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남북한의 노농운동사 인식에서의 성과와 한계
북한의 입장에서 노농운동 연구는 시대적 과업으로서 규명 필요성을 인지한 일제강점기 사회상의 모습과 사회주의 혁명에 부여되어야 했던 당위성의 탐색, 현재를 위해 진행된 과거를 대상으로 한 정치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북한의 일제강점기 노농운동 연구는 마르크시즘적 역사이론을 하나의 축으로 삼아 논지를 전개하였고, 그 과정에서 식민지로서의 조선의 경험을 반영하여 계급혁명과 민족투쟁의 개념을 연결하려 시도하였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것은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을 위시한 식민지사회의 성격에 관한 연구였다. 또한 통계를 이용해 식민지사회의 성격을 규명하려 시도하면서 일제의 수탈적 성격을 규명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통해 북한은 저항의 관념을 주요 축으로 하여 조선 민중의 행동과 사고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렇다면 당시 남한은 어떠했는가?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노농운동 연구의 전사(前史)였던 남한의 내재적 발전론 연구 역시 사적유물론 수용에 있어 북한의 역사 연구와 결코 무관치 않았다. 계급적 이해관계가 민족으로 수렴되면서 평화로운 내재적 발전으로 한국 역사가 전개되었다는 설명에서와 같이, 시대적 한계로 인해 계급투쟁의 성격과 사회혁명 등 사적유물론의 핵심 요소가 배제되며 근대화론과의 구별이 모호해지는 모순에 빠졌다는 이론적 한계를 가졌으나, 이러한 사적유물론의 수용은 남한 역사학 연구에서도 중요한 국면이었다. 사적유물론에 입각한 시대구분이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이론적 틀을 제공함과 동시에 자본주의 맹아를 조선후기 사회·경제에서 검출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분단 이후 남북한 역사학이 한국사 발전과정을 세계사의 기본 법칙으로 설명하려 했던 백남운의 시도로 서로 연결된 지점이자 사회과학 등 여타 학문분과의 연구성과 수용을 통해 보편적 역사발전의 법칙으로 한국사를 체계화하려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시대적 과제로서의 공통분모로 결합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한 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의 점을 통해 남북한의 일제강점기 노농운동 연구는 다음과 같이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체제를 지탱하는 이념의 차이로 인해 역사 연구의 시각에서 다른 점을 보였으나, 해방 이후 남북한 역사학계의 시대과업 중 하나는 제국의 지식권력을 중심으로 하는 식민사학 타파와 신국가 건설에 기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북한의 노농운동 연구는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사회적 성격을 규명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하여 식민권력을 향한 저항의 측면에서 조선 민중의 다수를 구성했던 농민과 노동자들을 조명하려 한 과정이었다. 특히 1950년대까지 남한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던 식민사학을 일소하려는 노력이 북한에서 먼저 이뤄졌다는 점은 해방 이후 한국사학계의 역사연구에 있어 중요한 지점 중 하나였다고 사료된다. 그러나 변증법적 유물론에 입각한 역사발전론의 도식성 비판과 함께, 북한의 노농운동 연구에서 나타난 한계는 저항 이외의 여타 요소 고려에 있을 것이다. 이는 식민사학 일소의 일환으로 식민지 시기의 저항의 측면을 역사학 연구의 공식 의견으로 정립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으로 사료되며, 이러한 점은 적극적 저항 이외의 당대 민중의 반응을 ‘종파적 책동’, ‘계급주의적 분열’로 일축하는 점에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한 시대에서의 민중의 각기 다른 반응은 노농운동 연구에 있어 민중의 삶을 실증적으로 규명하려는 노력에서 나타날 대표적인 관문이라는 점에서 남한 역사학 역시 고려가 필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타파할 방법으로 한국사의 체계화를 최우선 과제로 인식하였고, 그 과정에서 사회발전 단계에 의한 시대구분론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였다. 물론 계급투쟁과 사회혁명의 요소를 배제한 형태로 역사발전론을 수용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시대구분론 수용이 사적유물론을 전적으로 긍정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를 통한 북한의 일제강점기-노농운동 연구성과의 부분적 수용은 조선 후기 사회경제사 연구를 위시한 내재적 발전론 연구로 이어지면서 19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과 결합된 사적유물론 연구 팽창과 한국사 연구에서의 식민사학 타파로 나아가는 전사(前史) 단계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적유물론을 부분적으로 수용한 내재적 발전론이 이념상의 이유로 사적유물론의 핵심 요소를 배제하고 이론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이론적 모순, 내재적 발전론이 미국발 근대화론과 자본주의의 진보성을 부각함과 동시에 박정희 정권의 ‘주체적 민족사관’에도 작용하면서 유신체제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는 점,50)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외쳤지만 결국 서구식 발전모델과 서구식 근대성을 준거로 삼았다는 점에서 남한의 노농운동 연구의 전사(前史) 역시 일정한 한계를 가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Ⅲ. 결언: 남북한 역사연구의 합의점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까지 남북한 역사학계의 일제강점기 노농운동 연구를 통해 해방 이후 한국사학계가 지향한 바와 목표 달성을 위한 연구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남북한 역사학의 합의점은 존재하며 공유할 수 있는 요소는 어디에 있는가?
한국사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논하면서, 한국사의 주인공은 한국인이며 한국인은 곧 한민족에 대응된다고 주장하였다. 북한은 『조선통사』 서문에 자신의 역사를 ‘단일민족이며 문명한 민족이자 외래 침략을 물리쳐 문화를 창조함으로써 자주성을 옹호실현한 조선 인민의 역사’로 규정하였다. 물론 현대 역사학에서는 민족주의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견지한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지만, ‘제(諸) 요소를 공유할 수 있는 하나의 민족’이라는 개념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또 다른 문제는 바로 역사학의 정치성일 것이다. 이는 과거를 공유한다고 해도 상대의 민족의식을 거부하는 양상, 한 국가의 국민을 만드는 과정에서 역사학이 갖는 역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과거를 공유하려는 작업이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속단하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 다룬 바와 같이, 공통의 경험 속에서 등장한 문제의식과 그를 통해 역사학이 갖게 된 시대 과업은 남북한 역사학계가 해방 이후 상이한 국가체제 하에서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사학 일소와 한국사의 체계화라는 목적의식 하에 각각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반봉건사회론으로 연구성과를 도출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비교적 일찍 주목한 것은 일제강점기 노농운동이었고, 민중을 사회변혁의 동력원으로 생각한 북한의 사관이 1980년대 남한에서 새 역사연구의 조류를 만드는 데에 일정 부분 공헌했다는 점에서 남북한의 역사학이 서로에게 미친 일정한 영향력과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본 연구에서는 남한 역사학이 북한 역사연구에 미친 영향을 찾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최소한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초월하려는 시도가 분명히 한국사 연구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물론 1970년대 이후 북한이 대내외적 한계에 봉착하며 내세운 주체사상의 전면화와 이로 인한 북한 역사학의 정체는 현실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부분에만 연구가 제한될 경우, 역사학적 해석이 연구 결과가 아닌 외부로부터 규정된 상수(常數)가 됨에 따라 장기적 발전을 저해한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역사학이 현실정치에 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대적 명제를 경계해야 할 필요성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한편으로 북한의 역사학 전개 과정은 현실에 대한 역사학의 실천적 적용을 강력히 보여준 사례였다. 이는 집체적 연구를 통해 산출한 성과를 대중에 홍보하기 위한 출로를 모색해 온 과정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근래 역사학계가 마주하고 있는 역사학의 대중화 문제와도 무관치 않다고 사료된다.
역사학은 대중에 있어 대표적인 순수학문 중 하나로 인식되지만, 실제로 역사학은 평가가 불가피한 정치적 성격을 띤 학문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남북한의 역사학 연구 과정은 인식의 편차가 분명히 존재한다. 이는 앞으로의 연구에 있어 상호 간의 역사학 연구성과를 대등한 위치에서 공유하는 순간이 왔을 때, 어떤 인식이 필요한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이 점에 있어 일제강점기 노농운동 연구는 역사학 이론 발전에 기여했던 과거에 관한 인식 공유가 상호이해의 판로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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