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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뭣이 중헌디?! -좌도(佐渡) 광산 문제부터 독립기념관장 논란까지

잡설/사학과의 잡설

by HUMAN H 2024. 8. 15.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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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안드로이드의 다음과 같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게 최선입니까, 휴먼?"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솔직히 이번 정부를 바라보며 좋은 소리 한 적이 없었다. ? 내가 공부하는 분야에서는 언제나 심각함 그 이상의 소리를 해대고 다녔으니까. 그리고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애초에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이 당연하다. 그게 본성이니까. 그러나 적어도 대의민주주의 국가의 수장이라면 그걸 통제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그러라고 그 자리에 앉혀놓고 권한을 주는 것이다. 권한은 다 행사하려 하면서 책임은 안 지겠다고 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선조가 왜란 당시 의주에서 명으로 넘어가겠다고 할 때 신하들이 외쳤던 ‘수많은 신민들을 어디에 맡기시고 굳이 필부(匹夫)의 행동을 하려고 하는가’라는 말이 여기에 쓰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번 광복절은 인간 승리가 아니라 기계 승리가 아닐까 생각도 해봤다. 빙그레가 AI 기술을 이용해 독립운동가들의 사진을 수인복(囚人服)이 아니라 한복 차림으로 복원한 것이나, 해방 당시의 애국가 음원을 복원한 것을 보면, 기술의 발전이 사학계 입장에서도 더 좋은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인간보다 기계가 더 좋은 평을 듣게 되었단 말인가? 휴머노이드가 이게 최선입니까, 휴먼?’ 외쳐도 이젠 인정해야 할 날이 이렇게 올 줄은 몰랐다.

 

 아무튼 각설하고, 본론으로 돌아가보겠다. 애초에 세계문화유산이 본래의 제정 목적과는 별개로 자기네 나라 자랑하는 존재로 변질된 지 오래라는 건 둘째치고, 당사국과의 갈등 소재가 있을 문제 (제국주의, 전쟁의 직접적 피해 등)와 연관이 되어있다면, 당사국의 동의를 얻어야만 등재할 수 있다는 원칙을 만들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그게 무슨 동네 구멍가게에서 파는 눈깔사탕인 거처럼 선심 쓰듯 옛다!’하고 주면 뭐 외교관계가 진정으로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외교관계는 유치원 다니는 애기들이 하는 친구 사귀기가 아니다. 이건 그냥 거칠게 말하면 호구 잡히기 좋은짓거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외교는 장사같지만, 장사가 아니다. 하나를 주고 하나를 얻을 수도 있지만, 하나를 줬다가 하나를 더 잃을 수도 있는 야생이다. 그리고 외교가에서 근본 이익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관념의 면에서 보면 그것은 최소한 한 국가가 지키려는 핵심 이념이다. ‘살을 내주되 뼈를 취하라는 말은 이를 이르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 뼈는 곧 근본적인 핵심 이념이다. 그리고 그 핵심 이념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이 밝히고 있다. 자신들이 그렇게 고루하다고 비꼬는 민족주의의 문제를 떠나서 자기들이 그렇게 내세우는 실익이나 위신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는 문제란 말이다. 그걸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모르는 척하려 용쓰는 건가? 왜 굳이 나서서 당사자의 집단적 대표성을 빙자한 x대로 진행하는 협상을 멋대로 해치우냐는 것이 이번 논란의 핵심이다. 이 작자들은 국민이 아직도 구시대적 민족주의 관념에 얽매인 가련한 백성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그게 바로 이번 사태가 분노를 일으키는 본질이라는 것을 모른다는 점에서 이는 자찬하는 바와 같은 절반의 성공도 아니다. 가식적인 포장 따위 집어치우면 이건 그냥 실패다. 실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란 말이다.

 

 그럼 이번 독립기념관장의 이념을 둘러싼 문제는 무엇이 문제인가? 이 점에서 뉴라이트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좀 이야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왜 문제일까? 과거 역사를 부정하려 한다는 점 때문에? 아니면 일본 제국주의의 주구라는 점 때문에? 그것도 있지만, 나는 이념의 문제를 떠나서 이들의 문제가 인간의 면을 버리려 한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솔직히 제국주의 망령과의 싸움이 주()인 이 뉴라이트와의 투쟁이 논리 싸움이 될 수 있나 생각해보곤 한다. 이제는 사실상 거대 담론을 좇는다기보다는 그저 관심받고 싶어서, SNS와 인터넷의 발달로 관심 받아보면서 자신에게 떨어질 떡고물에 미친 것이 현 상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950~60년대에 한-일간 독도 영유권 분쟁이 일어났을 때, ‘독도를 폭파시켜버려야 한다라고 발언한 극우논객 아카오 빈(赤尾 敏, 1899~1990)조차도 최소한 그 시대에 부응하는 거대 담론을 제시할 능력은 갖고 있었다. 냉전 상황 속에서 --대만이 반공 방파제가 되어야 하기에, -일 간의 연대가 절실하고 섬 하나로 이데올로기적 연대가 어그러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최소한 그는 이러한 사고를 할 능력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이제는 그런 것도 없는 것 같다. 이런 작자들에게 백날 천날 논리 들이대봐야 우이독경이고, 범 아가리에 대가리 디밀고 안녕하세요? 우리 대화로 해결해보죠?’라고 외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럼 인터넷 어그로꾼 말고 공식 직함을 가지고 활동하는 자들은? 이들은 적어도 그런 어그로꾼들보다는 그럴싸한 논리를 가지고 나온다. 나는 앞서 말했다. 이들의 문제는 바로 역사를 다루면서 그 역사를 만들고 구성하는 인간의 면을 경시한다는 점이라고 말이다. 일제가 만들어 놓은 기반시설이나 근대적 지적 기반 마련은 객관적으로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근대는 좋은 것이다라는 암묵적 가치를 제외한다면, 사실 식민지근대화론을 위시한 신우파의 관념도 무조건 악이라고 볼 근거는 없다. 그런데 우리 잘 생각해보자.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이 강제로 하면 우리는 그것을 무조건 좋게 평가하는가? 애초에 강요는 경우에 따라 실정법으로도 처벌될 수 있는 사항이다. ‘근대라는 좋은 것을 심어놓고 갔고, 우리가 그 근대의 수혜를 보니까 그 시절은 좋은 것이다라는 논리는 더 말해 무엇 하는가? 그 근대를 만드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흘려야 했던 혈루(血淚)와 피는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고 할 건가? 그러자면 그 소가 족히 2,000만이 넘는데, 이게 어떻게 소인가?

 

 물론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이 이제 더 따지지 말고 미래로 가자는 말도 일리는 있다. 애초에 피해자 유족이라고 모두 일본을 증오하는 마음만을 가지고 평생을 살 수는 없다. 증오의 감정을 계속 가지고 가고 싶은 자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걸 가지고 있는 본인부터가 편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인의 삶에서만 봐도, 내가 증오의 감정을 버리고 싶어도 가해자가 반성하는 기색은 하나 없이 고개 빳빳이 들고 후안무치하게 행동하면 용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겠나? 이것이 어떻게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서, 어떤 이론을 교리처럼 받들어 하는 행동이겠는가? 사람의 본능이 시키는 것이지. 이런 상태가 사람에게 지속되면 감정은 응어리져 병을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의학적으로 화병이라고 부른다.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는 역사적으로 화병을 가진 셈이다.

 한국 근대사의 콤플렉스를 정신병이라 매도하는 무리가 결여한 것은 무엇일까? 역사를 계량하는 법만 익히고 그 안에 있는 인간의 심상을 지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 아소 타로(麻生 太郎)가 수권법을 본따 일본 헌법 개정을 시도하겠다고 했을 때, 세계가 그를 욕했겠는가? 그 수권법이 만들어지면서 나치 독일의 사상적 탄압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치가 저지른 행각이 자신들에게 일어나면 어떻게 될지 상상을 해보았기에 세계는 그를 제정신 잃은 놈이라고 욕한 것이다. 원래 역사학은 인문학 중에서도 사회과학의 요소를 상당히 많이 품고 있는 학문이기도 하다. 어문학이나 철학과 비교해보면 무슨 말인지 좀 더 잘 이해가 갈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료분석으로 대표되는 실증주의, 과학주의적 개량이 상당히 중요하게 취급되고, 그렇기에 사학계가 농담조로 고증에 목숨 거는 악귀들이 꼭 하나씩은 있는 집단이라고 여겨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역사는 인간의 살아온 궤적을 다루는 학문이라는 점 말이다. 칸트가 그랬던가,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Gedanken ohne Inhalt sind leer, Anschauungen ohne Begriffe sind blind.)’라고 말이다. 역사학에서 내용은 사료이고, 인간을 향한 최소한의 존중의 사유는 개념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지금의 작태를 비판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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