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에서 계속
1. 조종사들의 일과와 생활
그렇다면 비행사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훈련을 받는가? 이번에는 이 점에 대해 보도록 하자. 임관한 비행사들은 무급비행사에서 시작해, 자신의 능력과 당성평가 등에 따라 비행사, 책임비행사, 중대장, 비행대장, 대대장, 연대장 순으로 직급이 오르게 된다. 한편, 비행사들도 사람이기에 쉬어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 고로 비행사들도 휴가는 차려진다. 규정상 비행사에 대해서는 정기휴가는 20일, 특별 휴양은 10일을 보장하도록 되어있기에 연 휴일은 최대 30일이 보장된다. 보통 비행사들은 이 기간을 이용해 맞선을 보거나 결혼식을 올리거나 고향에 잠깐 가 인사드리고 오는 식이다.
훈련의 경우, 북한의 열악한 상황을 보여주는 가장 직관적인 사진인 ‘판때기 계기판이랑 비행기 모형 들고 2인 1조로 지도 위에서 돌아다니는 쇼’가 가장 유명하긴 하다. 물론 이것만 하지는 않는데, 그 점에 대해서도 보도록 하자. 일단 북한 공군 비행사들은 연간 3일에 1번을 단위로 하여 전체 훈련계획을 수립한다. 이때 주로 진행되는 훈련은 지상감각훈련, ‘떼르’ 훈련, 노비행대에 의한 전술연구 등이 있고, 그 외에도 전술연구를 포함한 정기적인 교육이 진행된다.
우선 지상감각훈련은 앞서 말한 2인 1조 모형 쇼, 땅에서 모형 비행기를 들고 비행하는 것을 상상하면서 움직이는 ‘훈련’ 이다. 북한 공군 내에서는 ‘도보 비행훈련’, ‘상상비행’ 등의 명칭으로도 부른다. 최근에는 시뮬레이터를 이용해 훈련을 하는 것으로도 보이는데, 문제가 있다면 사진을 통해 봤을 때 시뮬레이터가 구현한 화질 해상도 등이 무슨 구세대 게임 화면같이 보인다는 것, 시뮬레이터의 구조가 현대에 힘 좀 쓰는 국가의 공군이 쓰는 것과 같이 입체적으로 비행상황을 체감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라 화면만 들여다보면서 조종석 기자재 조작법만 간신히 익히는 수준의 물건이라는 점이 있겠다.
다음으로 ‘떼르’ 훈련은 지상 모형틀을 가지고 하는 훈련이다. 실제 가동은 안 되지만 조종석은 멀쩡한 항공기의 조종석을 콕핏 채로 떼어내 만든 지상용 훈련 기자재로 실시하는 훈련이라고 보면 된다. 속된 말로 ‘깡통 장비’ 훈련이라고 보면 된다. 방공포병학교를 나온 ‘빵포’ 특기 현역·예비역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발칸 사격술 실습할 때, 실사격은 안 되는 KM-167 발칸 가지고 ‘적기 출현, 실모의탄 결합, 사수 승포, 전원 스위치 온, 조준기 잠금쇠 풂’ 등의 조작 요령을 입으로 외치면서 실습하는 것을 전투기 조종하는 것에 적용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마지막으로 노비행대에 의한 전술훈련은 현역 비행사들의 실제 비행훈련 부족을 보충하려고 만든 제도이다. 노비행대 소속의 비행사들은 주로 7~800시간 정도의 비행시간을 보유한 중년 이상의 조종사들인데, 비행시간을 보면 알 수 있듯 그나마 북한군의 경제적 상황이 멀쩡하던 시기에 훈련을 받고 활동한 자들로 구성된 조직이다. 이들이 그나마 멀쩡히 돌아가던 시절에 자신들이 경험한 노하우 등을 새로운 조종사들에게 교육하고 모형틀에서 젊은 조종사들이 실습하는 식으로 훈련을 진행하는 셈이다. 노비행대의 경우 소련이 건재하던 시절에 소련에서 위탁교육을 받고 온 유학파도 일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90년대 프룬제 아카데미 사건으로 인해 소련 유학파 장교들이 군에서 대거 숙청당하면서 쓸려나간 탓에 그 수가 많지는 않다.
여기서 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무리 공군 조종사가 하루 종일 비행기만 타는 것은 아니라지만, 지상에서만 이렇게 한다고 비행 실력이 늘어나나? 공군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런 질문을 안 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이런 기형적인 모양이 나온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없으니까. 1부에서도 말했다시피 공군의 능력은 그 나라의 자본 동원 능력과 기술적 능력, 다시 말해 그 나라의 부강함과 직결되는 성향이 굉장히 강력한 군종이기 때문에, 경제가 무너지면 공군력을 유지할 정상적인 훈련이 하나도 안 이뤄지는 것이다. 물론 북한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비대칭 전력을 확충하는 한편 ‘그나마 키운 조종사들 능력 까먹지는 말아야지’ 같은 심정으로 지상 훈련을 포함해 이론 교육이나 지상실습 선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려 온몸을 비틀지만 결국 ‘정상적으로 공군력을 유지하려면, 돈을 많이 써야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이런 이상한 모양이 나온 셈이다. 실제 비행 실습은 연간 3~40시간 정도가 고작이며, 날 좋은 때를 봐서 한 달에 하루 20~40분 정도 훈련한 뒤 돌아오는 셈이다. (비교군을 놓고 설명하자면, 현재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들이 연 130시간 정도 실제 비행훈련을 하고 나머지는 시뮬레이터 훈련으로 채우는 방식을 쓴다. 그나마 이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조종사들의 기량을 안 해치는 선에서 항공유 아끼려고 이러는 것인데다, 시뮬레이터 훈련 역시 최대한 실제 비행과 유사하게 기술적으로 구현한 물건으로 하는 것이지만 북한은 그런 조건이 안 차려진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그 외 실시되는 전술연구를 위한 정기적인 교육이나 훈련은 대표적으로 다음이 있다. 첫째, 매주 1:50만 축척 항공지도 2장 그리기. 북한 전역 및 주변 국가 지형(주로 남한 지형)을 숙달하는 것이 목적인 훈련이다. 둘째, 남한에 대한 군사사항 연구와 전술방안 연구보고서 작성 및 제출. 셋째, 토요일마다 실시하는 정치상학. 이것은 주로 당과 수령이 내린 방침과 결정을 익히면서 어떤 방향과 원칙을 통해 방침을 실천할 방법을 수립할 것인지 등을 학습하는 것이다. 물론 그 방향과 원칙은 수령이 말한 지시사항이 첫째요, 둘째는 당이 정한 사항이다. 그 외에도 월마다 실시하는 12시간짜리 사상 집중학습, 수요일마다 실시하는 강연회 역시 있다. 마지막으로 비상동원 훈련. 이것은 항상 출동 준비가 되어있는지를 확인하는 불시검열이라고 보면 된다. ‘항상 남쪽에서 쳐들어올 준비를 하니 우리도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이유로 군인들을 조으는데 조종사들은 이런 경향이 더욱 강하게 적용되는 집단 중 하나이다. 비상동원 명령이 내려오면 조종사들은 비행 헬멧·산소마스크·낙하산 등 비행 장구, 색연필·삼각자·비례자·계산자·컴퍼스(나침반) 등 항법 장비, 비상시 사용하는 조종사 비상용품 키트, 방독면, 권총을 챙겨 각자 지정된 장소에 모인 뒤 지하 대피소로 뛰어가게 된다. 이때 집결해 장구류 점검을 진행하는데 여기서 무언가라도 하나 빠뜨리면 바로 ‘싸움 준비를 항상 해야 한다는 것이 당의 방침이고 강령인데 그걸 잘 안 지켰다’는 식으로 생활총화에서 압력이 들어오게 된다.
실제 비행훈련을 할 때에는 앞서 말한 비행 장구, 항법 장비, 비상용품 키트, 방독면, 권총 등 필요한 장비들을 챙겨 들어가게 되며, 비행하기 직전 조종사들의 몸 상태를 확인하는 절차가 진행된다. 훈련이 예정되면 훈련 당일 아침, 비행 군의장이 간호원들을 시켜 비행사들의 집에 가 비행사의 아내들로부터 생활표를 가져와 건강상태를 확인한다. 생활표는 ‘식사 xx% 이상, 잠 x시간, 기분 상태 xx’와 같은 식으로 작성하게 되어있다. 그 다음 군의관이 훈련이 예정된 비행사들의 혈압과 맥박, 체온을 측정하고 혈액검사를 통해 이상이 없다고 확인되면 비행 허가가 떨어지는 형태로 실제 비행훈련이 진행된다.
그럼 조종사들의 일과는 어떨까? 이철수는 귀순 당시 기자회견에서 하계 기준 비행사들의 일과를 증언한 바 있다. 이번에는 일과표를 통해 조종사들의 일과를 보자.
0500 기상 및 아침 운동 (체조 및 아침 구보)
0540~0620 세안세치 등 개인정비, 출근 준비
0620~0700 아침 식사 (아침은 군관 사택(관사)에서 먹는데, 사택은 부대에서 3~4분 떨어진 곳에 있다)
0700 라디오 보도 청취
0710~0800 출근. 사무실 청소 및 독보
0800~0900 정치상학
0900~1200 정치·군사전술 토의
1200~1300 점심식사
1300~1500 오침
1500~1730 체육
1730~1800 목욕
1800 하루 사업 총화 및 세포총회 실시
1830 퇴근 및 식사
2000~2200 개인 단위 전술연구 실시
추가적으로 설명을 넣자면 다음과 같다.
1) 독보: 사실상 군대뿐만 아니라 북한의 모든 기업소 단위에서도 실시하는 것이다. 『로동신문』, 『조선인민군』 신문 사설이나 김씨 일가의 로작 등을 읽고 내용을 숙지하는 시간이라고 보면 된다.
2) 정치상학: 대대정치지도원이 주도해서 진행한다. 당의 방침과 정책을 전달하고, 당이 제시한 정책을 관철하는 데에서의 결함을 지적한다. 또한 군에 대한 문민통제(사회주의 국가에서 문민통제는 당이 군을 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를 담당하는 총정치국으로부터 내려온 지시문 내용을 전달받고, 당 세포비서(*)로부터 수행해야 할 과업에 관한 사항을 전달받게 된다.
3) 정치·군사전술 토의: 련대, 대대별로 진행하며, 군사학 강의를 듣거나 대남공격 전술을 토의하는 시간이다.
4) 점심식사: 점심은 영내에서 먹는다. 하전사나 사관들은 옥수수쌀로 지은 밥과 반찬 서너 가지가 나오는데, 문제는 이때도 ‘염장무 3형제’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나마 여름에는 부대 내에서 자체적으로 키운 양배추, 오이, 가지, 호박이 나오긴 하는데, 문제는 이것조차도 그냥 삶아서 소금간만 해서 반찬으로 주는 식이다. 사실 어쩔 수 없다. 식용유나 고춧가루 같은 조미료가 정상적으로 공급이 안 되니까 반찬으로 생각할 만한 볶음이나 무침으로 만들 수 없어서 이러는 것이다. 그 외에는 단백질 보충을 위한답시고 1인당 콩비지 100g이 가끔 차려지는 식이다. 군관들은 조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이쪽은 그래도 국에 기름기가 보이고, 반찬이 최대 12가지는 나오기 때문이다. (참고로 북한군 식단은 우리처럼 식판으로 배식하는 게 아니라, 하전사 군관 가릴 것 없이 알루미늄 그릇에 담아서 주는 식이다.)
5) 체육: 보통 나이 먹은 인원들은 탁구를 치고, 젊은 인원들은 축구나 농구, 배구를 주로 한다. 조종사들은 여기에 더해 철봉, 평행봉, 회전륜, 달리기 등도 진행한다. 이철수는 대대별로 구기 종목 경쟁을 붙였다고 증언했는데, 대대별 경기에서 점수차가 벌어지는 형태로 지면 호상비판을 시킨다고 증언한 바 있다. 호상비판을 통해 사람 목구멍에서 홧덩어리가 올라오게끔 모욕을 줘서 분을 일으키게끔 하는 식으로 경쟁을 붙인다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이빨 부러지고 타박상 입는 건 예사일 정도로 격하게 대대별 경기가 벌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6) 개인 단위 전술연구 실시: 부대로 조종사 개개인이 나와 하는 자체적인 연구나 훈련이다. 사실 자발적으로 하는 것도 있지만, 위에서 분위기를 조성하다보니 이러는 면도 무시할 수는 없다. 보통 이때는 지상연습틀 훈련, 속칭 ‘깡통 장비’ 훈련을 하거나 항공용 조준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각도-거리별 목표물 조준 연습 등을 한다.
* :여기서 세포란 러시아어 야체이카(яче́йка)를 직역한 것인데, 공산주의·사회주의 운동가들이 소규모로 모여 모임을 갖는 최소 단위의 소조직을 말한다. 세포비서는 그 소조직인 세포의 지도를 담당하기 위해 당이 파견한 지도자이다.
그럼 앞서 말한 휴가를 제외하고 주말에는 휴일이 있나? 미안하지만 자기 개인시간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일과를 소화하는 것이 북한 공군 조종사들의 일과이다. 휴식일은 연대마다 다르지만 군사학만 일요일에 안 한다 뿐 전투직일은 365일 유지하도록 되어있다. 전투직일은 쉽게 말해서 비상대기라고 보면 되는데, 3일에 1번씩 하도록 되어있다. 3개 대대가 순서대로 돌아가며 1개 대대당 8명을 차출해 진행하는데, 일출 30분 전부터 일몰 10분 전까지 실시하고 한번 직일을 나가면 2시간 대기와 2시간 휴식을 반복하는 식이다. 전투직일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언제 적이 쳐들어올지 모르기에 비행장에 나가서 전투기 좌석에서 출격준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명분이 그럴듯하다 해도 조종사들 입장에서는 정말 사람 잡는 일인 것이 혹한 혹서에 전투기 콕핏에서 대기타는 게 결코 쉬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비행복 위에 비상용 구명조끼와 낙하산 하네스를 착용한 상태로 대기를 하게 되는데, 이러면 사실상 전투기 좌석에 묶이는 거나 다를 바가 없다. 이 상태로 비행 헬멧은 쓴 상태에서 산소마스크는 옆에 두고 대기하는 식이다. 실제로 이철수는 이 전투직일 때문에 조종사들이 심심하면 치질이나 신경통에 걸린다고 토로한 바 있다.
2. 조종사들에게 차려지는 혜택
일반 주민들의 입장에서 공군 조종사들은 선망의 대상이다.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띄워주고 지원해주는 직종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종사들은 월마다 배급을 받는데, 규정상 조종사 개인은 양곡 800g (쌀과 옥수수 비율은 5:5 내지는 4:6), 판형 초콜릿 15개, 버터 500g, 돼지고기 3kg, 닭고기 3kg, 당과류 2~3kg, 식용 기름을 지급받게 되어있다. 그 외에도 등유, 계란 월 150알, 가끔씩 나오는 고래고기, 설탕 등이 노르마로 지급된다.(**)
** 노르마: 러시아어 Norma에서 비롯된 단어. 원래 의미는 노동자가 1일 임금을 얻는데 필요한 표준 노동량 내지는 책임 생산량을 뜻한다. 일어에서는 이 단어가 할당량, 달성 조건, 최소 해야 할 일 등의 의미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특별공급물자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물론 이것도 조종사 개인에게만 배급이 이뤄지는 것이라 조종사 가족들은 배급이 제대로 안 이뤄져 가족들이 비행장 근처 토지를 개간해 알아서 먹고살아야 한다거나, 난방용 기름은 정기배급이 안 되어서 받은 배급품이나 노르마 물자를 시장이나 재일교포들한테 달러를 받고 팔아 물자를 사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는 등 문제가 한두 가지는 아니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일반 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그나마 고생이 덜한 것이 적어도 조종사 개개인에 대해서는 배급이 나온다는 점 때문이다. 이미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직전부터 식량배급 제도가 무너져버렸기 때문에 배급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한시름 던 것이 되기 때문이다. 당장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비행사들은 핵심 인원으로 분류되었기에 배급이나 품목에 문제가 발생했을지언정 배급이 완전히 끊어져 굶어 죽는 꼴을 본 경우는 없었고, 가끔씩 수령 일가가 주는 특별배급이나 선물이 내려오는 것도 있기에 나름대로 빡세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보상은 받는 셈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비행사에 대한 문제를 처리할 때는 수령의 승인을 얻어야만 하기에, 정치범이 아닌 이상 일반 형사범의 경우 직계가족 중 비행사가 있으면 과 사실을 지워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어느 정도 뒤를 봐주는 것 역시 비행사이기에 얻는 특혜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주는 이유는 직종이 특수해서 키우는 데에 엄청난 시간과 돈이 드는 만큼 최대한 보존하려고 그러는 것도 있지만, 다루고 있는 전략무기 특성상 언제 어떻게 타국으로 망명을 시도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비행사들이 이런 경우라고 볼 수 있다.
3. 조종사들의 고충
하지만 일반 인민들의 입장에서 상당한 대우를 받고 살아가는 이들도 북한 내에서는 털어놓을 수 없는 고충이 쌓인 것은 당연지사. 애초에 우리가 항상 모델로 삼는 미군조차도 처우에 불만이 나온다는 소리가 가끔씩 들려오는데, 도저히 정상적인 꼴이라고는 볼 수 없는 국가인 북한이라고 해서 아닐까. 일단 조종사에 대한 처우 이전에 공군 전체의 입장에서도 보면 조선인민군 공군의 문제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물자부족 때문에 정상적인 훈련이 안 되는 판이다. 이건 단순히 항공용 연료 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항공기 부품이나 윤활유, 유압유 같은 작동유도 부족한 판이라서 연대당 약 40기 정도 있는 전투기 중 10대만 겨우 띄우는 수준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머지 기체는 실제로 띄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닌지라 동류전환(부품유용)을 위해 지상에 계류하거나 격납고에 모셔만 놓는 상황이다. 물론 북한도 전투 기자재 문제를 해결해보기 위해 자체적으로 부품을 조립하거나 제작해 항공기를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공업 능력의 문제로 인해 전투기는 못 만들었고 헬기만 자체 제작하는 수준이라는 증언이 있었다. 이 증언에 따르면 순수하게 제작한 것이 아니라 부품을 조립하는 형태로 전투기를 제작해 본 적이 있었는데, 상공에서 동체 진동이 너무 심해 죽다가 살아나는 줄 알았다며 다시는 안 탄다고 시험 조종사가 학을 뗀 적도 있었다고 한다.
경제가 무너지면서 군인 개개인에 대한 생활과 규율도 무너져버렸다. 옛말에 곳간 속에서 인심 난다고 했고, 맹자가 항산(恒産)이 없고서야 항심(恒心)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을 왜 했겠는가? 제대로 생활이 보장되지 않다보니 탈영병도 속출하고 규율도 똑바로 유지되지 않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특히 제대를 앞둔 자들 중에서는 말년들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개기는 수준을 넘어서 명령 불복종 수준으로 뻗대면서 중대장이나 정치지도원이 와서 으르고 위협해도 나몰라라 하는 놈들까지 나왔다는 증언까지 있는 판이다. 그나마 공군의 상황은 육군보다는 낫다지만 절대적으로 나은 게 아니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경제가 무너지면서 최대 문제로 지적된 것은 항공유 불법 유출이다. 사실 경제가 무너진 이후, 국가 차원에서 신경 쓰는 병종이 아니면 육해공군이 골고루 내부 물자 도적질해서 밖에 팔아먹는 것은 북한군에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기름만 팔아먹는 것은 아니지만 내부 물자 불법 유출에서 유달리 심각한 것이 바로 이 항공유 불법 유출인 것이다. 비축물자로 가지고 있는 항공유를 훔쳐 파는 식인데, 항공유가 기본적으로 질이 좋은 기름이다보니 아에 부대 근처를 중심으로 불법 유통망이 형성된데다 연대장·연대정치지도원·보위부장부터 일반군관·하전사까지 계급 고하를 막론하고 기름을 훔쳐다 팔려는 자들이 득시글대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물론 이게 심각한 일인만큼, 군 수뇌부도 이런 행동이 적발되면 최대 사형으로까지 단속하지만 애초 경제가 무너져서 먹고사는 문제부터가 보장이 안 되다 보니 하는 자들은 ‘어차피 운 나쁜 놈만 걸리는 거지, 굶어 죽으나 총 맞아 죽으나 죽는 거는 매한가지 아니냐’는 식으로 이런 일을 계속하는 실정이다.
조종사들이 여유가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차려지는 것이 없는 일반 인민을 기준으로 할 때에나 그렇다는 것이지, 사실 객관적 기준에서 보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기는 매한가지이다. 이웅평의 증언에 따르면, 실제로 북한 경제가 그나마 멀쩡했던 1960~70년대에도 해외로 위탁교육을 받거나 기술교류를 목적으로 갔다가 귀국한 조종사들 사이에서 북한의 조종사 처우에 불만을 품는 발언이 몰래 조금씩 나오긴 했었다. 사소하게는 1977년부터 외화 사정이 나빠졌다는 이유로 조종사들에 대한 해삼, 버터, 초콜릿 등 부식 삭감이나 지급 중단이 진행되면서 ‘입이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주던 것도 빼앗아드냐’는 조종사들의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고, 군관용 주택이나 가정용 연료 공급에서도 열악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주택을 나라에서 제공해주니 주택값이 안 드는 것뿐, 그 주택의 상태가 도저히 사람 살만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다른 군인의 사택 방을 빌려 살림을 시작하거나 널마루 공사 한 번 하려고 공급되는 담배나 당과류를 제재소에 뇌물로 주고 자재를 구해와 직접 마감해 공사해야 하는 식이 비일비재한 점에서 조종사들도 그렇게 여유롭지는 않다. 연료 역시 매한가지인데, 석탄 난방을 하던 시절 기준으로 우리가 아는 연탄 형태로 공급되는 것이 아니라 탄가루만 배급해 주고 조종사가 휴일에 알아서 탄가루와 진흙을 배합해 조개탄을 만들어야 하는 식이다.
그리고 조종사들에게 있는 경제적 고충은 노후 준비도 포함된다. 이는 북한에서 당·행정·군 간부직을 하면 공통사항이긴 한데, 공화국 영웅 칭호나 시계 표창, 김일성 훈장을 받는 등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노후 보장(현직 기준 노임의 60%와 식량 배급 600g)을 안 해주는 것이 북한의 실정이다. 사실 배급제가 다 무너진 마당이라서 이런 노후보장 시스템도 의미없긴 하지만, 그나마 평양 시민이면 간헐적으로 나오는 배급 하나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모든 비행사가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기에, 개인이 알아서 노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에 있다. 보통 비행사들은 55세에서 60세가 되면 퇴직하게 된다. 이유는 건강상 문제다. 기본적으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중압을 몸으로 받아가면서 하는 일이 절대 쉬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여압복을 입긴 하지만 당장에 일어나는 망막출혈이나 일시적 실명, 실신과 같은 직접적인 신체적 위험을 막아준다 뿐이지 본질적으로 몸에 가해지는 부하를 막을 수는 없기에 신체적으로 노화가 빨리 와서 그전까지 조종사들은 노후 준비를 해놔야 한다. 이때 주로 많이 쓰는 것이 항공유를 외부에 파는 것이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군용으로 지급되는 물자기 때문에 개인이 함부로 처리하면 안 되지만, 이것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어서 이러는 것도 있거니와 항공유 처리 특성 때문에 이런 방법을 쓰는 것도 있다.
원래 항공유는 항공기 연료탱크에 한 번 적재하면 절대 재사용을 하면 안 된다. 이유는 기름 자체가 연료탱크를 서서히 부식시키기 때문인데, 차량은 도로 위에서 엔진 문제가 터져도 길바닥에서 꺼지고 그만이지만 항공기는 엔진 정지가 곧 추락사고로 연결되기 때문에 이 규정을 더더욱 깐깐하게 따지게 된다. 그래서 원칙상 항공기 연료탱크에 한 번 주입한 항공유는 한번 비행할 때 최대한 쓰고, 남은 분량은 모두 연료탱크에서 빼낸 다음 폐기하거나 항공기를 견인할 때 쓰는 토잉카에 주입해서 쓰게 된다. 이 점을 이용해 어차피 폐기해야 하는 연료를 시장에 팔아버리는 것이다. 항공기 입장에서야 못 쓰는 기름이지만 일반 차량이나 선박에서는 정말 질 좋은 기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조종사와 정비반이 5:5로 가르기로 합의해서 기름을 빼서 판 돈을 가지고 양측이 생활비로 쓰거나 노후 준비를 하는데, 이 때문에 조종사들은 위험천만한 행동도 서슴치 않게 된다. 애초에 실제 비행훈련을 할 일이 얼마 없다 보니 한번 비행훈련을 할 때 최대한 기름을 남겨보겠다고, 비행고도 1,500m 이상이면 그나마 재시동으로 어떻게 해볼 시간이 있으니 고도가 확보되면 항공기 엔진을 꺼버리는 것이다.
물론 경제적 여유뿐만 아니라 정치생활적으로도 조종사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실 지금까지 탈북한 대부분의 귀순 조종사들이 하나같이 밝힌 탈북 동기가 바로 경제적 이유가 아닌 정치생활적 통제였으니 말이다. 물론 정치생활적 통제는 생활총화나 사상투쟁회의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북한 주민들이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북한 조종사들은 핵심 직군, 그것도 무력을 다루는 핵심 종사자들이라는 점 때문에 그것보다 훨씬 더한 강도의 정치적 통제를 받는다. 대표적인 것이 앞서 언급한 정치상학·집중학습·강연회이다. 이걸 쉽게 설명하자면, 대한민국 예비역들이 다 경험해본 정훈교육을 떠올리면 될 듯 싶다. 문제는 이 정훈교육이 우리가 하는 그런 수준의 정훈교육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경험한 정훈교육은 시청각 자료 보고 교재 내용 읽고 문제 몇 번 풀고 끝나는 식이지만, 북한은 그런 정도가 아니라 사상교육에 사용되는 모든 로작과 강연 내용, 특히 수령 일가가 내리는 교시에 관한 것은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정중히’ 받아적고 정리해야 하며, 그 내용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다 익혀야만 하는 수준이다. 심지어 학습 정도가 불충분하다고 판단되면 진급이나 생활에서 당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비판을 가하고 불이익을 주는 수준이기 때문에 조종사들에게 가해지는 정치학습에서의 부담은 이만저만이 아닌 실정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후속편에서 조금 더 상세히 다룰 예정이다.)
-3부에서 계속
식민지에 대한 설명: ‘식민지’를 어떻게 볼 것인가? (5) | 2024.1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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