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0.
TWIN PEAKS 전망대서 야경 관람.
처음 들어갈 때는 무슨 경비초소 같은 곳으로 잘못 들어가는 통에 경비가 지도를 줘서 다시 길을 찾아갔다. 근데 알고 보니, 그 경비가 여기는 길이 없다고 하면서 가는데 한 20분 걸릴 거라며 길을 설명한 것은 차로 가는 길을 생각하고 길을 알려준 것이었다. 그만한 국토에서 살면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일단 이 동네 사람들은 ‘이동은 무조건 차량’이라는 전제를 깔고 가는 듯하다. 직통으로 가는 산길을 통과해 도보로 가면 전망대까지 5분 정도 걸렸던가? 문제는 그날 안개 낀 날씨와 바람, 일몰이 어우러지면서 흡사 공포영화의 스산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통에 누군가 뒤에서 튀어나올 듯한 느낌이 자꾸 들었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 생각은 학교 부지를 보며 계속 생각한 것이기도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의 날씨가 런던과 유사했나 싶은 저렴한 상상을 하며 올라왔다고 보면 될까?
이날 본 기묘한 현상 중 하나라면, 안개가 하도 짙게 끼다보니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에 안개가 스크린 역할을 하는 장면을 봤던 것이었다. 막간 그림자놀이가 가능해졌달까. 이런 상황에서 사진을 찍으면 공중에 빛이 흐릿하게 번진 듯한 모양이 사진에 남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망할 헌병 생활로 인해 24시간 교대체제로 주야장천 밖에 서 있느라 혹한혹서 칼바람에 단련이 좀 됐다지만, 간만에 찬 곳에 오래 있어서였을까 컨디션 자체 저하로 차멀미가 유달리 더 강하게 느껴져서 돌아오는 우버 택시 안에서 미식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흡사 중압가속도 훈련하듯 숨을 계속 끊어 쉬기를 반복했는데, 그걸 보고서 이놈들 한다는 말이 ‘왜 죽으려 하냐, 죽지 마라’와 함께 ‘마차 타던 시절에 익숙해서 차는 안 익숙해 멀미하는 거냐’는 농담이 등장할 줄은 누가 알았을까. 우리의 사학과식 농담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예상할 수 있지만, 전혀 종잡을 수 없는 데서 튀어나오는 그런 식 말이다.
-2023.07.22.
현장수업: GOLDEN GATE PARK, JAPANESE TEA GARDEN
아주 쉽고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전자는 식물원이라고 보면 되고 후자는 일본을 보고 이색적이라며 막연한 환상을 가지다 못해 가끔은 이상한 상상에 목을 매는 미국인들이 전형적인 일본식 정원의 모습을 본떠 만들어놓은 공원이라 보면 되겠다. 물론 좀 극단적인 소리이고, 미국에 정착한 아시아 이민 1~2세대들에는 일본인들도 상당히 많았기에, 이런 시설이 들어서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물론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보니 늘 가지는 특성은 있다. 식당의 메뉴 가격이 하나같이 사악하다는 것 말이다. 여기에 더해 한국에서 더 싸게 금방 구할 수 있는 젓가락와 사케 잔을 최소 8~10불씩 받아 잡수는 사악한 가격의 기념품 가게 역시 추가해야겠지. (기념품 가게에서 하나 기억나는 게 있다면, 미국인들이야 우리만큼의 거부감까지는 들지 않아서인가 히노마루를 박아넣은 하치마키를 팔고 있다는 거였을까?)
솔직히 지금 생각해보면, 원판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을 가진 나라가 고향이기에 공원에서의 모습을 보고 레플리카 그 자체라고 여겨서 그렇게 마음에 크게 와닿는 구석은 없다고 여겼는데, 그래도 서양 한복판에 있는 ‘익숙한’ 동양식 공간이라는 점 때문에 알게 모르게 마음이 편해지는 면 역시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는 짓 때문에, 전적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지는 않은 동양 세계의 구성자이자 이웃의 공간이지만 말이다.
여기서 사진 찍다 우연히 만난 현지인과 얘기를 나눴는데, 그는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담당하는 노교수였다. 어디서 왔는가, 무슨 목적으로 미국에 왔는가, 미국에서 본 것 중 뭐가 좋았는가 등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그는 자신의 경험에서의 한국인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신도 학부 시절 알고 지낸 한국인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알고 지낸 지 2년 뒤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유는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대한민국 남자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군대 문제였지(...) 물론 그 이후로도 그 친구와의 친분은 유지되었고 그로 인해 한국을 몇 번 들렀다고 하는데, 정말 좋은 공간이었다고 그는 회상하며 여기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갔으면 한다는 말을 끝으로 우리는 서로 갈 길을 갔다. 미국에 있으면서 한국과 다른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것이 있다면, 길에서 만드는 짧은 인연이 실제로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에서 길바닥서 아무나 붙잡고 말할 수 있나. 그걸 진짜 하면 미친놈으로 취급되겠지.)
-2023.07.22.
연수 마지막 날
공식 일정은 어제부로 끝났고, 오늘의 기록은 어제오늘의 일을 통합해 쓴 것이다. 공식 일정의 마지막 절차인 수료식 이후에는 미술관을 못 가본 것이 아쉬워서, 현대미술관을 갔다 왔다. 여기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의 현대 미술에 관한 전시를 볼 수 있다. 알렉산더 콜더의 모빌 등 미술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이나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 사진 예술 등 다양한 영역의 현대 예술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것이 이곳의 장점일 것이다. 나는 회화는 좀 이해하겠는데 조형예술은 그 의도를 이해하기 힘들어서 주로 회화와 사진 위주로 보는 데에 시간을 썼지만, 현대 미술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라면 한 번 가보기를 추천한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의 여독이 몰려와서였을까, 캠퍼스 안에서 또 길을 헤매다 사방팔방을 뛰어가며 도착하고 보니 이미 저녁 모임 끝나있었던 것 때문에 몰려왔던 허탈함 때문이었을까, 판다 익스프레스 포장해온 것 먹으려다 갑자기 일회용 포크 손잡이가 부려지는 것을 보고 옆에서 죄다 하는 소리가 ‘뭐 안 좋은 일 있냐, 화나는 일이라도 있었던 것이냐’ 내지는 ‘어디 아픈 거냐’고 물은 것은 무슨 연유인 것인가?
결국 고학번의 운명은 고학번의 운명인가, 마지막 날의 전체 모임은 결국 교수님과의 상담&스몰 토킹으로 귀결되었다. 물론 그게 내키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지금쯤 되니 생판 면식도 없는 학번대의 후배들과 어색함을 무릅써가며 이야기하는 것보다 강의서 자주 뵈는 교수님들과 얘기 나누는 것이 속 편하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모든 이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들어 후배라는 존재들에 환멸을 자주 느끼는, 고대 그리스 도편에서도 발견되는 문구에 해당하는 사항과도 연관되는 감정 역시 하나의 원인일 것이다. 이러다가 정말 2학년 때 신입생들한테 들었던 ‘금욕주의 수도자’라는 별명마냥 늙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들곤 하지만, 이제는 별 느낌도 없어서 불만이랄 것도 없다. 그런거 생각할 시간에 할 일이 많기도 하고.
이마 이번의 대화에서 오간 것 중 특기할 만한 것이라면 까마득한 20번대 학번에까지 소문이 난 ‘전설의 프로이센 유학파’라는 내 별명이 만들어진 경위와 함께 아날로그 지향적인 내 일상이 교수님에게까지 알려지는 과정이었을 것이고, 대학원 지망자 4명 간의 대화와 짧은 상담이지 않았을까?
지금 시간은 13시 15분, 멕시코 요릿집에서 점심 먹고 PALACE OF FINE ART에 들러 여유롭게 둘러보며 이 일기를 쓰는 중이다. 그래도 중간에 여유 주는 날도 있었고, 마지막 날이 여유롭다는 점에서 마냥 빡빡한 일정은 아니었다고 생각해본다. 솔직히 내가 주도적으로 일정을 구상하기보다는 카투사 출신 2명에서 칼자루 맡기고 적당히 자유일정에 묻어갔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일말의 망설임도 마음 속 불편함도 없었다고 하면 그건 도둑놈 심보겠지. 물론 이 일정이 마냥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시차 적응할 틈도 없이 시작된 강행군스러운 일정과 여러 이유로 인해 일행 전원이 짜증 스테이터스를 기본 +2씩 장착했다는 점이 최대 문제였지만, 그래도 어제의 회식 때 한 말마따나 무사히 끝난 것이 다행일 것이다. 그게 제일 큰 성과이기도 하고 말이다.
+) 여타 사소한 사항에 대한 기록
1. 사실 그동안 길바닥 상태, 정류소, 공공시설의 모습에 대해 몇 번씩 쓰긴 했는데, 이것은 솔직히 한국인과 미국인의 인식구조, 영토의 크기와 행정 능력 등을 종합해 생각해본다면 둘을 동일선상에 놓는 오류를 범하면서 일어난 인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대중교통에서 봤던 한국과 다를 바 없는, 아니 가끔은 한국보다 더한 기인 내지는 미친놈들의 소굴 같다는 생각은 이와 별개일 것이다. 소리 지르는 놈부터 바닥에 떨어진 남의 물건 태연히 주워 제 주머니에 넣고 유유히 내리는 XXX에, BART 통로 한복판에 드러누워 있는 놈, 역에서 뭔 넝마인지 이불인지 모르는 물체를 뒤집어쓰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양반, 약에 취해 소리 지르며 난동 부리는 놈까지, 별의별 놈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주 동안 다 봤다.
2. 역시나 거론이 불가피한 또 다른 사항은 바로 망할 물가와 지금도 이해가 안 가는 팁 문화일 것이다.
3. 솔직히 노숙자도 정신 놓고 있는 자면 무섭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약에 취해 길바닥에 주저앉아 횡설수설하는 자들일 것이다. 살면서 처음 맡아본 대마 태우는 냄새는 지금도 안 잊혀질 것이다. 차라리 담배 냄새가 더 낫겠다 싶은, 풀 태우는 냄새에 하수구 물비린내가 섞인 듯한 코를 후비는 냄새가 잊혀질 리가. 캘리포니아 주는 대마 흡연이 합법이다 보니 너도나도 길바닥서 대마를 피워 길에서도 대마 냄새가 짙게 깔려, 가끔은 숨 쉴 때마다 역한 냄새가 느껴지곤 했던 게 기억난다.
4. 물론 미국도 분리수거를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하는 것과 비교하면 그 분류가 매우 느슨해 보인달까. 실제로는 그마저도 제대로 하는 꼴을 거의 못 봤다. 분리수거를 안 할 수가 없는 모양과 크기를 한 물건이 아닌 이상, 조금 작다 싶으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일반쓰레기통으로 투척하는 모습이 숨 쉬듯이 당연한 공간이었달까? 솔직히 개발도상국이 환경을 생각해 탄소배출 제한하자는 선진국의 제안에 반발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는 것을 내 눈으로 보고 더 절실히 느낀 순간이 이런 순간이었다. 아니 애초에 미국은 세계의 질서 유지자를 자처한다면서, 좀 같이 살아보자고 만든 교토의정서도 중도 탈퇴해먹고 나중에 가서는 기후위기는 조작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대통령이라는 자가 내뱉은 국가인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 리가.
5. 미국 공항에서의 심사는 뭐랄까,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 더 그리 느낀 것이겠지만 벨트도 다 끌르고 신발까지 벗고 X선 검색대 들어가라고 하길래, 솔직히 속으로 ‘별의별 X랄을 다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생각한 것이 ‘도대체가 얘네는 검사를 하는 걸까, 검사하는 겸 누구 인성 시험하려는 건가’였다. 물론 공항 보안 검색이 피로 만들어진 규정이기에 내 말은 따지고 보면 꼬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지만, 벨트까지 다 풀고 신발까지 벗으라기에 ‘이건 뭐 하는 놈들인가’ 싶어서 순간 심기가 거슬린 것이 이런 생각을 한 제1 원인이었겠지.
6. 샌프란시스코 주립대의 위치
: 우리로 치면 대략 주간대+야간대의 느낌에 근접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전업 학생(?)이 주(主)인 대학은 UNIVERSITY OF CALIFORNIA나 STANFORD 같은 대학이고, 주립대는 일반 학생과 함께 직장인이나 일반인 중에서 학위취득을 원하는 인원도 같이 다니는 곳이라고 한다.
물론 P 선생의 예상, 처음은 눈이 멀쩡하지만 둘째 날, 셋째 날이면 눈이 시뻘게지고 조는 사람이 나올 것이라 한 것은 거의 실현되긴 했지만, 전업 학생들을 간만에 보니 아마 그가 그 점에서 열의가 느껴진다고 우리를 칭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의 예상에 사족을 덧붙이자면, 수업 들으러 오는데 무슨 집 앞 가게에 국수 말아먹으러 가는 것 마냥 옷 대충 걸치고 슬리퍼 질질 끌고 나타나는 놈부터, 남 발표하는 거 뻔히 알면서 ‘니는 짖어라’ 모드 시전하는 것들은 딴 지역을 가도 똑같지, 뭐. 물론 전자는 내가 너무 깐깐한 게 원인이지만, 후자는 내가 깐깐하고 나발이고 간에 기본예의의 문제지.)
7. P 선생의 수업에서 남은 것은 뭘까. 나는 아마 내 이미지를 만드는 역할을 한 또 다른 평가를 받은 것이 남은 게 아닐까. 벽화 발표에서는 언젠가 교수가 될 것이라는 평을 남기고, 경험과 역사에 대한 발표에서는 매우 철학적인 내용의 발표였다는 평을 남기면서 말이다. 그리고 우리 수업에서 통역을 담당(?)하게 된 지니어스 킴과 Cho는 카투사라는 특이한 경험으로 말미암아 P 선생과 메일 주소를 주고받게 되었다. 물론 지니어스는 Cho가 ‘나만 죽을 수는 없다’며 물귀신을 시전한 결과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농담을 했다. “아마 P 선생이 카투사나 한국군에 관한 추후 연구저작이나 단행본을 내면 거기에 둘의 이름이 적혀있을 거다. 너네들한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에서의 2주를 회상하며: 처음 본 미국의 모습 2 (0) | 2023.08.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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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서의 2주를 회상하며: 처음 본 미국의 모습 (1) | 2023.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