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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의 모습- 러시아를 벤치마킹하는 것인가?

잡설/사학과의 잡설

by HUMAN H 2023. 9. 3.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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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 전, 그러니까 2023727일에 북한은 소위 조국해방전쟁 승리 70 돌 경축행사를 벌였다. 이 점은 현 러시아 국방상 세르게이 쇼이구가 방북한 점과 함께 언론에서도 당시 연일 보도된 바이다. 이때 진행된 행사와 열병식에 대해서는 이후에 좀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지만, 좀 거칠게 말하면 결국 '저 사회주의 국가라고 주장하는 전체주의 국가의 본질은 안 변한다'고 보면 되겠다. 북한 국방상 강순남의 연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열병식 중계 해설에서 나온 말을 듣고 있으면 더더욱 실소가 나오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증스런 대한민국 족속들을 박멸하고, 우리 영토를 수복할 멸적의 의지”라느니, 원쑤들이 신성한 우리의 령해를 단 영점, 001 밀리메타라도 침범한다면, 가차 없이 수장해 버릴 멸적의 기상 피 끓는 가슴마다에 격랑 치는 일당백 해병들”, “지구상 그 어디에 있는 침략 세력도 우리 혁명무력의 사정권 내에 있다는 것을 제국주의 전쟁광들은 똑바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등등 자동으로 음성지원이 되는 멘트의 일부 정도만 보면 대강 윤곽이 나오지 않는가? 물론 이들이 항상 조선혁명을 내세우며 대한민국을 엿 먹일 궁리를 해대고 그 결과가 나날이 기술적 발전을 하는 상황이기에 마냥 비웃을 것이 아니라 대비를 해야 하는 것도 지도부의 책무일 것이다.

 

 

 

 일단 서론은 이쯤에서 끝내고, 제목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한 가지 흥미로운 부분은 무엇인가? 당시 언론에서 주목한 것이 세르게이 쇼이구의 방북이었는데, 일단 러시아 고위인사가 북한을 공식 방문한 것이 이례적이어서였을 것이다. 만약 소련이 건재하던 시절에 드미트리 우스티노프(Dmitriy Fyodorovich Ustinov, 1908-1984, 5대 소련 국방상)가 북한에 왔으면 이렇게 했을까. 일단 사실만 말하자면, 소련이 건재하던 시절에 북한 측 인사가 소련을 방문한 적은 있어도, 소련 측 고위인사가 공식 외교상의 이유로 북한을 찾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세계사적으로 냉전이 끝난 마당에 사회주의를 폐기한 옛 사회주의권의 맹주 국방상이 무늬만 사회주의인 국제적 문제아 취급받는 나라를 공식 방문했다 하니 놀라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이번 일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변수겠지만 말이다.

 

 이번 전승절행사 보도를 보면서, 그리고 최근의 북한의 관영매체 보도를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최근 들어 북한이 러시아와 연결고리를 만들고 러시아에서 관념체계를 가져와 적용하려 든다는 점일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를 따지자면, 일단 ‘7.27’에 대해 얘기를 해야 할 것이다.

 물론 ‘7.27’은 이전부터 북한이 강조해 왔고 실제로 김일성 생전에도 몇 차례 열병식을 진행한 날이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북한은 6.25 전쟁 정전협정체결일을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일로 칭한다. 일단 이 분야에 지식을 가진 이들이라면, 이 명명 자체가 소련의 승리의 날서사를 차용한 것임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독소전쟁을 대조국전쟁이라 칭했던 소련의 전쟁 서사를 그대로 차용해, 단어만 바꾸고 그에 맞게끔 서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결과물만을 보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어이없는 말의 향연이겠지만, 역사의 이용 방식이 그러한 것이 슬픈 사실이다. 미하일 포크롭스키(Mikhail N. Pokrovsky, 18681932, 소련 역사가)가 그랬던가, “역사는 과거를 향한 현재의 정치라고 말이다.

 다만 ‘7.27’은 김정은 정권에 들어서면서 유달리 더 강조되는 성향을 보인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물론 이전에도 7.27을 기념했지만 주로 군 내부에서 강조한 기념일의 성향이 강했다면, 김정은 정권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전국 노병대회와 기념행사 등 다양한 형태로 관련 행사를 진행하고 중앙방송을 통해 그것을 대외적으로도 크게 홍보한다는 점에서 이전과의 차이를 보인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행사의 최대 형태는 대외과시용 행사의 성격 역시 가지는 열병식이며, 기념의 서사는 북한판 대조국전쟁인 것이다.

 

 물론 이것만이 북한의 러시아 관념 수입의 전부라고 보긴 힘들 것이다. 이 같은 점을 더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요소는 군사 영역에서의 변화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 전승절열병식 보도와 함께 금년 진행된 2번의 열병식은 그러한 점을 직접적으로 보여준 실례라 볼 수 있다. 이 이야기에서 주목할 부분은 기계화부대 종대 이전에 등장하는 도보 분열 종대이다. 2020년부터 서서히 드러난 열병식 도보 분열 종대의 특징이라 한다면, 이전의 칙칙한 모양새의 군복이 아닌 현대적인 위장무늬 군복을 입은 병사들의 모습도 있겠지만, 19세기 서양의 것과 유사한 형태의 예복을 갖춰 입고 예도 경례를 하는 종대 지휘관들일 것이다. 물론 이전의 인민복 형태의 군복을 안 쓰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공식 행사나 각종 회의에서 더 자주 보이는 군관(장교)들의 예복 차림인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최근 공개되는 북한군의 예복 형태에서 우리는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디자인이 1945년 소련군의 전승 기념 45년식 예복을 기본 디자인으로 한다는 점 말이다.

1945년 소련 전승절 열병식 당시 공개된 전승 기념 예복
현용 북한군 예복 차림의 박정천 원수

 

 근래 보도된 김정은의 해군사령부 방문과 한미 연합훈련에 대응한다고 실시했던 전군 지휘 훈련에서 보인 모습에서는 더 노골적으로 러시아군의 복제, 더블 버튼형 러시아군 장성 정복과 잠바형 근무복을 모방한 것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

해군사령부 방문 당시 정복 차림의 박정천, 강순남

 

전군 지휘 훈련 당시의 박정천과 총참모장 리영길 차수

 

현용 장성 정복 차림의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

2015년부터 도입된 러시아군 잠바형 근무복.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단서인가? 크게 2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고 보는데, 일단 극장국가라는 평가대로 보이는 면을 더 중시하기 시작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의 칙칙한 국방색 단색 군복과 냉면 사발 같은 정모로 대표되는, 현대적인 트렌드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이 격폐된 듯한 분위기를 팍팍 풍기는 모습이 아니라, 현대적인 멀티캠 전투복과 보기에 화려하게 장식한 군관 예복을 통해 말이다. 여기에 추가한 도보 분열 종대의 명예 칭호 부대기(3대 혁명 붉은 기 중대기, 금성친위사단/려단기, 오중흡 7련대기, 백두산 경위대기 등등)와 종대 지휘관이 경례할 때 넣는 예도 휘두르는 효과음은 덤이다. 사실상 내수용이라기보다는 외수용에 가까운 모습을 그대로 보이는 셈이다.

우리가 북한군 하면 떠올릴법한 모습은 이것일 것이다. 2004년 백악관 방문 당시 원수 정복 차림의 조명록 차수의 모습이다.

아니면 이런 모습이라거나. 예복 차림의 강건명칭종합군관학교 종대원들의 모습이다.

 

이게 최근 바뀐 모습이다. 정찰총국장 리창호 중장이 지휘하는, 멀티캠 전투복을 착용한 정찰총국 종대.
호위사령관 곽창식 상장이 지휘하는, 예복 차림의 호위사령부 종대

 

 

 두 번째 해석은 러시아의 관념체계를 수입하면서 북한 지도부,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김정은이 군에 원하는 바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해석은 전쟁은 정치의 연장선이라는 테제에서 유래한 것이다. , 현실에서 정치와 외교의 연장선 역할을 하는 군사 분야가 정치와 연결되어 그것이 요구하는 바를 체현해 드러낸 편린이 바로 지금의 복제변경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관점에서 보면, 관념체계 수입에 있어 2가지 선택지가 있다. 자신들이 그동안 주로 교류(라고 쓰고 사실상 명줄을 지탱하게 해 줬다고 읽어야겠다.).) 해온 중국과 소련(러시아)이 그것이다. 여기서 북한은 중국이 아니라 러시아를 택했다. 중국 역시 꾸준히 군의 현대화를 진행하고 현대전의 트렌드에 맞추려 많은 부분을 바꿨는데, 왜 굳이 러시아를 택한 것인가?

 

 일단 조중친선이라고 늘 강조한다지만, 사실상 물질적 면에서 조선성()이 되어버린 것에 대한 반작용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점은 정치체제의 면을 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중국은 미국과 대립한다고는 하지만 물질적 면에서는 미국을 모방하려 시도하고 협력 역시 많이 하는 상황이다. 거기다 중국은 모택동 사후 개인숭배를 당 차원에서 비판하며 국부인 모택동 역시 공식적으로 비판한 것을 북한이 모를 리 없다. (물론 서조선(西朝鮮)’ 꼴이 나고 있는 현재의 중국의 모습과는 별개로, 공식적인 과정만 놓고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주체사상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수령의 오류 가능성을 틀어막고 그동안 철저히 독재체제를 구축해 왔는데,, 중국의 이러한 면을 북한은 뭐라고 생각할까? 실제로도 그랬지만, ‘반당 종파들에게 틈새를 제공한 혁명의 배신자라고 생각할 게 뻔하다. 그러한 점에서 중국이 딱히 내키지는 않기에 선택지에서 지우면, 북한에 남은 것은 러시아이다.

 그런데 북한의 입장에서 보자면, 정확히는 김정은의 관점에서 러시아는 생각보다 괜찮은 국가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북한이 딱 원하는 스타일의 국가, ‘스탈린 제국을 지금의 러시아가 재현하고 있다고 북한이 여기기에 따라 할 가치가 있다고 볼 것이라는 말이다.

 

(* 원래 스탈린 제국이라는 표현은 소련사 연구자들이 스탈린 통치 시기 소련의 모습을 평가하며 만든 용어이다. 이는 스탈린이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소련을 운영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개인숭배를 앞세워 제정 러시아 시절의 강압적 체제와 정교회에서의 숭배와 같은 모습으로 소련을 운영한 점에 착안해 만든 용어이다.)

 

 ‘스탈린 제국의 면모가 원 발상지인 러시아에서 비슷하게 재현된다는 점에서 벤치마킹을 해올 여지를 찾은 것이라고 보인다. 실제로도 푸틴 집권기에 들어서면서 정치체제와는 별개로 오히려 소련 시절의 모습을 더 좋은 것으로 만들며, 승리의 날 행사 역시 소련 시절보다 더 자주 거창하게 벌이는 모습이 그 예 중 하나이다. 사상이라는 색을 뺀 채로 과거의 영향력과 영광을 다시 재현하기를 원하는 지금의 러시아 입장에서는 소련이 보였던 이미지가 필요하고, 더욱이 독재를 정당화해 줄 수 있는 코드가 필요하기에 소련 시절의 향수를 자극할 여지를 더 많이 만든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다시 북한의 입장으로 돌아가보자. 러시아야 자신의 전신(前身)인 국가를 그대로 계승하기에 군 복제를 약간만 변형해 쓴다 쳐도, 북한이 러시아를 노골적으로 본뜨려 시도하는 점은 스탈린 제국을 본받고 싶어 하는 점을 더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려는 것이 아닐까? 특히나 김정은이 김일성, 김정일과 달리 권력자로서의 출발부터가 매우 취약한 기반에서 시작했고, 지금도 견고한 권력 기반을 갖는다고 보기는 힘든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바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해 줄, 구체적으로는 관념상으로 자신을 지탱해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마침 그것을 러시아가 하고 있기에 혹해서 따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것이 내 사견이다.

 

 물론 어떻게 생각할지는 독자 여러분들이 판단하실 일이라 생각한다. 극장국가의 면모에 초점을 맞출지, 아니면 관념체계의 수입인지, 그도 아니면 또 다른 이유일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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