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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레는 빨아도 걸레다. 역적은 성공해도 역적이다. : 12.3 비상계엄 사태를 바라보며

잡설/사학과의 잡설

by HUMAN H 2024. 12. 6.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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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일 오후 1020, 윤석열은 야밤을 틈타 대통령의 권한이라는 법의 등 뒤에 숨어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러나 그 계엄령 선포는 국회의 계엄 해제안 가결로 3시간 만에 진압되었고, 대통령실에서 자다가 그랬는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시간이 더 지연된 결과, 9시간 만에 계엄은 해제되었다. 물론 그 9시간이 절대로 평온했던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계엄이라는 상황이 절대로 평온할 수가 없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생방송 뉴스로 시시각각 변하는 과정을 봤다. 경찰이 국회의사당 정문을 틀어막고, 국회의원과 의장은 담을 넘으면서까지 회의장으로 들어가고, 헬기를 이용해 계엄군이 들이닥치는 것을 목도했다. 그 계엄군이 시민들에 의해 가로막히는 것, 계엄군이 창문을 깨고 국회의사당에 진입하는 것을 봤다. ‘과연 의결에 성공할 수 있는 인원이 모일 수 있을까?’ 가슴을 졸이며 상황을 봤고, 다행히 국회가 이 상황에서 일을 똑바로 하는 것을 우리는 봤다. 최악의 상황까지 벌어지지는 않은 것이다.

 

 이제 한국사 연구자들에게는 새로운 사료가 주어졌다. 한 세대가 지나면, 한낱 소비품으로 취급되는 웹소설조차도 이런 말 같지도 않은 개연성을 가진 서사로 쓰면 욕먹고 하차당할 개연성을 가진, 9시간의 사태에 관한 기록과 영상이 주어질 것이다. 그리고 역사를 배울 훗날의 학생들은 어이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러시아가 딴 나라 쳐들어가고, 기본적인 상식조차도 의심스러운 자가 다시 미국 대통령에 재선 되고, 한국에서는 45년 만에 설득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유로 비상계엄이 선포되는 상황이 같은 연대에 일어난 셈이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이 과정 속에서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첫 번째로 느낀 것은 우리의 민도(民度), 민주주의를 체화한 정도가 아주 못 써먹을 수준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흔히 비꼬는 목적으로 국평오라는 말이 쓰이기는 하지만, 계엄군과 시민들이 폭력으로 대치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민들은 자칫하면 육탄이 될 수도 있었던 위험을 무릅쓰고 몸을 던져 계엄군의 진입을 막았고, 계엄군이 철수할 때는 보복 없이 박수를 치며 돌려보냈다. 계엄군 중 일부는 철수하면서 시민에게 고개를 숙이고 가기도 했다. 보통 이렇게 시민들이 대규모로 모인 상황이 펼쳐지면 상당수가 어떻게 되는지는 우리가 외신을 통해 많이 봤을 것이다. 왜 거기서 명품 가게나 전자제품 가게가 털릴까? 그리고 왜 보도블록을 뽑히고 차가 뒤집혀 불탈까? 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이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외신들이 놀란 점 중 하나는 이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가 통제하듯이 질서를 지키는 선 안에서 국가의 폭력에 대응하는 시민집단의 모습이 결코 쉽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 점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내 나라라고 욕하면서도, 내 조국에 다시 희망을 찾게 되었다.

 

 두 번째는 대통령이라고 하는윤을 뽑은 사람들이 잘못한 것일까였다. 솔직히 우리나라 정치가 너무 극과 극을 달리면서, ‘그래도 뭐라도 하겠지라는 마음에서 그 자를 대통령으로 뽑았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 당시까지는 저딴 미친 짓을 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그때까지는 그놈이 차악이라고 여겼으니까. (물론 미안하게 됐지만, 지금은 아니다.)

 

 세 번째는 이제 저 작자의 밑천이 어디까지 드러났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솔직히 언론사 카메라가 버젓이 있는 곳에서, KTX 타고서 구둣발을 좌석에 당당히 걸치는 짓을 당당히 하는 것을 정상적이라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건 바꿔 말하면, 이 자의 평소 밑천이 어떤가를 드러내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래, 솔직히 윤석열이 옆집 사는 검사 아저씨였으면 좋게 좋게 보일 아저씨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마누라 극진히 아끼고 명품 가방도 사주고, 본인이 직접 요리하는 것도 즐기고 말이다. 문제는 그걸 왜 국가권력을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대통령의 직분을 가지고 하느냐이다.

 학계에 몸담았거나 현재 학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김건희가 쓴 것처럼 학위 논문을 쓰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말이다. 이딴 식으로 학위논문 쓰면 학계에서는 바로 사형선고를 받을 수 있다. 아니, 애초에 이런 물건을 지도교수에게 가지고 가면, 아무리 인자한 교수라 해도 반 죽일 정도로 욕을 한다. 누가 보면 고집으로까지 보일 정도로, 이렇게까지 엄격하게 표절을 막으려 드는 것은 오직 하나다. 어떤 논문은 누군가의 고유한 작품이고, 그 사람의 시간과 노력이 녹아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는 것은 학계의 명줄을 지키는 것이기도 하다. 당장 바꿔서 생각해 보자. 내가 회사에서 며칠을 죽도록 머리 짜면서 만든 기획안을 누군가가 베껴서 내면,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할까? 사안이 매우 중한 것이라면, 아마 그놈을 저잣거리에 효수해 버리고 싶을 것이다. 바로 그거다. 그랬기에 학계에서는 그렇게 논문표절을 가지고 비판한 것이다. 그런데 끝까지 귀머거리, 벙어리 시늉을 하며 학계의 정당한 권한 행사를 막았다.

 

 이것까지는 이해했다. 그런데 채수근 상병이 죽었다고 한다. 급류에 휩쓸려 죽었다고 한다. 왜 한 청년이 이렇게 죽음을 맞았는가? 그걸 밝히려고 했더니 VIP가 격노를 했네 어쩌네 하는 소리가 나오고, 정당하게 수사를 진행한 박정훈 대령이 오히려 군사법원에 의해 죄인이 되는 황당한 사태가 일어났다. 이놈의 나라에서 밥 먹듯이 일어나는 ‘부를 때만 국가의 아들이고, 죽거나 다치면 누구세요’ 시전하는, 아주 더러운 버르장머리의 일례일 수도 있었다. 일개 병사가 죽음을 맞은 과정을 밝히는 것을, 이렇게까지 틀어막으려는 이유가 도대체 뭔가? 켕기는 것이 없으면 당당하게 조사해 보라고 하지, 도대체 무슨 이유로 대통령씩이나 되는 사람이 거부권을 쓰면서 기를 쓰고 발악을 하며 수사를 막으려 드는가?

 

 그렇기에 사람들은 조금씩 거리로 나왔다. 도저히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가 되어간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각계각층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비상계엄을 한밤중에, 강도가 쳐들어오듯이 한밤중에 발표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거 언론사를 해킹해서 보내는 딥페이크인가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솔직히 별로 보고 싶지도 않은 얼굴이지만 그래, 이유나 들어보자.’ 하는 심정으로 들어봤다. 하지만 그리 생각한 내가 멍청이었다. 이번에도 변한 것은 없었다.

 

 

 

 계엄을 선포한 이유가 다음과 같았다. 종북세력, 반국가세력의 준동에 의한 국가 위기. 그에 따른 자유 대한민국 체제 수호’. 이것만 보면 무슨 대규모 간첩 사건이라도 터졌나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속내를 뜯어보면 국회에서 자기 해달라는 대로 예산안을 승인 안 해준 것, 자신이 하고자 하는 대로 안 해준 집단이 많다는 것이 반국가세력이 준동하는 근거라고 했다. 나는 그 순간 정신이 아늑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건 자기 해달라는 것 안 들어준다고 바닥에 드러누워 떼쓰다가 자기 방에 문 닫고 들어가는 꼬맹이가 하는 짓이랑 뭐가 다른가? 문제는 꼬맹이는 문 닫고 들어가는 것에서 끝나지만, 대통령은 아예 국가를 마비시킬 무력을 명령할 칼자루를 쥔 자라는 것이다.

 

 그렇게 진짜 국회의사당을 경찰이 틀어막고, 국회의사당 상공에 헬기가 보이고, 헬기에서는 완전무장한 계엄군이 내리는 상황이 보였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특전사와 수방사였다. 대간첩 작전과 적진에서의 특수임무를 수행하라고 만들었지만, 정작 정치군인들의 무쇠주먹이자 돌격대 역할에 충실한 적이 더 많은 집단. 애초 출발부터 군사정권의 친위대로 출발했고, 197912월에는 나라를 지키려 했던 한 수경사령관의 명예에까지 먹칠해 가며 반란군에게 전투 병력을 제공한 집단이었다. 애초에 이 두 집단이 동원되었다는 것은 아주 작정했다는 것 말고는 성립이 안 된다. 야간투시경까지 장비하고 탄약상자까지 들고 들어간 이상 무력으로 국회를 점령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이 우리 눈앞에서 펼쳐졌다. 심지어 일부는 대테러 진압이라도 하듯이 국회의사당 유리창을 깨부수고 거총하고서 국회로 진입했다. 나는 그 과정을 보면서 나 스스로가,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하고 입에서는 내 인생에서 쓸 수 있었던 모든 비속어가 그치지 않는 것을 보았다.

 

 사태가 진정된 후 남겨진 후폭풍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환율과 주가는 박살나다시피 했고, 외교 관련 일정은 사실상 파탄 났고,, 해외 국가들이 대한민국을 위험한 국가로 인식하면서 그놈의 높으신 양반들이 죽고 못 사는 관광 수입도 토막 나게 생겼다. 계엄령을 선포했던 그날 오전에, 윤은 시장을 돌면서 민생을 챙기겠다고 입으로 말했다. 민생을 위한다는 자가 전방위로 자기 나라를 이런 위태로운 상황에 몰아넣는가? 이 정도면 지능형 간첩이라 의심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절차적 적법성과 실질적 적법성에 대해서도 당연히 말이 나왔다. 계엄령 선포 과정의 적법성도 무시하고, 실제 헌법과 계엄법의 구성요건은 물론 포고령조차도 위법 천지였다. 거기다 국회를 점령하려 들고 선관위를 점령한 것, 군인들에게 대북(對北) 관련 중요사항이라고 속이고 병력을 집결시킨 것, 현행범도 아닌 국회의원들에 대한 체포조를 구성하고 체포 명단까지 작성한 것. 체포 대상이었던 국회의원들을 방첩사로 압송할 계획이었던 것 역시 속속 드러나는 중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했을 때, 나는 12.12 군사반란과 동시에 윤석양 일병의 양심고백으로 세상에 알려진 보안사 청명 계획그 자체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청명 계획의 내용이 정말 이번 포고령과 계엄군에게 하달된 내용과 판박이 었고,, 친위 쿠데타 그 자체의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대통령은 이것이 국회에 대한 경고용이었다고 주장하면서 입을 다물고 있고, 외신에는 이번 계엄령이 헌법상의 절차를 거쳐서 했다는 거짓을 늘어놓고 있다. 정치인들은 또다시 이 문제로 논의와 분열을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계엄령에 연루된 자들은 청문회에서 서로서로 눈치 게임을 시전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빠져나갈까?’, ‘어떻게 해야 덜 맞을까?’ 하면서 말이다. 그 과정은 이제 계속 바라보면서 분석하고 판단할 일이다.

 

 앞서 언급한 것 이외에, 이번 사태가 보여준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또다시 생각해 보았다.. 계엄이라는 중대한 사항을 경고였다고 변명하며 면피하려는 후안무치한 행각은 둘째 치고,, 저들이 말하는 반국가세력은 뭘까, 구국의 일념은 뭘까, 종북세력은 뭘까, 뭐가 자유 대한민국 수호일까? 그래, 당연히 간첩은 있다. 동맹국 사이에도 정보원들을 심어서 지금도 보이지 않는 전선이 작동하는 것이 국제질서이고 냉혹한 현실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그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럴듯한, 아니 본인들만 그럴듯하다고 느끼는 논리였다. 상명하복의 논리에만 익숙해져 있는, 상관에게 토 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검찰 세계의 질서를 그대로 국가 통치에 재현하려 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통령인 나는 곧 총장이고 내 말을 거스르는 자는 다 반국가세력이다라는 논리의 발현으로 밖에 해석이 되지 않았다. 문제는 민주주의가 정체(政體)로 자리잡은 이래, 아니 정치란 것이 생겨난 이래로 구국의 결단이니, ‘애국이니 하는 소리 강조하는 집단치고 백성을, 시민을 졸로 보지 않는 놈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주 정신 나간 국가가 아닌 이상, 어느 나라 정부도 제 입으로 '국민을 죽이겠다', '너희에게 자유 따위는 없다'는 소리를 공식적으로 하지 않는다. 권력은 기본적으로 그럴듯한 말로 자신을 치장한다. 그리고 그렇게 치장한 권력은 칼을 빼들고 뒤로 다가온다.

 

 ‘그냥 내 말에 따라야 하는 부품이고 닥치고 명령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는 사고를 내장한 족속들인 셈이다.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의 자리에서 끌려 내려온 박근혜와 같이, 자기가 보기에 자신에게 불만을 표출하면 그것은 사회 혼란이고, 그렇기에 국가적 위기라는 지극히 1차원적인 사고방식의 발로 외에는 설명이 안 된다고 본다.

 

 왕이 되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왕도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나라에 모든 일이 일어나면 그건 다 왕의 탓이 된다. 그러한 욕을 먹을 것을 각오하고 왕을 하는 것이다. 그걸 감당하기 싫다고 언로를 틀어막았던 임금들은 역사에 암군, 폭군으로 기록되었다. 연산군일기에 이런 말이 나온다. “(, 임금을 달리 이르는 말)께서 두려워하시는 것은 오직 역사뿐이다.” 역사에 폭군으로 남기 두려웠기에 언로를 틀어막았지만, 정작 그리했던 연산군은 중종반정으로 폐주(廢主)가 되어 쫓겨났고, 폭군의 대명사로 영원히 박제되었다. 대의제 국가의 정부 수반이라고 해서 아닐 것 같은가? 이 점에서는 다를 것이 없다. 중이 절이 싫으면 절을 떠나야지, 절을 부수려 드는 것은 무슨 심보란 말인가?

 

 

 거리로 나와 자신에게 반대하는 이들이 반국가세력이라고 한다면, 둘 중 하나이다. 멍청한 놈이거나 간악하기 그지없는 놈이거나. 주변에 있는 보좌관들이, 장관들이 대통령님을 부추겨서 그랬습니다~” 같은 소리는 전형적인 헛소리에 불과하다. 이런 소리는 전형적으로 왕조의 역사책에서 왕에게 향할 책임 면피하는 용도로 썼던 유구한 전통의 레퍼토리다.

 정상적으로 사고하는 정치인 같으면 우선 이걸 생각해봐야 한다. ‘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서 구호를 외칠까?’ 기본적으로 서민들의 삶은 절대 여유롭지 않다. 당장 먹고살 문제를 걱정하고,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지, 내 자식과 가족들을 어떻게 부양할지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서민들이다. 바쁜 삶을 뒤로하고 시간을 쪼개 거리로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당장 자신의 삶이 급한 사람들조차도 이건 아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라는 생각을 할 정도면, 그다음은 무엇이겠는가? 누군가가 사주했을 것이라는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뭐가 잘못되었을까를 걱정하는 것이다. 망할 반국가세력이니 종북세력이니 떠드는 정치꾼들은 전부 자신들이 생각하는 세계관 구현된 VR 기기 주고서 무인도에 던져버려야 할 것이다. 그게 진짜 우리나라를 위한 일일 것이다.

 

 

 다행히 사태는 더 커지지 않았지만,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당장 시급한 것은 이번 계엄에 가담한 이 미친 집단을 끌어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저 집단이 제정신이 아닌 만큼, 조중동과 한경오가 한 목소리를 내는 상황이 도래한 만큼,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것은 자명해졌다. 이제 정말 12.12 반란 때처럼 신사협정을 맺는 척하고서 통수를 치는 짓거리를 재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미친 운전수가 차를 몰고 있을 때의 최선은, 앉아서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뛰어가서 그 미친 운전수에게서 핸들을 뺏는 것이다. 그게 더 이상의 희생을 막는, 우리의 목숨을 담보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6인 체제로 시작부터 난항을 겪는 사법부에 더 막중한 책임이 부여된 것이다. 그들이 과연 민의를 어디까지 반영할지, 기계적 해석에만 매몰되지는 않을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나는 희망이 꺼지지 않기를 빌뿐이다. 그렇기에 이 글을 쓰는 것이기도 하다. 한낱 필부에 불과한 나지만, 적어도 이 글은 나만 보는 글이 아니다. 최소한 기록을 남기기는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훗날 역사 앞에 죄인이 될 것만 같은 기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2017년 박근혜 탄핵 당시 고3이라는 이유로 시위 장소가 코앞에 있음에도, 시위에 나가지 않았던 나에 대한 자책감을 지금도 느끼며 산다. 나는 그때마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떠올린다. 그때의 후회할 행동을 다시 하고 싶지 않기에, 나는 지금 이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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