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논평] 폐족(廢族)은 과연 누구인가? : 끝나지 않은 ‘내란정국’의 청산을 바라보며

잡설/사학과의 잡설

by 한제 閑齊 2025. 2. 2. 19:23

본문

폐족(廢族)이란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폐족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폐족(廢族) : 조상이 큰 죄를 짓고 죽어 그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됨. 또는 그런 족속.

 

 

정의에서 볼 수 있듯이, 폐족은 원래 양반으로서의 사회적 생명을 유지할 수 없게 된 집단을 일컫는 표현이다. 이 점에서 폐족은 사회적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그리될 수밖에 없는 행동을 일삼는 족속을 일컫는 욕으로도 쓰였다. 그리고 폄어로써의 폐족의 의미는 현대에도 사어가 되지는 않았다. 단지 문어에서나 보이지 일상생활에서 쓸 일이 없을 뿐.

 

그렇다면 지금에 와서 폐족은 무엇인가? 개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람에게 사회적으로 마땅히 있어야 하는 인격이나 예의가 없이 날뛰는 개망나니 같은 인간을 보고 그리 말할 수도 있을 것이고, 사회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회의 악습으로 뿌리박혀서 정치·사회 문화의 폐단을 만드는 족속을 보고 그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 한국사에 와서 존재하는 폐족은 무엇이 있을까? 사람마다 가지는 신념과 견해는 각양각색이기에 뭐라 정의할 수는 없지만, 나는 딱 둘을 꼽을 것이다. 하나는 3대에 걸쳐 북한을 지배하고 있는 김씨 일가일 것이다. 스스로가 구린 것을 알기에 백두의 절세 위인이니 백두혈통이나 하는 온갖 낯 뜨거운 수식어로 자신들을 떠받게 하지만, 결국 그것은 자신들이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봉건적 왕조 시대에도 하지 않았을 비인도적인 행태를 시스템으로 만들어 지금까지 가동하면서, 3대째 제 나라 인민이 밥 세 끼도 제대로 못 먹게 만드는 집단이 폐족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한국사에서 6.25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의 목숨을 빼앗는 동시에 한 민족을 철천지원수로 갈라버린 죄, 세계사에서는 자신들이 주장하는 조국해방전쟁으로 2차 대전의 전범들을 청산할 적기(適期)를 망가뜨려 범죄자들이 저지른 죄과를 제대로 단죄할 기회를 없애버린 점에서, 폐족이라는 말 외에는 그들을 정의할 것은 없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오늘 말하고자 하는 것, 소위 애국보수라고 하는 극우세력, 수구세력이다. 이제 이 나라는 계엄을 1번 겪은 세대와, 2번 겪은 세대로 나뉘게 되었다. 참으로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가 없다. 하지만 이번 계엄 사태는 단순히 대통령의 목 하나를 날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 원인을 파고들어 보자는 입장에서 나는 이 글을 쓴다.

 

 

 

이번 계엄령이 7시간 만에 끝나면서, 술 먹고 맛 가서 버튼 누른 것 아니냐’, ‘뭔 짓을 해도 욕 먹으니까,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스킬 다 써보고 내려가자 심정으로 계엄 버튼 누른 거 아니냐등 온갖 풍자가 쏟아져 나왔다. 하다못해 내가 살면서 계엄도 봤는데, 롯데가 다시 우승하는 꼴은 못 봤다등의 조롱까지 쏟아져 나왔다. 내가 이러한 모습을 못마땅해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도 이런 밈이나 스탠딩 코미디 보면서 공감하고 웃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이렇게 풍자로 상황을 비꼬면서 직접 부조리극을 소화하려 하는 한국인의 모습은 예로부터 내려온 전통이니 부정할 마음도 없다. 그것도 엄연히 시위 문화이니 말이다.

다만 웃자고 하는 소리와는 별개로, 이번 계엄 사태는 단순히 술 먹고서 맛 간 상태로계엄 버튼을 누른 것은 결코 아니었다. 공범들끼리 누가 덜 쳐맞을 것인가?’를 두고서 벌이는 눈치 게임이라는 어이없는 상황 속에서 이 계엄 사태가 상상 이상으로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었다는 것이 드러났고, 조사를 통해 이런 정황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이번 사태를 더 철저히 조사해 단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조사에서 나온 결과는 결국 머저리의 우발적 범행이 아니라, 교활한 사기꾼의 계획범죄라는 것 외에는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발적 범죄와 계획범죄 중 뭐가 더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하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그렇기에 7시간 만의 계엄이 끝난 이후, 언론은 일제히 이것이 법리적으로 맞는가’, ‘이것은 내란에 해당하며, 탄핵이 가능하다라는 것을 쏟아내었다. 하지만 그 12월 초 당시를 기준으로 하면 그것은 결국 원론적인 소리를 재생하는 것에 불과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논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탄핵을 달성하기까지의 과정에서의 장애 요소가 많다는 것을 뒤로 미뤄두고 자극적인 텍스트만을 쏟아내려 드니 문제였다는 것이다. 당시 기준으로 헌법재판관은 6명이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애초에 탄핵소추에 관한 사건 심리와 재판을 할 수가 없다. 탄핵소추안 재판은 재판관이 최소 7명은 있어야 하고, 전례를 고려한다면 8명은 있어야 정상적인 재판이 가능하다는 점부터가 발목을 잡는데, 언론이 그것은 뒤로 제쳐둔 것이다. 법은 민의(民意)를 반영해야 한다지만, 민의만을 반영한다면 그것은 마녀사냥 내지는 인민재판 그 이상 이하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어느 학문이 다 그렇지만, 그 점에서 법은 뜨거운 심장과 차가운 머리를 가져야만 한다. 그 점에서 탄핵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점 때문에, 윤석열의 직무정지에 관한 1차 국회 의결안 투표 당시 국민의 힘이 더 괘씸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국회의원 제일 많이 배출하는 직종인 법조인들이 그걸 모를 리 있겠는가? 그들은 전략적으로 멍청해지기를 택한 무리이다. 문제는 그것이 어떻게 인식될 것인지를 계산 안 했기에, 그들의 사무소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근조화환과 계란, 식칼이 날아든 것이다. ‘탄핵까지는 과하다는 시각을 가진 보수층도 그들이 그런 짓거리를 하길 원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국회의원으로서 민의를 반영하는 대리인이라는 직업에 맞게 투표에서 반대안을 던지는 식으로, 회의장에서 탄핵은 무리인 근거를 대가며 설득을 했었다면, 우리가 아는 모습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반대 진영에서는 심정적으로는 욕하고 싶지만, 이성적으로는 그렇게까지 대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본회의가 열리는데, 따로 당 내부 회의를 열겠다며 단체로 본회의장을 나가 들어가지 않았다. 이로써 그들은 사고하는 구조가 떼쓰는 거 안 들어준다고 방문 닫고 들어가는 초등학생이나 다를 바 없는 짓거리를 하는 족속임을 대놓고 광고했다.

 

그렇게 대통령의 직무 정지시키기까지 험난한 세월이 걸렸고, 신병을 확보하기까지도 지난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는 안 그래도 꼴 보기 싫은 정치부 뉴스가 더 꼴 보기 싫어지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봤다. 변호인단의 변호와 권한대행 체제에서의 거부권 행사, 언제나 늘 그렇듯이 전개되는 양당의 꼬리물기 같은 개싸움을 포함해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사건을 보게 되었다.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들이닥쳐 극우파들이 일으킨 폭동 말이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는 미국과 대등한 국가다.

걔네는 국회의사당에 폭도들이 들이닥쳐 난리 피웠는데, 우리도 비슷한 거 하지 않았느냐.

 

 

웃자고 하는 소리이긴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극우파들은 이념이 아닌 자극적인 증오의 언어와 싸구려 불량식품 같은 자극에만 기대에 그것을 인터넷에서 수익으로 바꾸는 구조 속에서 자신들의 밥그릇 싸움을 하며 사분오열하고 있다. 나는 그들의 사분오열과 거리에서 앰프 켜고 내뱉는 소리를 그만두기 시작하는 것을, 결코 그들이 폭동을 저지른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사람은 한 신념만으로 살아갈 수 없지만, 안 하던 짓 하면 죽는 법이기도 하니까.

그 와중에 윤석열 측은 일반 시민과 청년을 중심으로 국민 변호인단을 모으겠다는 책동을 벌이고 있다. 헌재가 민의를 완전히 모른 척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법원 밖에서 여론전을 벌여보겠다는 수작인 것은 이제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변호인단 측은 임기 중인 대통령을 가두고 임기 중에 끌어내리려는 행태에 오히려 내란적 요소가 더 많다라는 발언을 이어갔다. 애초에 헌법을 멋대로 이용해먹는 것을 그만두게끔, 미치광이 손에서 핸들 뺏는 것과 내란이 무슨 연관성이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러한 사태는 어떤 점에서 문제인가? 단순히 서부지법에 들이닥친 폭도들만이 문제인가? 그것은 표면적 현상일 뿐이다. 그 뒤에는 전광훈으로 대표되는 극우가 운영하는 미디어와 SNS를 통한 자극적인 선동이 존재한다. 20세기의 극우가 지식인들의 힘을 빌려 형태를 제대로 갖춘 이념 체계를 가지고서 영향력을 확장해 나갔다면, 21세기의 극우는 지식인의 힘 없이 미디어와 SNS 매체를 이용하는 자극적인 선전·선동에 의지한다. 어떻게 보면 불량식품 같은 존재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먹을 때는 맛있는데, 정작 먹고 나면 남는 것은 없는 그런 존재 말이다. 그러나 왜 우리가 어릴 때 불량식품 좋다고 먹었겠는가? 당장 맛있으니까 먹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21세기의 극우는 불량식품의 메카니즘과 그닥 다르지 않다. 일반적인 주류 흐름에서 소외된다고 여기는 20~30대 남자들에게 있어 자극적인 단맛을 내는 유혹을 한 것이고, 그것에 그대로 휩쓸려 들어간 결과는 헌정을 문란케 하는 희대의 사건으로 발현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불량식품 같은 존재라고 해서 마냥 무시할 존재는 아니다. 그리 무시하다가 세계사에서 다시없을 희대의 막장이 탄생하는 것을, 우리는 안다. 나는 이번 서부지법 사건을 바라보면서 나치의 집권 과정을 떠올랐다. 술 마시고 백주에 거리에서 행패부리던 전후 사회 부적응자들이 어떻게 하나의 국가를 집어삼키고 세계를 다시 불구덩이로 몰아넣었는가? 우리는 단순히 나치에게 표를 던졌던 독일 국민들이 멍청해서 그런 행동을 했다고 호도하거나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그들을 멍청하지 않았다. 나치가 권력을 잡기까지는 수많은 방해물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사회주의 계열 정당을 2개나 가진 나라였다.* 사민당과 독일공산당이 1919년의 스파르타쿠스 봉기를 기점으로 철천지원수가 되어버리면서 나치를 과소평가하는 동시에 나치의 위협이 가시화되는 상황 속에서도, 사민당과 중앙당의** 기세는 결코 나치가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정치 스펙트럼상 사민주의와 공산주의, 기독교 사회주의는 나치의 극우적 이념의 최대 적수이다.) 게다가 당시 독일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주였던 프로이센 주는 공업지대가 많은 특성상 사민당의 공고한 지지기반이었다. 나치는 이 기반을 무너뜨리기 위해 바이마르 공화국을 끝장내려는 복고적인 정치 엘리트들과 암거래를 한 끝에야 1932년 프로이센 쿠데타를 통해 사민당의 정치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나치는 히틀러가 총리로 임명되기 불과 1년 전에야 간신히 사민당을 누른 것이다.

여기에 더해진 것은 공화국의 가치에 동조하지 않았던, 오히려 공화국을 끝장내고 싶어 했던 반동적인 정치가들의 방심이었다. 중앙당 당수였던 하인리히 브뤼닝(1885~1970, 총리 재임 1930~1932)은 나치를 과소평가해 결국 마지막 안전장치 역할을 스스로 버림으로써 나치의 집권과 수권법 통과를 초래해 버렸다는 점에서 지금까지도 역사적으로 혹독한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브뤼닝만이 나치의 집권에 있어 역사적 비판의 대상은 아니다. 사실 더 심각했던 것은 브뤼닝 이후 총리가 된 프란츠 폰 파펜(1879~1969)과 정치군인이었던 국방장관 쿠르트 폰 슐라이허(1882~1934),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 등 보수적 정치가들의 방심이었다. 그들은 히틀러와 나치를 언제든 쓰고 버릴 수 있는 연장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완벽한 오판이었다. 그 연장에 의해 슐라이허는 장검의 밤 때 죽었고, 파펜도 사지 잘린 허수아비 신세가 되고 말았다.

동시에 거리의 권력 내지는 폭력으로 떠오르면서, 나치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독일 국민들이 마음에 들어할 만한 레토릭을 만들어 유혹하기 시작했다. 협상국이 강요한 명령이라고 여겨지던 베르사유 체제를 욕하면서, ‘명령이 만들었다고 여겨지던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를 헐뜯으면서, 각 계층이 원하는 바를 이것저것 다 들어주겠다는 감언이설을 하면서 사상의 잡탕을 만들었다. 당장 먹으면 맛있는 불량식품을 만든 것이다. 앞에서 말한 SNS를 통한 21세기 극우파의 선동은 그저 이것을 기술적으로 발전시킨 것일 뿐, 그 기본 원리는 그닥 다르지 않다. 기존에 존재하는 모든 질서가 맘에 안 든다고,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고 외치면서 만든 잡탕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그리고 전쟁으로 피폐해진 독일 국민들은 그것에 서서히 홀리기 시작했다.

 

*SPD(독일 사회민주당)와 KPD(독일공산당). SPD는 1875년에 창당되어 지금까지 독일의 여당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다. KPD는 1차대전 직후의 스파르타쿠스 봉기를 둘러싸고 벌어진 노선 대립 속에서 USPD(통합사회민주당)에서 떨어져나온 공산주의 계열 분파가 만든 정당이다. 전후 KPD는 동독의 SED(독일 사회주의통일당)에 합병되면서 사라졌다.

 

**중앙당(Zentrumspartei): 가톨릭 가치를 중심으로 내세운 중도우파 정당. 독일제국~바이마르 공화국 시기까지 정치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정당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서부지법 폭동에 가담한 자들을 포함해 배후에 있는 극우 세력에 대한 경계가 필요한 것이다. 다행히 이 나라가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처럼 정치인들까지 모두 대한민국의 민주공화국을 끝장내겠다는 반동적인 존재들 천지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비교적 소수라 할 지라도 그들의 행동과 사고 메카니즘이 나치의 모습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 그들이 만들어내는 서사가 실제로 작동하는 집단이 있다는 것에 있다. 결국 시민이 정치를 제대로 감시하지 않는 공화국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독일이라는 사례를 통해 보았다. 실제 정치에서 별로 믿음직하지 않은 대리인인 그들이지만, 적어도 그들이 허튼 짓하는 것을 시민의 힘으로 막을 수 있다는 것 역시 우리는 경험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방심하는 순간 그들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칼을 사리사욕을 위해 시민을 향해 휘두른다.

 

 

 

(*서부지법 폭동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 글을 쓰려고 했었는데, 그 사건이 일어나고서 이 글을 다시 보충하다 보니 할 말이 많아지는 것에 대해선, 독자 여러분들의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아직까지 그것을 깔끔하게 압축하는 실력은 부족한 듯 하다.)

 

 

 

이 글을 계속 읽는 사람들 중에는 이놈은 뭐 전생에 보수 집단에 몰매 맞고 죽었나싶은 생각이 들 분도 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해도 내 입장에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지금까지 이 글에서 그리 말해 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수가 사라져야 한다는 입장에는 찬동할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실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수의 역할은 현실에서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진보만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병든 사회가 될 것이다. 진보가 아무리 좋은 것이라 여겨진다 해도, 어떤 급격한 사회적 변화가 하나의 문제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런 점에서 보수는 필요한 존재이다. 좌익이건 우익이건 하나의 날개만 남은 집단이 유지되는 방식은 폭력이라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좌익이라는 날개만 남은 집단에서는 적색테러와 강제노동수용소가 생겼고, 우익이라는 날개만 남은 공간에서는 백색테러와 강제노동수용소, 절멸수용소, 민간인 학살이 생겨났다. 전자는 소련이었고, 후자는 나치독일과 정부수립 초기 대한민국이었다.

 

서양사를 공부하면서 느끼는 점이 하나 있다면, 대한민국의 정치 스펙트럼이 아주 기이하다는 점이 있을 것이다. 보통 보수와 진보로 갈리면, 보수에는 보수주의와 기독교 계열 정당이 위치하고, 진보에는 사민주의나 사회주의 계열 정당이 위치하게 된다. 그런데 한국의 모습을 보면 진보와 보수가 결국 보수 안에서 갈라지는 기이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친일 행적이 있는 보수와 지주가 중심이 되는 보수라는 집단이 보수와 진보의 위치를 차지하는 괴상한 광경이 벌어지게 된다.

사실 이 점에서 대한민국은 제대로 된 보수도, 진보도 나올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리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념을 둘러싸고 벌어진 내전 때문이었다. 맘에 안 들지만 적어도 공생할 수는 있었던 가능성은 이념을 둘러싸고 벌어진 전쟁 때문에 사라졌다. 그 덕에 지배 이데올로기와 다른 이념은, 그것이 설령 극단에 간 것이 아닌 현실과 유화적인 사상이라고 해도 바로 공격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전쟁으로 인해 극단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우파는 자신들만의 기억의 성을 더욱 공고히 만들었다. 그것은 적어도 이해의 여지는 있다. 가족과 친척, 친구들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경험을 했는데, 이론을 들이댄들 그것이 과연 이해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이후의 행패가 동정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이해 뒤에 숨어 그들은 자신들만의 기억의 성을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온갖 패악질을 일삼았다. 대한민국이 민주화되기 이전의 40년은 우파들이 기억하는 장밋빛 낙원과 이름없는 백장미가 꺾여 바닥에 널브러지는 상황이 공존한 시기였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옛말을 왜 있겠는가? 하나의 사상은 얼핏보면 국민총화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포장된다. 그러나 그 하나의 사상만을 강조하던 집단이 맞은 결말이 무엇인지 우리는 안다. 일본 제국과 나치 독일은 과거형이 되었고, 현재진행형은 지금의 북한이다. 흔히 반공주의에서 쓰는 레파토리가 하나 있다.

 

 

공산주의자들이 말한다. ‘다 같이 잘살자는 이념이 왜 나쁜거냐?’라고 말이다.

반공주의자들은 이렇게 답한다. ‘너희들은 그 뜻에 동조 안 하는 놈들은 다 죽이지 않느냐라고 말이다.

 

 

그 말이 비단 공산주의에만 해당할 것 같은가? 뭐든 극으로 간 사상은 그리될 위험성을 품고 있는 법이다. 차라리 반공주의니까 나치독일이나 일본 제국이 낫다고 여기는 자들이 있다면, 나는 이 말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 놈은 제정신을 잃은 미친놈이라고.

 

 

 

 

이번 계엄사태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사건 속에서 우리는 우파가 극우가 되어간 과정, 그 과정에서 보수가 어떻게, 어디서부터 병들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터질 것은 필연이었다. 곪을 대로 곪아버린 것이었으니 말이다. 단지 우리가 작두 타는 무당이 아니기에, 그 곪아버린 고름이 언제 터져버릴지를 정확히 특정하지 못할 뿐.

그 문제점은 우리가 본 윤석열 개인의 성격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민주화 이후에 경찰을 대체한 권력으로 떠오른 검찰이,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을 권위주의 독재 국가를 떠올릴 만한 존재로 되돌리려 벼르고 있는 망령이 되어버린 것을 그대로 투영한 것이 윤석열의 모습일 것이다. 자신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집단은 다 반국가세력으로 매도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자가 있다면 바로 간첩의 조종을 받는 집단이라고 망상을 펼치는 고약한 버릇은 그동안 자신들이 힘이고 정의고 진리라고 여겨온, 검찰의 오만방자하기 그지없는 폐족의 사고관을 그대로 압축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윤석열이라는 한 개인만이 그런 사고를 체화했을까? 개인은 집단과 유리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런 점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수구, 극우는 사회의 문제인 동시에 폐족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보고 이런 질문이 들어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건전한 보수냐고 말이다. 나는 그 표본으로 조갑제를 들 것이다. 물론 조갑제가 강경한 보수주의자이고 전향하기 전에도 강경한 우파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논란이 될 만한 행적도 많았던 인물이었고, 그것은 그의 과오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자신의 본업인 기자라는 영역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업적을 남겼다. 진보 성향이 강한 신문사도 1970~80년대의 조갑제는 비판하지 않는다는 점은 그가 남긴 족적이 얼마나 큰 것인지 짐작케 한다. 조갑제는 컴퓨터도 SNS도 없던 시절, 그리고 서슬퍼런 군부독재가 활개치던 시절에 직접 두 발로 뛰어다니며 취재를 했고, 권력층의 비리를 메스로 도려내듯 사정없이 비판했다. 어떤 외압과 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추구하는 그의 모습은 정치적 성향과는 별개로 진영 논리에 묻혀선 안 될 모습이다.

동시에 그는 정치 논객으로서 지켜야 할 정도(定道)’가 무엇인지 인지하고 체화한 인물이었다. 조갑제는 정치적으로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대통령을 비판할 때도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면서 비판했고, 자신의 기준에서 공()이 있다고 판단된다면 자신과 정치적인 견해가 다른 대통령이라 해도 그것을 반드시 칭찬했다. 그는 강경한 보수였지만, 지금의 인터넷과 거리의 극우처럼 흑백논리나 증오에 기반하고 증오만을 양산하는 싸구려 불량식품 같은 언어를 남발해 대지는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건전한 보수였고, 진보에도 필요한 처방약일 것이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