눈을 마주치면 인사하는 것, 우버 운전기사가 우리 기준에서 보면 에너지가 넘쳐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 아마 한국과 이질적이라 느끼는 첫 번째 요소가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에서 그리하면 미친놈 취급을 하겠지만, 일단 그닥 친분이 없어도 눈을 마주치면 최소한 영업용 미소라도 세팅하고 인사를 하는 게 이 동네의 문화인가 보다 싶어서 식당에서 매번 그리하긴 하는데, 이러다가 해 떠있는데다 보고 태양을 향해 ‘좋은 아침이다, 태양아’라고 인사를 하게 되는 날도 오지 않을까?
2. 지하철에 스크린도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하로 들어가거나 엘리베이터에 타는 순간부터 휴대폰이 통신권 외임을 알리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무선통신 체계가 위대하다는 것을 가장 크게 깨닫는 순간이 있다면, 아마 지하철 타러 플랫폼으로 내려갈 때가 아닐까?
3. 머리로는 알면서도 도저히 마음으로는 이해 안 되는 것 딱 하나 꼽으라면 팁 문화일 것이다.
그동안의 일정 소화와 함께 시차 적응 문제로 바깥을 다닐 체력이 방전되어버린 고로, 오늘의 오후 자유시간은 안식일로 결정되었다. 물론 일행 중 몇 명이 감기 기운이 올라와서 밖을 못 다닐 상황이 된 것 역시 안식일로 설정한 이유 중 하나이지만 말이다.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는 일정도 원인인 듯하지만, 유달리 지랄맞은 학교 부지의 날씨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부지만 벗어나면 봄 내지는 초여름 날씨인데, 학교가 있는 동네에만 들어서면 그 순간부터 안개가 바람 따라 움직이는 게 보일 수준의 바람과 저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리 된 고로 시간이 비어서, 그 김에 학교 도서관에 가봤다.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휴게 공간과 학습 공간 자체와 1인당 배정되는 공간을 더 넓게 만들어놨다는 점과 함께, 도서 분류 체계와 도서 색인카드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검색용 컴퓨터가 장식일 리 없듯 모든 영역에서 도서 색인카드를 다 쓰는 것은 아니고 잡지, 학위논문 코너에서만 있던데, 우리 같았으면 진작에 유물로만 보존될 물건이 색인카드 철제 서랍과 함께 현역으로 놓여있다는 점이 놀라웠달까?
-도서 분류 기호체계 비교
한) 000~900번대 분류에 기초. 기호는 숫자-한글-알파벳 조합으로 부여 /역사는 900번대로 분류
미) A-Z 대 분류에 기초. 기호는 알파벳-숫자-알파벳 조합으로 부여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역사는 D, 미국사는 E로 분류
오늘의 수업에서 일어난 헤프닝이라면, 주립대에 그려진 벽화에 대한 발표를 한 이후 P 선생 왈 ‘아마 후에 교수가 될 것이다’라고 평가를 했던 것이 아닐까? 당시 현장에서는 몰랐고 나중에 얘기를 듣고 나서 안 것이었지만, 솔직히 속으로 ‘이제는 미국으로까지 수출되는 교수(진) 드립인건가’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말이 나온 이유야 복합적이지만 미국인과 실전 영어를 구사할 경험이 많은 카투사 출신 두 명의 분석 결과, 내가 영어로 말할 때의 스타일 역시 그런 말이 나온 원인 중 하나였음을 오늘 알았다. 일반적인 영어 구사자의 억양은 끝이 올라가는데 반해, 내가 구사하는 영어는 끝이 내려가면서 연결사와 끝 부분 발음이 살짝 뭉개진다는 것을 말이다. 문제는 이 말투가 실제로 다큐멘터리에 등장할 법한 교수들이나 미군 대령들이 쓰는 말투였다는 것이었다. 어이없이 웃긴 일이지만, 내가 쓰는 말투가 의도치 않게 여기에 부합한다는 것을 오늘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 입에 쌍소리를 단 것이 있다면, ‘날이 갈수록 내가 꼰대가 되어간다’고 느끼는 사항, ‘왜 요새 애들은 버르장머리가 없냐?’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이 나이에 그 말을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이 말 자체가 ‘요즘 젊은 것들은 너무 버릇이 없어서 큰일이다. 폴리스의 미래가 참으로 걱정된다’는 형태로 고대 그리스 도편에서조차 확인할 수 있는, 하늘과 땅이 마르고 닳을 지경으로 써 먹힌 유구한 역사를 가진 소리인 것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수업 때 지니어스께서 자기 의견에 대해 발표하는데 맨 뒤에 앉은 한 무리의 여자들이 조소하듯 웃어댄 것에 대한 디스로 우리의 성토대회는 막을 올렸다. 물론 본인들의 의도가 그랬건 아니었건은 독심술을 하지 않는 이상 100% 정확히 알 방법은 없지만,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생각을 안 하는 것인가 못하는 것인가? 아니, 남이 수업 중에 본인 의견을 피력하며 발표를 하고 있으면 경청까지는 아니어도 듣는 시늉 정도는 해야지, 뒤에서 ‘니는 짖어라’ 자세로 일관하면서 딴짓하는 마당에 정작 자신들은 수업 때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닥치고 있으면 도대체 뭐가 좋다고 예쁘게 봐주겠는가? 나 역시 복학하고 나서부터 자주 나타나는 이런 현상 때문에 이러한 작태를 틈날 때마다 욕한 게 작년부터였다. 물론 연수가 관광의 성격 역시 가진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는 없지마는, 최소한 연수 명목으로 왔으면 강의 시간만큼은 수업에 임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이 기본적인 태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 역시 느끼는 점이지만, Cho가 요즘 들어 맘에 안 든다고 하는 점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원래부터도 발표에 안 익숙한 제도권 교육환경에서 교육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수업 중에 용기 내서 누군가가 발표하면, 대단하다고는 못 할망정 그 말에 조소하듯 하는 것들이 상상 이상으로 많다는 것 말이다. 그게 오늘의 일이었고 말이다. 뭐랄까, 점점 남 생각은 뒷전이고 제 욕구에만 충실한, 속된 말로 ‘싹바가지가 없어지는 사회’가 되어간달까. 아니면 우리가 그리 느끼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코로나가 망가뜨린 사회적 관계의 편린 중 하나인 것일까? 그런데 결국 본질적으로 생각해보면, 10명을 모으면 그 중 최소 하나는 나사 빠진 놈이라는 법칙 아닌 법칙이 적용된 예가 아닌가 싶다. 지난 대만 전공연수 때에도 진탕 술 먹고, 다음날 수업 무단결석했다가 단체로 조교한테 깨진 애들을 생각해본다면, 그러한 생각을 지울 수 없고 말이다.
+) 어제~오늘의 실시간 레전드 갱신
1. 현장수업 가기 전 일행 기다리느라 기숙사 로비에서 잠깐 앉아 쉬는 중, 학교 탐방하러 온 것처럼 보이는 미국 잼민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런데 한 놈이 나를 보더니 이렇게 묻는 게 아닌가. “Are you professor?” 당시 나 포함해 3명이 같은 자리에 있었는데 그것도 나만 딱 집어 말한 것이었다. 당연히 그로 인해 레전드는 하나 갱신되었다.
2. 아까 말한 것과 같은 P 선생의 ‘미래의 교수(진)’ 드립
3. 아울렛에서 저녁 먹고 돌아다니다가 생판 처음 보는 미국인 여자와 마주쳤는데, 그 여자가 나를 보고서는 “Are you John?”이라고 한 것이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뉘앙스 자체는 ‘야, 너 John이잖아. 왜 나 모르는 척해?’에 더 근접했다. 당연히 우리는 이 무슨 소리인가 했다. 텍스트는 이해가 되는데, 상황이 이해 안 가서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냐?’거리는 이상한 어색함이 5초간 지속되더니 서로서로 이상한 뒷맛을 남긴 채 상황은 종료되었다.
-이러한 레전드 갱신의 결과, 그날부로 내 별명은 PROF.SAINT JOHN이 되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2주를 회상하며: 처음 본 미국의 모습 3 (0) | 2023.08.20 |
---|---|
샌프란시스코에서의 2주를 회상하며: 처음 본 미국의 모습 2 (0) | 2023.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