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에 이어서 계속)
6. 호위사령부 요원 선발과 생활)
호위사령부는 근무 특성상 수령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기에,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된 징병 대상자 중에서 출신성분이 좋고 충성심이 강한 자들만을 엄선하여 근무시킨다. 이는 호위부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보좌업무를 맡거나 단순히 시중을 드는 관리원들도 포함이다.
일단 이 글에서는 직접적으로 경호를 담당하는 호위부대원 선발 과정을 중심으로 서술하도록 하겠다. 우선 한가지 염두에 둬야 하는 점은, 경호 담당 요원들을 어떻게 뽑는다는 것 자체를 문서를 통해 확인할 방법은 현재로선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북한 기준에서는 ‘혁명의 최대 극비(極祕)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례를 통해 추적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고, 이 점 때문에 호위부대원들에 대한 여러 추측이나 소문, 거짓말들이 난무한다고도 볼 수 있다.
우선 호위사령부 요원들은 14세 때부터 인재를 물색하기 시작한다. 체력이 좋은 아이들을 뽑아 신원조회와 신체검사를 거친 뒤, 1년에 15일 동안 붉은청년근위대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게 되는 것으로 호위사 요원 선발의 관문이 시작된다. 고등중학교 4학년(우리로 치면 대략 중3~고1 정도) 때부터는 당에서 후보자 문건을 직접 관리하기 시작하며, 고등중학교 5~6학년이 되면 본격적인 관리와 심사가 진행된다. 서류심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출신성분이다. 8촌까지 성분이 깨끗해야 하며, 당에 충실한 사상으로 무장했는지, 과거 당에 해를 끼친 이력은 없는지를 확인한다. (당에 해를 끼친 이력은 주로 가족-친족 내에 지주나 기업가, 종교인이 있었거나, 6.25 전쟁 중 월남하거나 대한민국 국군이나 치안대에 가담하거나 협력한 이력 등 북한 기준 반체제적 행위 전반을 칭한다.)
*5) 붉은청년근위대: 1970년에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만들어진 남녀학생군사조직이다.
그 다음으로 보는 것은 체력이다. 시멘트 포대를 짊어지고 평양 외곽을 제한 시간 안에 주파할 수 있는지, 아무것도 없이 권투 글러브 하나만 끼고 맨손으로 상대를 때려눕혀 버릴 수 있는지 등을 테스트하여 체력 요건 역시 심사한다.
이렇게 호위사령부 요원들을 선발하게 되면 도에서 1차 합격한 500여 명 중 최종 합격자는 30명 정도가 남게 된다. 이렇게 각 도에서 뽑힌 이들은 호위사령부에 모여 신병훈련을 받게 된다. 보통 호위사는 전국에서 매년 신병 2,000명 정도를 뽑는 것으로 추정된다.
-Q) 그렇다면 요원을 선발할 때, 출신성분을 따진다고 하면 핵심 계층에서 주로 뽑는가?
-A) 그렇진 않다. 수령을 직접적으로 보좌하거나 호위하는 ‘5과’ 요원들은 기본계층에서 뽑지, 오히려 핵심 계층에선 잘 안 뽑는다.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 핵심 계층이 김씨 일가의 독재 권력을 지탱하는 계층이자 수령의 핵심 졸개들이라는 점에 있다. 만약 호위 병력이 정치적 과오를 범했다고 한다면, 북한의 정치범 처벌 방식상 본인뿐만 아니라 친족 단위에까지 처벌이 들어가는데, 핵심 계층을 선발했다간 처벌 과정에서 수령의 지지 기반이 흔들릴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기 때문이다.
거기다 핵심 계층 집안에 호위사령부 출신이라는 것까지 더해진다면 무슨 권력을 휘두를지 역시 가늠할 수 없다. 북한 지도부는 기본적으로 2인자를 가만두지 않지만 동시에 권력을 이용해 파벌을 만드는 행위 역시 ‘종파 행위’로 규정해 엄금하기에 권력과 권력이 결합하는 양상을 절대 허용하지 않고, 따라서 핵심 계층에서 호위부대원을 선발하는 일 역시 원칙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
이러한 점 때문에 기본계층 안에서 모난 것이 하나 없는 자, 부모 한쪽이 없는 등의 돌발상황이 없는 집안에서 자란, 순하고 고지식하며 규율을 잘 지킨다고 평가받는 인원만을 선발한다. 쉽게 말하자면, 수령의 말을 규율 그 이상의 종교 교리처럼 받들 수 있는 자를 원하는 셈이다.
호위사 요원으로 뽑히게 되면 가문의 영광이라고 여기며, 학생 3명을 호위사 요원으로 합격시킨 교사는 즉시 입당하고 정치적으로 출세할 길이 열리게 된다. 하지만 호위사 관련 업무는 극비사항이기에 일반적인 북한 군인과는 다르게 입대할 때는 군복을 못 입는다. 졸업하기 1달 전에 입대하기에, 이들은 졸업식도 생략하고 학교에서의 호위사 입대 환영회를 가진 후에 교복 차림으로 호위사행 전용 특별 기차를 타게 된다.
이렇게 특별 열차에서 당에서 마련해준 도시락을 까먹으며 평양에 도착하면, 이제 신병교육대로 가는 버스가 기다린다. 신병훈련소에서는 모든 국가의 군대가 으레 그러하듯이 교관과 조교들이 난리를 치면서 ‘사회물’을 빼는 것은 똑같다. 다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일반적인 국가의 군대는 입대 후 훈련을 못 따라가면 사회로 방출해 다시 민간인으로 돌아가게 하지만, 호위사령부에서는 훈련과정에서 탈락하게 되면 재판받고 어디 두메산골 산수갑산의 광산 노동자로 추방당한다. 호위사 요원이었다가 탈북한 강 씨는, 이때 군관의 입에서 나온 말이 “우리 974부대는 충신 아니면 역적 두 가지 선택만 있다. 탈락자들은 훈련을 게을리했기 때문에 역적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라고 회고했다.
2달간의 기간 동안 기본 제식, 사격, 격술, 경비, 요인 암살사례 교육 등 기초교육을 완료하면, 호위사 하전사(병사) 계급을 부여받고 자신이 근무할 자대, 그러니까 평양 내 주요 건물·북한 전역의 특각 및 초대소 등으로 배치된다.
이렇게 배치된 호위사 요원들이 처음 교육받는 제1의 원칙은 바로 “여기가 어딘지 알지도 묻지도 마라. 사회에서 뭘 했는지 역시 절대 얘기하지 말라.”이다. 이는 사회와의 연락도 마찬가지이다. 호위사 요원이 되면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생활을 하며, 외출·외박은커녕 부모·가족들과도 연락하거나 만나는 것 역시 불가하다. 기혼자들도 예외 없이 지정된 주거지역에서만 생활해야 한다.
-Q) 호위사 요원이 되면 사회와 완전히 단절시키기 위해 집에 사망통지서가 간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A) 그건 거짓말이다. 호위사 요원 개인이 가족에게 연락을 하는 것은 일체 불가지만, 호위사령부에서 요원의 가족에게 입대증을 보내고 정기적으로 당 조직·행정 조직을 통해 가족들에게 ‘당신의 자녀는 당에 충실하게, 수령을 보위하는 전사로 잘 살고 있으니, 아무 걱정 마시오.’를 골자로 하는 편지가 가게 되어있다. 물론 이러한 정형적인 소식만이 전해지며, 개인적인 소식이나 사진 등은 절대 오가지 않는다. 만약 복무 중 부모가 사망한다고 해도, 외출은 절대 불가다. 담당 호위군관이 밤에 와서, 장례에 필요한 물품을 모두 고급품으로 준비해 전달한 뒤, ‘애도를 표한다’는 말하고 가는 것으로 끝난다.
다만 결혼할 여자를 호위사령부 차원에서 주선해준다는 것은 사실이다. 여성들의 경우, 호위사 요원이 되면 특각이나 초대소에서 관리 업무를 하는데 이 여성들이 제대한 후 호위사령부 내에서 생활한 것을 발설할 가능성을 우려해 보안상 이유로 호위군관과 결혼시키는 것이다. 결혼 적령기가 되면 당에서 결혼을 중재해준다. 중앙당 문화회관으로 오라는 식으로 해서 호위요원들을 3~40명씩 부른 다음, 한 사람당 사진 10장씩 해서 사진을 덮어놓는다. 제비뽑기식으로 해서 한 사람당 2번까지 뽑을 수 있다. 2번까지 뽑았는데도 성에 안 찬다고 하면, 1년 뒤 기회를 준다고 하여 당해는 탈락한다.
여기서 승낙하면 당일 밤에 여자를 만나게 해주며, 여자도 호위군관과의 만남을 승낙하면 하룻밤을 재워준다. 약혼 날짜는 둘이 알아서 잡고, 결혼하는 날에 잠깐 집에 갈 수 있다. 이때는 당에서 결혼식 상을 차려주고 도당 비서가 나와서 주례를 서는 형태로 준비해준다.
자대배치 후 교육이 끝나면, OJT 하듯이 대원 옆에 보조로 서서 근무 훈련을 6개월간 받고 본격적인 근무가 진행된다. 김정일이 생전에 평양 당 청사보다 더 자주 이용했던 원산 특각의 경우 8개 중대 2,500명 정도가 근무했는데, 근무 형태는 5교대 2시간씩 보초 근무이다. 수령이 특각을 사용하면 ‘행사 근무’ 시스템으로 돌려 보초가 25m 간격, 없을 때는 50m 간격으로 보초를 선다. 이때 중요한 것은 우리 신병훈련소에서도 들을 수 있는 ‘차렷자세 부동자세’이다. 근무 시에는 무조건 차렷 자세로 똑바로 서 있어야 하며, 벌이 쏘거나 누가 와서 따귀를 후려친다 해도 절대 움직이면 안 된다. 이를 어기면 생활총화 시간에 꼼짝없이 호상비판 거리로 걸려 조리돌림을 당하고, 처벌까지 받게 된다.
근무만 서는 일요일을 제외하면, 근무시간 외에는 정신교육과 사격훈련, 격술훈련이 매일 반복된다. 원래 1990년대까지는 호위사령부도 격술훈련을 가장 우선시했다. 북한에서의 격술은 ‘주체격술’이라 부르는 특공무술인데, 기본적으로 맨손으로 적과 맞닥뜨렸을 때에도 급소를 가격해 제압 내지는 사살해버릴 수 있게끔 하는 훈련이다. 북한군 내에서 격술로 유명한 곳은 국방성, 정찰총국, 국가보위성, 사회안전성 격술반 등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호위사령부 격술반은 배구선수가 배구공 내려치듯이 사람을 순식간에 쳐 갈겨버린다 하여 ‘배구단’이라 불릴 만큼 고강도의 격술훈련을 진행했다. 쉽게 말하자면, 흔히 북한군의 ‘차력쇼’로 이해되는 머리로 못 박기나 맨손으로 돌판 깨부수기, 유리 조각 밟기나 등에 유리 조각 깔고 버티기 등등을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1990년대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 김정일의 입에서 ‘아무리 잘 훈련된 병사도 총구 앞에서는 다 평등해진다’는 말이 튀어나오면서, 사격훈련이 강조됨에 따라 호위사 요원들에게 가장 ‘빡센’ 훈련은 사격훈련이 되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호위사령부에서의 훈련 중요도 순위는 ‘사격-격술-대열훈련 및 전술훈련’으로 고정되었다. 호위사 출신 강 씨는 이틀에 한 번씩 실탄 기록사격을 했는데 100m에서 25점 이상 맞춰야 합격하며, 하사로 진급하면 기관총 사격까지 하게 된다고 증언했다. 만약 불합격하면 합격할 때까지 잠도 안 재우고 20kg 모래배낭을 지고 4km를 뛰어갔다가 와서 다시 사격하는 루틴이 무한 반복되며, 생활총화 시간에도 호상비판 감이 되는 것은 기본에 ‘나는 왜 사격을 잘 못했나’를 주제로 자아비판까지 하는 지옥의 시간이 기다린다.
다만 호위사 요원이 되면 식량 공급과 생활에 있어서는 최상의 대우를 받게 된다. 물론 식량 공급의 면에서 다 따지자면, 대한민국 국군의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이등병 1이 호위사 대원 1보다 훨씬 더 다양하게 잘 먹는다는 이상한 결과가 나오지만, 북한군 기준에서 호위사령부 대원들에게 차려지는 식량은 굉장히 잘 주는 축이다. 이건 기본적으로 지위에 따라 배급량과 종류가 달라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1990~2000년대를 기준으로 했을 때, 호위사 요원에게 제공된 1일 식량 공급량은 다음과 같다.
<호위사령부 요원 1일 공급 식량>
(6호 노르마 대상)
-쌀 900g
-간식 100g
-돼지고기 115g
-생선 300g
-계란 3개
-기름, 설탕, 간장 30g
“(...) 이 때문에 아침이면 밥 위에 설탕을 듬뿍 뿌려주었고, 점심엔 무조건 돼지고기 국이나 요리였는데 주로 중국산 돼지였다. 저녁에는 생선이 나왔다. 근무를 서고 오면 이름이 붙은 당과류(간식류)가 놓여있었는데, 근무 중엔 절대 먹지 못하게 했다. (...)”
-호위사 요원으로 13년간 복무한 후 탈북한 강 씨의 회고 中
*6) 밥에 설탕: 우리 입장에서 보면 ‘괴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지만, 북한의 생활 여건 자체가 원체 부족하다 보니 이런 행위가 일종의 풍족함을 보여주는 행동으로 된 것이라 보면 된다. 당장 우리도 20여 년 전까지 가끔 우유에 밥 말아먹거나 버터에 밥 비벼먹는 사람을 볼 수 있었지 않았는가. 단지 이제는 그럴 이유가 없으니 지금에 와서는 ‘괴식’ 취급하며 완전히 사장된 것 뿐이지.
이렇게 호위사령부에서 하전사로 근무하는 이들 앞에는 보통 2가지 선택지가 기다리고 있다. 보통 내부에서 유능하다고 평가되는 이들은 간부 추천을 받아 군관학교에 3년간 교육을 받고 호위군관이 된다. 군관(장교)이 되는 순간부터는 근접 경호, 노상 행사 호위를 담당하는 부서로 갈 수 있게 된다. 사실 북한군에서 장교가 되려면 병사생활을 4~5년 하다가 추천을 받고 군사대학을 가야 하며, 이 과정에서 군사대학 추천을 거부할 선택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호위사령부 군관들은 기본적으로 받는 대우가 엄청나고 굉장히 영예로운 일이라고 사회적으로 인식되기에, 군관으로의 루트를 원하는 이들도 많다. 일단 호위군관이 되면, 호위사령부 요원 누구나 들어가 출세하길 원하는 호위소대에 들어갈 1차 자격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만약 제대할 기간이 다가와 제대를 앞둔 상황이라면, 제대 1년 전이 되면 희망 사항 3가지를 묻는다. 여기서 대학 입학을 선택하면 3개 지망 중 하나는 무조건 합격한다. 입학 날 등록한 후 별도 시험 없이 입학하여 졸업할 때까지 당에서 모든 것을 다 봐주게 되는데, 성적이 나빠도 윗선에서 적당히 손을 써 중간 정도는 가게 만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후 졸업 후 직장 배치에서도 이미 호위사를 통해 출신성분이 검증되었다고 보기에, 호위사 근무 경력으로 제대 후에도 혜택을 보는 구조는 계속 유지된다.
8. 호위사령부의 경호)
일단 호위사령부의 경호방식은 실제 그곳에서 근무했던 몇 없는 탈북자들의 증언에 기초해 재구성한 것이다. 이 점은 후에 여러 정보가 밝혀지게 된다면, 수정되거나 보완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고 보기 바란다.
호위사령부의 경호시스템은 사실 베일에 싸인 영역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온전히 다 아는 것은 사실상 불가이지만,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는 기본적인 요소는 다음과 같다.
1) 초소
: 호위사령부의 경호에서 자주 쓰이는 단위이다. 단어로만 보면 대부분의 군부대에서 흔히 쓰는 것과 다를 것 없지만, 배치되는 병력 수가 정해져 있는 일반적인 초소와 달리 호위사의 초소는 담당자를 제외한 그 누구도 배치된 인원이 얼마인지 아무도 모른다. 1명이 될 수도 있고 2~3,000명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초소는 모든 지방에 다 존재한다.
2) 호위 소대
: 경호에 있어 가장 많이 쓰이는 호위 단위이다. 이 단위는 북한이 참여한 정상회담 때 언론을 통해 자주 보이는 그것, 요인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경호 요원들이 바로 호위 소대이다. 호위 소대는 5년 이상 근무한 대원 중에서 출신성분, 사격 실력, 근무평점, 신장 조건 180cm 이상, 용모를 다 따져 최상인 인원만을 배치하는 부서로, 2~30대 대원 30여 명과 3~50대 대원 30여 명으로 구성된 2개 조로 구성한다.
호위 소대원은 소대에 배치되는 즉시 자동으로 군관이 되며, 진급 역시 빠르게 이뤄진다. 30대 이상부터는 소좌(소령)에서 시작해 대좌(대령)까지 진급하게 된다.
3) 경비중대
: 1, 2, 3중대가 있으며, 호위 소대 뒤에서 경비를 서는 단위이다. 이들은 보통 최고지도자가 군부대 시찰할 때나 해외 순방 시 자주 보이는 인원들로, 완전무장하고 경비를 선다. 여기에는 개인화기는 당연하고, 기관총이나 대전차화기까지 동원된다.
4) 예비중대
: 경비중대 뒤에서 추가적으로 붙어 경호막을 구성하는 단위이다. 이들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군의 명령 불복종 내지는 반란이 일어났을 때 진압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봤으면 대강 눈치챘을 수도 있지만, 호위사령부의 경호방식은 김씨 일가가 있는 공간을 중심으로 해서 반경 10km가량을 몇 겹으로 둘러 다 봉쇄하는 것이다. 이 봉쇄에는 고지대에 설치하는 기관총이나 대전차화기도 포함된다. 애초에 시민과 함께 있는 상황 속에서 경호를 하는 한국이나 일반적인 서방 국가에서의 국가수반 경호와는 방향이 아예 다르기에 동일선상에 놓고 보면 안 된다.
-Q) 허가되지 않은 누군가가 접근한다거나, 사람의 형체가 3초 이상 유지되면 쏜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A) 그건 애초에 성립할 수 없다. 호위사의 경호방식 자체가 주변을 몇 겹으로 에워싸 봉쇄해버리는 방식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접근한다거나 하는 상황 자체가 일어날 수 없다. 비슷한 맥락으로 ‘수령이 탄 차를 3초 이상 쳐다보면 총살’이라는 것도 거짓말이다. 애시당초 호위사의 경호 특성상 수령이 탄 차를 3초 이상 세울 수 없다. 차를 타고 오는 경우라면, 미리 정해놓은 암구호를 차량에 장착한 신호등이나 차량 확성기를 통해 전파하는 방송으로 식별해 바로 통과시키게 되어있다. 만약 실수로라도 차를 세웠다면, 그날 근무자는 ‘수령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은’ 죄목으로 처벌을 못 피하게 되고, 부서는 싹 다 털리는 날이라고 봐야겠지.
9. 호위사령부 요원들이 누리는 것)
그렇다면 호위사령부에 의해 죽은 자들은 있을까? 당연히 있다. 그런데 그 사유 중 상당수는 정말로 반체제 무력 행위를 해서가 아니라, ‘호위사령부가 경비하는 구역 내로 사전 허가를 안 받은 이가 접근하면 무조건 사살하라’는 호위사령부의 규칙 때문에 죽은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다.
-예1) 최고지도자가 군부대를 방문했을 때, 옆에 있던 대대장이 차고 있는 무장 혁대가 삐뚤어져서 복장 규정상 다시 바로잡기 위해 무장 혁대에 손을 댔다가, 암살을 시도하려는 것으로 오인당해 근접 호위 군관에 의해 현장에서 사살당함.
-예2) 특각 수리를 위해 들어왔던 1여단 군인 중 한 명이 담배 피우고 싶어서 몰래 담을 넘어 담배를 피우고, 다시 담을 넘어 돌아오다가 호위병에게 사살당함. 특각 안에서는 절대 금연이라서 1여단 군인이 이런 행동을 하다가 죽은 것.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호위병들이 처벌을 받는 일은 절대 없다. 오히려 호위사업을 잘했다고 격려를 받고 1급 전사영예훈장에 화선입당, 군관학교 입학 기회까지 차려진다. 애초에 호위사령부 요원들은 본인은 물론 직계가족이 잘못을 저지른다고 해도 최고지도자의 심기를 거스르지만 않으면, 웬만한 과(過) 사실이나 범죄 이력이 지워지는 엄청난 특혜를 누리는 집단이기도 하다.
또한 호위사령부 요원들은 상당수가 조선로동당원이다. 일단 북한 내에서 정치적으로 출세하고 사회적으로 괜찮은 사람 취급을 받으려면 당원이 되어야 하는데, 일반 군인들은 10년 복무를 해야 입당 자격이 주어지는데 반해, 호위사 요원들은 3년 근무 후 바로 당원이 되기 때문이다.
월급 역시 일반 군부대 병사들이 5원을 받는데 반해, 호위사 요원들은 130원을 받게 되어있다. 해당 증언을 한 강 씨가 1990~2000년대에 호위사 요원으로 근무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일어난 화폐가치의 변화를 감안해야 하겠지만, 1980년대 도당간부를 지냈던 강 씨의 아버지 월급이 90원이 채 안됐다는 점에서 호위사 요원들이 받는 혜택은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호위사 요원들이 최고의 영예라고 여기는 근접 호위군관이 된다면, 이러한 금전적 혜택에 더해 거의 매일같이 받는 특별공급과 고급선물, 가끔씩 내려오는 외국산 가전제품 등등을 받을 수 있다. 북한이 자기들도 살아야되니까 대북제재를 풀어달라고 요구하는 품목 중 생뚱맞게도 사치품 등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셈이다. 자신을 호위하는 최측근 병력들에게 항상 당근을 제공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7) 무장 혁대: 샘 브라운 벨트. 전형적인 ‘장교’ 이미지하면 떠오르는 ‘권총집과 어깨를 가로지르는 가죽끈 달린 벨트’를 생각하면 된다.
*8) 화선입당: 보통 당원이 되려면 생활평정 심사와 노력 동원 참여 등 각종 심사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특출한 공헌을 하는 등의 실적이 있으면 이러한 심사 절차 없이 바로 입당시키는 것을 화선입당이라고 한다.
10. 호위사령부의 뒷면)
물론 이렇게 온갖 혜택을 누리고 사는 호위사령부 요원들이지만, 북한의 경제 사정이 날이 갈수록 나빠지면서 평양시를 제외한 지방 특각/초대소를 호위하는 지방 호위부대원들의 처지는 일반 부대나 다를 바 없이 열악해져 버렸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이로 인해 ‘사병 신분으로도 군관들만 착용하는 승마 바지, 가죽 장화, 가죽 무장 혁대를 차는 선망의 대상’에서 ‘명칭만 요란하지, 사회와 철저히 격리된 조직’이라는 식으로 평가가 악화되고 있다는 말까지 등장했다. 그 증언에 의하면 다음의 면에서 처우가 열악해졌다고 한다.
1) 조직 개편 이후, 직접 호위 임무를 담당한 부대는 쌀과 옥수수를 5:5의 비율로 공급하는 반면, 일반 전투부대나 지방의 호위 부대는 3:7 혹은 2:8의 비율로 보급하고 있다.
2) 호위사령부 군인들의 상징으로 된 가죽으로 된 무장 혁대도 호위처·경위국 군인들은 5년이면 새것으로 교환해주지만, 일반 부대나 지방부대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은 입대할 때 지급받은 것을 제대할 때까지(7년) 사용해야 한다.
3) 이 밖에도 간장, 된장 같은 부식과 세면 비누, 치약, 칫솔 같은 소모품도 평양에 있는 부대들은 기준대로 보급받고 있지만 지방에 있는 부대들은 그렇지 못하다.
4) 지방에 있는 호위부대는 특각/초대소를 지키는 특성상 산속에 주둔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문에 물자보급이 자주 끊겨 장마철만 되면 보급물자가 열흘, 혹은 보름씩 지연되기 일쑤였다. 채소도 부족해 봄철이면 온 부대가 동원돼 산나물을 채취했는데 독버섯을 잘못 먹고 죽은 군인도 있었다.
더 정확한 정황은 후에 정보가 공개될 때 확인해봐야겠지만,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결국 경제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려준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호위사령부에서의 근무가 갖는 문제점이라고 한다면, 역시 인간이 망가져버린다는 점일 것이다. 우선 호위사령부 요원들은 사실상 사회와 완전히 격리된 생활을 하게 된다. 휴가는커녕 외출도 안 된다. 그럼 생활은 어디서 할까? 정해진 구역에서만 하게 되며, 근접 호위군관들은 수령과 생활의 일부를 같이한다. 북한식 표현을 빌리자면, 호위병 중에서도 근접 호위군관들은 ‘수령과 전사라는 상하관계’를 넘어서 ‘수령과 혈연적 관계를 가진 것’처럼 생활한다. 수령을 위해서는 언제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목숨도 서슴없이 내댈 수 있게끔 해야 하기에, 이러한 행위가 반사적으로 나오게끔 하기 위해 심리적 반감을 없애는 방법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동시에 경호 상황이 된다면, 일개 소위나 중위라 할지라도 당중앙위원회 위원이나 고급 간부들도 제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니, 이들의 권위 위식과 특권의식은 더더욱 올라갈 수밖에 없다.
비단 근접호위 요원이 아니라 할지라도, 격폐된 생활을 하면서 가지는 문제점은 제대하여 세상에 나왔을 때, 세상 물정을 하나도 모르는 인간, 남은 것은 정치적 학습으로 무장한 뇌와 단련된 몸뿐인 인간을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생활 자체가 ‘너희와 수령은 생명을 나눠 가졌다’라는 정치 학습과 매일 진행하는 군사훈련뿐인데다, 수령이 제공해주는 각종 선물, 그리고 자신의 가족과도 연락할 수 없는 상태가 계속 유지되다 보니, 나중에 사회로 나와서는 세상에 실질적으로 가진 것이 없는 존재로 던져지는 셈이다. 월급을 많이 받는다지만 북한 원은 기본적으로 신용을 다 잃어 화폐 구실을 못하고, 머리는 굳어서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르고, 심리적으로는 수령과 함께 했다는 특권의식과 수령을 위한 전사라는 생각만을 가지기에 부모와의 감정적 유대 역시 사라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11.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유사시 이들의 임무는 수령 일가의 신변 안전을 확보함과 동시에 제91수도군단, 평양지구 반항공미싸일사단(고사포병군단)과 함께 평양을 지키는 병력이 된다. 일단 군사력으로만 보면, 북한군 내에서 최정예 병력을 박은 공간이고, 체제로부터 받는 것이 있기에 그걸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이 격렬히 저항할 가능성은 매우 높고, 심지어 훈련 수준도 정상적인 군대 그 이상으로 유지되는 조직이라는 점에서 남북간의 전쟁이 일어난다면 평양 점령 과정에서 보병들의 피해를 아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지방 호위부대가 현재 생활이 일반 부대와 다를 것 없이 열악해져 버렸다는 증언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지방의 호위부대는 혹시라도 전시상황에 동요자가 나올 가능성을 기대해볼 수는 있겠지만 평양의 호위부대는 그럴 가능성이 희박할 것이다. 다만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절대 안 되겠지만 전쟁이 길어진다면, 이들이 과연 끝까지 수령과 목숨을 같이 할지는 모를 일이다. 후세인이나 카다피도 결국 잡힐 때는 자기 혼자뿐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그러한 생각을 지우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북한 주민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우할지도 미지수이긴 하지만, 이들이 수령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 일가의 안녕을 지키는 역할을 했다는 점은 대한민국 군경 당국의 추적을 부르는 요인이 될 것이다. 설령 처벌이 이뤄진 않는다고 할지라도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적으로 이들이 일반인들과 같은 사고를 하며 살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기에, 이들에 대한 고강도의 재교육이나 호위사령부의 전모를 밝히기 위한 조사가 장기간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어 보인다고 나는 생각한다.
12. 글을 마치며)
사실 북한에 관해 정보를 취득하거나 관련된 발언을 한다거나 글을 쓰는 등의 일에서 가장 염려하는 부분은 바로 옥석을 가리는 것이다. 물론 모든 정보 전달용 글이 기본적으로 진위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제1의 과제이지만, 북한 관련 정보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원체 북한이 기본적인 정보마저도 기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안 하다 보니, 그 감춰진 틈을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 첫 번째 관문이요, 두 번째는 그 틈에서 정보를 전달할 방법이 지극히 제한적이다보니 몇 사람을 거쳐 살이 붙어 과장돼버린 사항이라거나, 아예 물질적인 요소나 세간의 관심을 노리고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북한에서 자신이 근접호위 요원이었다고 주장하는데, 군 복무 당시 최종 계급이 사관(부사관)이었다고 주장한다거나, 김정은의 대역이 10명 있다고 한다거나 하는 등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목적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 등이 있다.
이 글 역시 후에 여러 정보가 밝혀진다면, 수정되거나 아예 폐기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끝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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