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작성에 있어 다음의 자료를 참조했다.
이한영 저, 『김정일 로얄패밀리』
2020.5 연합뉴스 기사
2020.6 데일리 NK 기사
2021.02 조선일보 기사
2022.10 동아일보 기사
디지털 북한 백과사전
2021.11 RFA(자유아시아방송) 기사 등
*1) 이한영: 본명 리일남. 김정일의 내연녀로 잘 알려진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의 아들로, 김정일의 처조카. 탈북 후 김정일 일가의 내면을 세상에 공개한 인물 중 하나로, 1997년 북한에서 보낸 암살조에 의해 사망했다.
1. 들어가며)
보통 우리가 ‘북한’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여럿 있지만, 대표적인 것 하나만 꼽아보자면 열병식이 있을 것이다. 일단 동작 자체가 워낙 인상 깊어서 그런 것도 있을 것이고, 과거 뉴스에서 북한 관련 소식이 나오면 항상 암묵적 규칙마냥 구린 화질의 조선중앙방송 열병식 중계방송을 배경 화면으로 틀어대다 보니 그런 것도 클 것이다.
여하튼 국제적으로도 북한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낸 이 열병식을 뜯어보면, 크게 2가지 분기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분기점은 1970년대인데, 이때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 열병식 포맷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낸 장본인은 당시 후계자로 공식 활동을 하기 시작한, 조선로동당 선전선동부에서 정치 생활을 하고 있었던 김정일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분기점이 바로 김정은 정권의 202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5돌 열병식이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하는 북한 열병식의 주요 변화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때부터 북한 열병식은 20시~00시 심야에 여는 것을 일종의 기조로 삼게 되었다. 이렇게 한 이유는 밤은 낮과 달리 인공적으로 빛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낮에는 인공적으로 빛을 동원해도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밤은 다르다. 인공적으로 빛을 제어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한 그것이 눈에 확연히 띄는 시간이다. 여기서 인공적으로 빛을 제어하는 사람이 권력을 가지고, 시각적으로 더 화려한 광경을 만들어냄으로써 분위기로 대중을 압도할 수 있게 된다. 어떻게 보면 속된 말로 중앙에서 떠드는 선전 ‘약발’이 잘 안 먹히니, 듣는 것보다 더 직관적이고 본질적인 시각적 효과를 동원할 필요가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엄숙한 행사로만 만드는 것이 아닌, 시각적 화려함을 과시하는 축제처럼 열병식 전반부를 장식하는 의장대 공연과 군기 입장식 퍼포먼스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진행되는 셈이다.
다음으로 달라진 것은 김일성, 김정일의 사진을 든 ‘초상기 종대’가 없어지고, 도보 종대의 첫 등장은 명예기병대가 대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김정은이 표면적으로나마 할아버지,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이 ‘확고부동한 조선의 지도자’라고 주장하는 기획 중 하나라고 보인다.
셋째는 국기 게양 방식에서의 변화다. 이전까지는 국기와 당기(내지는 최고사령관기)를 든 위병들이 차량으로 기를 호송해와서 게양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중국과 유사하게 국기 호위대가 가지고 오는 형태로 하여 국기만 게양하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이는 당과 군에 기대던 태도도 벗어버리고 국가 그 자체에 충성하라는 면, 애국주의의 본질적 요소를 더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확인할 수 있는 주요한 변화 요소는 바로 호위 부대의 등장이다. 원래 호위 부대는 항상 비밀에 싸인 조직이었고 단 한번도 외부에 공개한 적이 없었지만, 2020년 10월 열병식부터는 명예 기병 종대 다음으로 등장하는, 최선두 도보 종대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대체 이 호위 부대는 뭐 하는 놈들이기에 최선두에 등장하게 된 것일까? 이 글에서는 이 블로그 주인장이 취미 삼아 파보지만 동시에 주인장의 변태력을 측정할 수 있는 면이라는 평을 듣는, 북한의 모습 중 하나를 다뤄보도록 하겠다.
2. 개괄)
앞서 말한 호위 부대의 정식 명칭은 ‘호위사령부’이다. 호위사령부는 김씨 일가는 물론 북한의 주요 요인·시설을 경호하는 부대이자 강력한 권력기관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알기 쉽게 비유하자면 호위사령부는 명목상 대통령 경호실에 비유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내막을 들여다보면 호위사령부의 권한은 대한민국 대통령 경호실의 권한을 ‘따위’로 만들어 씹어먹을 수준이다.
보통 한 국가의 수뇌부를 경호하는 조직은 최고 권력자와 가까이 있다는 특성상 강력한 권한을 갖지만,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국가라면 그 권한은 법에 따라 행사되는 것이고 또 그러한 만큼 법에 의해 일정한 제약 역시 받는다. 하지만 북한은 최고 권력에 대한 그 어떤 비판도 용납하지 않기에, 최고 권력자를 가장 가까운 데서 보위하는 호위사령부의 권한 역시 사실상 법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구조적으로 봐도, 대한민국 대통령 경호는 조직이 분담되어 근접 경호는 경호실, 주변 및 외곽지역 경호는 수도방위사령부와 경찰이 담당하게 되어있지만, 북한은 수뇌부 경호사업의 모든 것이 호위사령부 하나에 합쳐진 구조이다. 일반적인 북한군 부대처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의 명령을 받지 않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직속 기관으로 기능하는 동시에 수령을 포함한 핵심 계층 인사에 대해 경호를 담당하면서, 사령부 내부에 당 조직·보위부·검찰소까지 다 갖춘 하나의 완전체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호위사령부와 휘하 호위 부대 군기에는 북한군의 공식 구호인 ‘조국의 무궁한 번영과 인민의 안녕을 위하여’가 아닌, ‘조선 혁명의 심장인 우리 당중앙위원회를 위하여’라는 별도의 구호를 사용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호위사령부는 실질적으로 그 기능만으로 따지면, 과거 나치 독일의 친위대와 유사하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3. 연혁)
호위사령부는 해방 직후 소련군과 함께 평양에 들어온 김일성이 자신을 호위할 세력을 만드는 과정에서 출발한다. 항일 빨치산을 중심으로 한 호위대는 강상호 대좌가 지휘하는 ‘경위련대’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것이 바로 호위사령부의 시발점이었다. 이 점 때문에 호위사령부는 자신의 탄생일을 1940년대로 소급하고, 사령부 군기에도 1940년대 숫자를 넣게 된 것이다.
6.25 전쟁이 끝난 이후, 경위련대는 호위국, 호위총국 등으로 체계 개편을 진행했고, 이 시기부터 호위사령관을 맡은 인물들은 북한 내에서도 내로라하는 빨치산 출신 인사들이 담당하게 되었다. 1960년대까지 호위국장을 맡은 이는 김일성의 ‘혁명 전우이자 충직한 전사’ 중 하나였던 오백룡 상장(중장에 대응)이었으며, 1960년대 후반 인민무력상 김창봉이 숙청되면서 오백룡이 사령관직을 내려놓은 이후에는 전문섭 상장, 리을설 원수 등이 사령관을 담당해왔다.
호위사령부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1975년의 일이었다. 이 시기는 주체사상의 등장과 사회주의 헌법 개정에 따른 주석제 도입, 유일적 영도 체계 구축과 김정일로의 권력 세습 등이 나타나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씨 일가는 반대파를 숙청함과 동시에 독재 권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 ‘당과 수령을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핵심 골간을 보위한다’는 명분 하에 호위 사업을 강화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호위사령부는 명실공히 권력기관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김일성에 대한 신격화와 개인숭배가 확고해지고 동시에 차우셰스쿠 부부의 총살로 대표되는 동구권 사회주의의 붕괴가 일어남에 따라, 호위의 개념은 더욱 넓어졌다. 호위 범위가 평양이라는 지역 전체로 확대되었고, 평양방어사령부까지 합쳐 그 규모를 더욱 확대함과 동시에 만에 하나 일어날 군부 쿠데타에 대비하고자 기계화부대·저격부대·경보병 여단 등을 휘하에 두면서 병력 또한 6~7만으로 불어났다. 특히 김정일이 후계자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을 위한 부대를 별도로 두고 김일성을 호위하는 부서보다 더 강력한 병력을 두는 등 호위 부대의 규모를 키우는 일련의 행동을 하면서, 호위사령부는 더욱 비대해졌다. 수령 본인과 그 일가가 사용할 수 있게 각 지역에 설치한 특각(特閣)과 초대소에도 당연히 최정예 호위 병력을 깔았고, 김정일이 사망한 직후인 2010년대 이르러서는 약 12만에 달하는 병력을 거느린 조직이 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북한 특유의 ‘조직 닉변’이 자주 있었기에, 호위사령부가 호위총국이 되었다가 호위사령부로 복귀하는 일도 빈번했지만, 권력이 줄었다고 해도 그것이 절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국방성 산하 정규군과 호위사령부를 저울에 올려놓고 권력을 덜었다 더했다 하는 식이었으니 말이다.
*2) 특각: 김씨 일가의 호화 별장. 북한 전역에 30여 개소 존재.
2020년대 들어서면서 호위사령부는 또 한번 변화를 겪게 된다. 사령관이 교체됨과 동시에 조직 개편이 단행된 것이다.
우선 사령관 교체부터 보자. 이전까지 사령관을 맡고 있었던 호위사 참모장 출신의 윤정린 대장이 해임되고 알려진 이력이 거의 없는 곽창식 상장이 호위사령관을 맡게 되었다. 윤정린이 해임된 데에는 다양한 설이 나오고 있는데 크게 2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윤정린이 더 이상 직무를 수행하기에 무리가 있을 만큼 나이를 많이 먹어서 자연스럽게 해임됐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윤정린이 사령관을 맡던 시기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 때문이라는 것이다. 2018년 말에 발생한 호위사 본부 기밀문건 분실사고에 따른 지휘 책임에 더해, 호위사 정치위원 김성덕 상장이 재정 담당 모 소좌로부터 뇌물 및 성 상납 등을 받다 당 조직지도부의 검열에 비리 사실이 적발되어 처벌받는 과정에서 책임을 지고 해임당했다는 것이 사건의 전말이다. 둘 중 하나일 수도 있고, 둘 다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사건으로 인해 새로운 호위사령관이 필요한 상황에서 북한은 당·군·정·사법기관 권력자들과 인적 관계가 없으면서 수령을 호위하는 것에만 충실할 인물로 곽창식을 지목했다. 그는 2019년 말 조선로동당 제7기 5차 전원회의에서 당중앙위원회 위원으로 보선되었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인물로, 북한 수뇌부 내에서는 곽창식은 ‘수령을 인간적으로 숭배하고 한목숨 바쳐 보위할 수 있는 품성을 지닌 인간’으로 평가받는다고 추측된다. 덧붙여, 다소 불확실하지만, 그의 이력 중에는 최고지도자의 근접 경호와 호위 사업을 총괄 지도하는 호위총국 호위1국장 경력이 있었다.
앞서 언급한 호위사 정치위원이 연관된 비리, 추문 등으로 인해, 호위사령부는 2020년 조직 개편을 당하게 된다. 이전까지 근접 경호와 호위를 담당하는 호위1국·호위2국 등의 시스템을 없애고, 상황과 호위 대상에 따라 경호 부서를 4개로 쪼갠 것이다. 호위사령부의 조직 개편이 처음 확인된 것은 2020년 7월 27일의 소위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일 67돌’에 김정은이 선물정치의 일환으로 주요 군 지휘관들에게 귀금속으로 장식한 백두산 권총을 수여했던 보도와 2020년 10월 당 창건 75돌 열병식 당시였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파악된 호위사령부 조직 개편 결과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3) 정치위원: 쉽게 말하면, 한 부대 안에 있는 정치장교들의 탑이라고 보면 된다.
*4)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일: 6.25전쟁 정전협정체결일인데, 북한은 대체 뭘 이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6.25 전쟁에 대해 “보병총으로 원자탄을 타승한 20세기의 군사적 기적을 만든 대사변”이라는 말로 자신들을 포장한다. 이래서는 누가 비브라늄으로 낯짝에 무언가를 덧씌워줬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호위사령부> (사령관 상장( ★ ★ ★ ) 곽창식)
┗당중앙위원회 호위처 (처장 상장( ★ ★ ★ ) 한순철): 최고지도자와 그 일가의 평시 근접 경호 담당
┗국무위원회 경위국 (국장 상장( ★ ★ ★ ) 김철규): 최고지도자의 공식 일정에서 경호 수행
: 김철규 상장은 호위사 부사령관을 겸임하며, 사실상 김정은의 경호총책을 담당한다.
┗호위국 (국장 중장( ★ ★ ) 김용호): 당중앙위원회 청사 등 주요 기관 건물 경비
┗기타 부대: 반(反)정부적 행동 등이 발생할 경우, 무력진압 담당
조직상으로 봤을 때 비슷한 업무를 쪼개서 일부 중첩시킨 것에서도 알 수 있고, 사령관의 계급과 처장·국장의 계급이 거의 엇비슷하게 개편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조치는 호위사의 전횡을 막고 경호 기능을 보강하기 위해 경호 담당 조직을 4개 부서로 쪼개 상호 감시·견제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사회 전반의 기강과 충성이 무너지는 것을 우려하면서 자신의 신변 경호를 강화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4. 호위사령부의 권한)
앞서 언급했지만, 조직 개편으로 호위사령관의 권한이 이전에 비해 다소 약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거지 절대적으로 줄어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최고지도자를 보위한다는 것에서 따라오는 권력은 말할 것도 없는 사항이다. 이 점 때문에 호위사령관은 편제상 국방상(국방장관에 상응)의 하급자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국방성 총참모부나 책임 간부들과 권력이 맞먹는 수준이다. 여기에 더해 수령의 수족이자 핵심 졸개인 만큼 온갖 특별공급과 선물정치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두말하면 입 아픈 소리이다.
호위사령부가 강력한 권한을 갖는 이유는 북한의 권력구조에 기인한다. 실질적으로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북한은 사회주의를 채택한 국가이기에, 당이 행정부에 대해 우위를 점하는 구조를 가진다. 일당독재를 하는 조선로동당 내에서도 확고한 권력을 지닌 부서는 바로 조직지도부다. 모든 당원과 간부들에 대한 감시 및 통제, 인사권을 틀어쥐고 행사하는 부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부들의 진급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조직지도부도 연관되지만, 호위사령부도 이와 연관되어있다. ‘조직사상생활 정형’이 그것이다. 본래 조직사상생활 정형은 당 산하 각부 초급당위원회에서 보고되는 자료에 기초해 작성되지만, 그것을 확인하는 부서가 호위사령부 중앙당 경호 담당 부서이기 때문이다. 결국 호위사가 인사권 중 일부를 가진 셈이기 때문에, 평시에도 호위사령부가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다 호위사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은 호위사 내부의 당 서기실 담당 부부장, 수령 본인밖에 없기에 특권을 더더욱 공고해진다.
유사시에도 이러한 권한은 가감 없이 발휘된다. 호위사령부는 기본적으로 평양 시내에서 벌어질 반(反)정부 ‘상황’을 상정하기에 시가전 위주로 병력 편제를 짠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이상으로 사태가 커질 경우도 생각해 전차, 헬기 등 자체 중장비까지 보유하여 사실상 사령부 자체 무력만으로도 어지간한 상황을 진압할 수 있다. 애초에 호위사가 거느린 병력은 북한군 내에서도 상위 10% 안에 들만큼의 정예병력이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군이 쿠데타를 일으키는 상황 역시 고려해, 호위사령관은 진압 병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될 시에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를 안 거치고 군 위에 있는 당 조직, 조선로동당 비서국을 통해 전투 병력을 마음대로 끌어당겨서 배치할 권한 역시 보유한다. 이 점 때문에 호위사령부가 명실공히 북한의 주요 권력기관이고, 그 수장인 호위사령관은 두말할 것 없다는 것이다. 당장 멀리 갈 것도 없이, 호위사령부 소위는 국방성(국방부) 대위와 같은 대우를 받는다.
5. 편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호위사령부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만큼 그 병력 역시 강력하다. 대한민국 수도방위사령부도 강력한 부대이긴 하지만, 상비사단 없이 예비사단과 향토사단·헌병단만을 전투 병력으로 갖는데 반해, 호위사령부는 3개 상비 대대로 구성된 다수 독립 여단과 경보병 여단을 포함한 특수병 여단 역시 보유하고 있다. 특히, 호위사령부 소속 1개 여단은 북한군의 정규여단보다 병력이 1,500명 정도 많은 5,000여 명이며, 경보병 여단 역시 6개 대대를 지휘하는 북한군의 1개 정규여단보다 더 많은 8~11개 대대를 한 여단이 지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편제가 개편되어 이대로 운영될 가능성은 줄었다지만, 기본적인 기능은 크게 변하지 않았기에 2020년 개편 이전의 편제로 설명하도록 하겠다. (물론 여기에는 아직까지 개편된 편제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점 역시 포함이다.)
<호위사령부>
┗호위사령관(상장 ★ ★ ★)
┗지휘부
━정치부(당의 지도 및 통제 담당): 정치위원(중장 ★★), 정치부장(조직비서, 소장 ★) 등 10여 명
━참모부(실질적 호위사업 담당): 참모장, 경비 부처장(소장 ★) 등 15명
━후방부(물자 보급 담당): 후방 부처장(소장 ★) 등 6~8명
━보위부(방첩 담당): 보위부장(소장 ★) 휘하 보위지도원 5명
━간부부(인사 담당): 4명
┗직속부대
━호위소대 (2개): 100여 명으로 구성. 최측근 경호 담당.
━경비중대 (3개): 중대장은 대좌가 담당하며, 중대 하나당 병력 150여 명이 배속. 호위소대 뒤에서 화력 지원을 담당함과 동시에, 유사시 쿠데타 진압도 담당.
━예비중대 (3개): 400~500여 명으로 구성. 경비중대 뒤에서 병력 지원을 담당.
┗제1국 (호위 사업 담당)
-제1호위부: 금수산 태양궁전과 국가 원수의 저택 경비 및 가족 호위
-제2호위부: 국가 원수 호위 및 중앙당 청사 경비
━55과 (소장★ 담당): 평양시 전체 경비를 담당. 병력은 정규 사단급.
━16과: 평양을 제외한 지방 전역에 있는 특각/초대소 경비를 담당. 병력은 정규 사단급.
-제3호위부: 국제친선관람관, 만수대의사당 경비 및 정치국 위원 호위
-제4호위부
-행사안전부
-열차호위부
-경비운수부
┗제2국 (국가 원수 개인 물자 관리)
-아미산 대표부: 국외로부터 식량 조달
-검정부: 물자 검사.
┗제3국: 물자 수송/공급/관리.
┗제4국: 국가 원수 및 가족 소유 별장 관리
┗평양방어사령부(제91 수도방어군단으로 개편)
┗다수의 독립전투여단
┗호위사령부 협주단(호위사 정치국 소속 정치선동대 역할 담당)
*1국: 호위 사업을 전담하는 부서이다. 호위사령부 요원이라고 해서 모두 최고지도자의 근접 경호에 투입되는 것은 아니다. 경호 대상에 따라 부서가 나뉘어있기 때문이다.
-제1호위부: 원래 김일성이 살아있을 당시에는, 이 부서가 최고지도자를 근접 경호하는 부서였다. 김일성 사후 김정일이 최고지도자가 되고, 김정일만을 위한 제2호위부가 개편을 거쳐 실세가 되면서 1호위부는 금수산태양궁전과 최고지도자의 가족을 경호하는 임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제2호위부(974군부대): 최고지도자와 중앙당 청사를 경호하는 이 부서는 하전사(병사)나 사관(부사관)이 일절 없고 오로지 군관(장교)들로만 구성된다. 제2호위부는 원래 1982년경, 김정일이 호위사령부의 지휘 체계와도 별개로 하여 오로지 자신만이 부릴 수 있는 친위부대를 만들려 한 것에서 출발한 조직이다. 구체적인 명령·지휘 체계, 임무 지시 및 수행 과정에 대해서도 알려진 것이 없으며,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김일성을 호위하는 부대보다 더 강력한 부대를 만들고자 했던 행동의 산물이었다. 우리가 현재 언론을 통해 보는, 김정은을 밀착 경호하는 장신(長身) 경호원들이 바로 이 제2호위부 요원들이다.
-제3호위부: 국제친선관람관, 만수대의사당과 같은 주요 건물과 정치국 위원 호위를 담당한다.
-행사안전부: 국내·국제행사 및 연회 준비와 진행을 담당하는 부서이다.
다만 최근에 있었던 조직 개편에 따라, 제1/2/3호위부의 업무를 당중앙위원회 호위처/국무위원회 경위국/호위국이 나눠 담당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2국: 호위사령부는 단순히 호위만 하는 조직이 아니다. 김씨 일가의 의식주 전체를 전담하는 조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원수의 의식주 관리 자체는 국가원수의 신변 안전상 다른 국가에서도 국가원수 경호 부서가 담당하긴 하지만, 호위사령부의 관리는 일반적인 관리 그 이상이다.
일반적인 국가에서 국가원수에게 공급하는 물품은 시판되는 물건의 범주 내에서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는지 검사한 후에 공급하지만, 호위사령부의 검수는 그 정도가 아니다. 아예 수령 일가를 위해 전용 통로로 물품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소위 ‘호위 제품’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수령 일가가 먹는 쌀은 최상의 설비를 갖춘 문덕 1호 농장에서 생산한 것뿐이다. 심지어 그 쌀도 검정부 요원들이 하나하나 검사해 금이 가거나 깨진 것,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것, 너무 크거나 작은 것들을 모두 핀셋으로 하나하나 걸러내 관저에 공급하게 되어있다. 맥주나 담배 같은 기호품 역시 호위작업반이 공장에 파견되어 별도의 생산라인을 통해 생산·공급하게 되어있다. 이 물품도 똑같이 검정부가 상태 좋은 것만을 엄격히 선별해 공급부로 보낸다. 해외에서 조달해야 하는 자재의 경우, 아미산 대표부가 나서서 최상의 재료만을 선별해 북한으로 들여오게 되어있다.
다만 13년간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를 맡았던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가 썼던 『김정일의 요리사』를 보면, 이 부서 요원들은 매 순간순간이 목숨 걸고 일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김일성은 유년기와 청년기 경험상 비싼 재료와 산해진미에 목숨을 걸었을 가능성이 높진 않아 보이나, 김정일은 그리 술담배를 즐기면서도 미각은 지독하게 예민한데다 재료의 질과 모양에 목숨을 걸다시피하던 사람인지라, 실수 한번 잘못하면 김정일의 포악한 성격 특성상 무슨 꼴을 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은 2020년대인 지금에 이르러서도 크게 다를 것은 없어보인다.
*3국: 물자 수송, 공급 및 관리를 담당하는 부서이다. 후방부와 유사하게 물자를 직접적으로 관리하는 부서로, 호위사령부는 최고 권력자를 보위한다는 명분을 갖기에 지방 특산품, 산삼, 녹용, 웅담, 해구신, 녹신(鹿腎) 등등 없는 게 없을 만큼 물자가 풍부하다.
*4국: 수령 일가가 소유한 특각과 초대소를 관리하는 부서이다. 호위사령부는 호위병이나 호위군관뿐만 아니라 수령이 먹고 자고 생활하는 것과 관련된 모든 것에 해당하는 보좌관과 요원들이 소속된다. 수령의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면 이발사, 운전수, 간호사, 관리원 등도 호위사령부 소속으로 근무하게 된다.
*독립전투여단: 기동타격대로 쿠데타 등 반체제/반정부적 움직임을 진압하는 부서이다. 1개 여단이 3개 대대로 편성되는 것은 일반적인 군부대와 똑같지만, 똑같은 단위의 제대라 할지라도 호위사는 일반 제대보다 병력이 더 많이 편성된다.
*호위사령부 협주단: 호위사령부가 자체적으로 보유한 예술단이다. 음악·예술을 선전의 주요 수단으로 보는 북한 특성상 군 역시 륙해공군 단위로 자체 예술단을 갖지만, 호위사령부는 사령부 단위임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단위를 모두 보유한 조직이다. 주로 김씨 일가와 고급 간부들을 위한 예술공연을 진행하며, 호위사령부 정치국 소속의 정치선전대 역할을 수행한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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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북한을 본다] 호위사령부_2 (1) | 2024.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