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과거 이 블로그의 주인장 되는 사람이 현역으로 군복무하던 시절, 인트라넷 카페 <휴머니스트>에 작성한 글을 복원한 것이다. 다만, 당시 글을 쓸 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에 마음대로 접근할 수 없어 머리 속에서 생각한 것과 기억에 의존해 글을 쓰다 보니, 사실관계가 맞지 않거나 숫자에서 오류가 있어 이러한 부분은 수정하였고, 다시 글을 읽으면서 발견한 비문과 논리구조 상의 오류 역시 고쳐 이 블로그에 올린다.
당시 내가 쓴 글에 관심을 갖고 읽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함을 담아, 그 당시 나와 함께 동고동락한 동기들을 생각하며 이 글을 다시 백업한다.
전우님들, 안녕하십니까. 여전히 국방부 시계가 안 멈춘 어느 평범한 군사경찰입니다. 지난번의 글에 이어 이번에는 예고한 바대로 호엔촐레른가의 유명인사이자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인물, 빌헬름 2세에 대해 얘기해볼까 합니다.
그럼 서론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보도록 합시다.
*빌헬름 2세 (1895-1941)
보통 1차 세계대전의 조장자이자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현실 파악 못하고 일 벌이다 소탐대실해버린 이미지가 강한 빌헬름 2세입니다만, 사실 그게 전부는 아닐 겁니다. 왜냐하면 빌헬름 2세는 단순히 기행과 실책으로 점철된 것 그 이상으로 복잡한 인물이자 한 시대의 성격을 정의한, 당대 독일인의 정서를 지배한 하나의 시대인식으로써 ‘빌헬름 시대’, ‘빌헬름 제국’이라는 단어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대의 모든 독일인들이 그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빌헬름 2세의 인식이 당대 독일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그것이 그의 재위기간 동안 지배적인 인식이었다는 것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인정하는 중론입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양극단에 있다 봐도 될 겁니다. 강해보이기를 시전하며 허세를 부리는 것을 일상으로 하는 자이자 즉위식 당일 “그대들을 가장 찬란한 세기로 인도하겠노라!”라고 서약했지만 정작 혁명으로 쫓겨난 인물. 타인의 지식과 경험에서 어떤 교훈도 얻을 생각이 없고 사실관계도 자신의 상상 속 세계에 맞춰 왜곡하는 자였지만, 모든 계층과 얘기를 나눌 수 있을 만큼 폭넓은 교양의 소유자이자 가장 강한 대국 중 하나를 다스린 군주. 그의 부정적 면을 덮을 만큼의 개인적 품위와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자가 빌헬름 2세였습니다. 혹자의 평대로 그는 제2의 프리드리히 대왕으로 인정받고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요정을 다시 병에 가두지 못한 자’였던 셈입니다. 그럼 그의 개인적인 면모 중 일부를 얘기해보도록 합시다.
1. 아들, 왜 엄마 마음을 몰라주는 거니? / 아, 몰라요!
사실 안 그런 군주가 어디 있겠는가마는 빌헬름 2세는 태어나기 전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존재였습니다. 그 일은 그의 부왕 프리드리히 3세가 빅토리아 여왕 치하에서 최전성기를 맞은 영국을 방문하면서 시작됩니다. 프리드리히 3세는 황태자 시절에 방문한 영국에서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이었던 독일 출신의 앨버트 공을 만났고, 부군이자 남편으로서 군주 아내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앨버트 공의 모습에 매료됩니다. 앨버트 공 역시 신흥강국 독일이 영국과 같은 입헌군주제가 되고, 영국과 동맹이 됨과 동시에 영국과 대륙을 이어줄 황제가 독일에서 나오길 바랐죠.
물론 희망은 이러했습니다만...... 빌헬름은 태어나면서부터 프리드리히 부부의 희망을 배신해버립니다. 그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부부는 아들의 왼팔이 힘없이 덜렁거리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합니다. 빌헬름이 태어날 당시 그의 왼팔이 어머니 빅토리아의 자궁에 걸렸는데, 의사들이 그의 왼팔을 잡아당겨 뺀 것이 이런 결과를 가지고 온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좀 더 흘러 빌헬름 2세가 제왕학을 배울 때 즈음 되어서, 빅토리아의 실망은 더 커져갑니다. 빌헬름은 모든 과목에서 수석을 차지하지 못했고, 특히 수학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의 어머니는 나름의 격려를 합니다. “아들, 수학 성적이 별로 좋지 못하다고 하더구나. (...) 그렇지만 너는 언젠가 모든 과목에서 수석을 차지할 거라고 믿는단다. 너는 할 수 있는 아이니까. 안 그러니?”라는 식으로요. 물론 어머니의 마음이야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만,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장애에 의한 신체적 열등감에 시달리던 빌헬름에게 어머니의 이 말은 과연 어떻게 들렸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격려라기보다는 압박으로 들리지 않았을까요.
그에 대한 반동인지, 결국 빌헬름은 삐딱선을 타기 시작합니다. 그의 부모님이 선호하던 계몽-입헌군주보다는 할아버지 빌헬름 1세와 같은 전제군주를 동경하며 그 모습을 닮아가려 시도했고, 어머니에 대한 반감을 공공연히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의 어머니는 속이 타기 시작했고, 영국에 있는 빅토리아 여왕에게 편지를 씁니다. “어머니, 우리 빌리(빌헬름 2세의 애칭)가 요즘 들어 점점 제 이상과는 다른 모습을 닮아가려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 아이가 하고싶은 데로 두는 게 맞겠죠?” 과연 두는 게 나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결과적으로 놓고 봤을 때 이미 시작부터 어머니를 향한 반감에서 출발한 입헌주의, 자유주의를 향한 반감은 가족 관계에서 출발한 파국의 예고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2. 나는 깨달았네. 당하는 것의 기쁨을 말일세! / 변태...변태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빌헬름 2세는 역아로 태어나면서 왼팔에 장애가 생겼고, 그 결과 후대에 ‘외팔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되었습니다. 본인도 그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했기에 온갖 방식을 써서 그의 왼팔을 가리려 시도했습니다. 예컨대, 백장갑을 끼거나 오른손으로 왼손을 가리거나, 몸을 왼쪽으로 틀어 왼팔을 가리거나, 망토로 왼팔을 가리는 등 온갖 방식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이러한 모습은 그가 어린 시절에도 나타납니다. 그의 아버지와 같이 찍은 스코틀랜드 하이랜더 코스프레(?) 사진에서도 빌헬름 2세는 그의 왼손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3세가 그의 왼손을 잡아준 거지만요. 빌헬름 2세는 이러한 왼팔 감추기를 자기 할아버지와 사진을 찍을 때조차도 고수합니다. 왼손을 주머니에 넣거나 왼손을 몸 뒤로 숨기는 식으로 말이죠. 어쨌거나 프리드리히 부부는 아들이 놀면서 왼팔이 덜렁거리는 모습을 차마 보고 있을 수 없다는, 모든 부모들이 할 법한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에 당대에 유행하던 치료법 중 하나를 아들에게 씁니다.
문제는 그 치료법이 전기 충격이었다는 걸까요?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싶기야 하겠지만, 당대에는 이런 전기충격이 하나의 치료법으로 통하던 시절이었습니다. 17세기에 이탈리아의 갈바니가 개구리 뒷다리를 이용해 동물전기 실험을 한 것이 이러한 전기치료에 영향을 줬는데, 이때 전기자극을 주면 개구리 뒷다리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지극히 1차원적인 발상을 한 이들이 하나둘씩 나타납니다. ‘자극을 주니 생물이 움직인다-전기가 생명의 근원인 것은 아닐까?’라는 논리회로의 결과물로, 몇 세기 동안 치료법으로 전기자극이 유행하게 됩니다. 19세기까지 유행한 ‘아프면 전기로 지지고 본다’는 이 기괴한 사고방식에 입각한 치료법에 의해, 빌헬름 2세는 어릴 때부터 ‘치료라고 쓰고 고문이라고 읽는’ 전기지짐을 당하게 됩니다.
(물론 현대과학과 의학이 발달하면서 뇌의 뉴런과 심장의 작동에 있어 전기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밝혀냄에 따라, 갈바니의 동물전기 실험이 아주 허무맹랑한 것이 아님이 증명됐지만...... 역시 이 당시의 문제는 그 세기와 전기를 흘려 넣는 시간과 같은, 섬세한 사항을 몰랐다는 것이겠죠.)
그렇게 고문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전기 충격을 당하면서, 카이저는 마음속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싹틔우기 시작합니다.
예, 바로 고통을 쾌감으로 승화시키는 거요.
그리고 그 ‘새로운 무언가’는 빌헬름이 황태자 시절에 발현됩니다. 1885년 알자스 지방에서 진행된 군사훈련 당시, 그는 자신의 개인 막사에서 매우 짜릿한(?) 밤을 보내는데, 무슨 엎으려서 ‘이 돼지에게 상을 주십시오’(?!)같은 대사는...... 당연히 없고요. 매춘부 에밀리에 클롭과 참 희한한 밤을 보냅니다. 빌헬름은 클롭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자네, 여기 있는 비단 스타킹으로 나를 묶게. 그리고 여기 채찍 있지? 그걸로 나를 때려주게. 괜찮아, 내가 원해서 하는 거니까. 돈이라면 걱정 말게. 이 플레이 1회당 100마르크를 주지. 그러니까 내가 해 달라는 대로 해줘.’(...)
그렇게 빌헬름은 거금을 줘가면서 이런 자신의 취향(?)을 아낌없이 즐깁니다. 황제로 즉위하기 전까지 말이죠. 그가 보위에 오른 뒤부터 SM 카페에서 벌어질 것 같은 이러한 플레이는 중단되었고, 에밀리에는 자신을 외면한 것에 대해 실망과 분노를 느끼고 비스마르크 경에게 편지를 씁니다. ‘황제 폐하께서 즉위하시고 나서 황태자 시절 나에게 줬던 관심을 끊었다. 나에게 계속 관심을 주던가, 적절한 보상을 해주지 않으면 그동안 폐하와 주고받은 편지며 그동안 한 플레이에 관한 내용을 프랑스 언론에 모두 폭로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비스마르크는 받았고, 그는 “하, 인생......”거리며 한숨을 내쉽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황제에게 직접 진술을 받아낼 수는 없기에 정황증거를 모아 이게 단순한 협박이나 무고가 아님을 알았고, 이게 진짜 까발려지면 제국의 위신이 어디까지 추락할지는 본인이 더 잘 아는 것인 만큼...... 비스마르크는 이 어이없는 사건을 일단 해결하긴 합니다.
‘이 건방진 여자의 입을 다물게 하는 것이 급선무’인 만큼, 비스마르크는 그녀에게 2만 5천 골트마르크라는 거금과 함께 다음과 같은 취지의 서약서를 쓰게 합니다.
1) 본인은 보상금 2만 5천 마르크를 받는 대가로 황제와 주고받은 모든 편지를 넘긴다.
2) 본인은 보상금의 대가로 황제의 황태자 시절 일에 대해 일체 함구할 것을 서약한다.
3) 상기 사항을 위반할 시 어떤 처벌도 감수할 것을 서약한다.
그렇게 클롭과의 거래는 성사되었고, 이렇게 입수한 모든 편지를 비스마르크가 ‘황제 폐하의 명령에 따라 기밀로 봉함’이라는 명령과 함께, 기밀문서 금고에 박아버리면서 이 무시무시한(?) 사건은 일단락됩니다.
2. 이제는 가하는 것의 즐거움도 깨달았네!
자신의 신체적 콤플렉스에서 기인한,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 ‘강해 보이기’를 시전하던 그의 성격은 급기야 당하는 것을 넘어서 가하는 것의 즐거움도 깨달은 것이냐는 조롱을 받는 지경까지 갑니다. 고위 장성들을 모아놓고 명령하는 것을 과시한다거나 은근히 꼽을 주면서 모욕을 주는 방식까지야 뭐, 백번 양보해 그러려니 하겠습니다만...... 문제는 그게 외국 군주들에게까지 미쳤다는 게 문제였죠.
대표적으로 이탈리아 국왕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3세(Vittorio Emanuele III, 1869-1947, 재위 1900-1946)를 향한 빌헬름 2세의 놀림이 있었는데, 비토리오는 키가 153cm밖에 안 되는 단신이었습니다. 174cm의 신장을 보유한 빌헬름은 그를 보고 ‘호빗 자식’이라 여겼던 것인가, 좀 유치하게도 그의 키를 자주 놀려대곤 했습니다. 문제는 이게 사석에서 말로만 그쳤으면 또 모르겠는데, 공식 행사에서 그랬으니 얘기가 달라진다는 것이겠죠. 비토리오가 독일을 공식 방문했을 때, 대부분의 국가가 그리하듯이 독일 역시 의장대가 외국 국가원수를 환영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별 특이점이 없지 않나 싶지만, 문제는 이 의장대의 구성이었죠. 원래도 의장대는 외부에 보여주는 게 주요 목적이니만큼 체격 좋은 장신의 병사들만 뽑아 만드는 부대입니다만, 빌헬름은 이 호빗 군주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미리 지시를 내립니다. 이번 의장대는 의장대 내에서도 엄선해 ‘의장대 내에서의’ 장신 거구들만 모아 이번 행사에 차출될 의장대를 준비하라고요. 결과적으로 이 이탈리아 국왕의 단신은 더 부각될 수밖에 없었고, 이로써 빌헬름 2세는 가하는 것의 즐거움(?!)도 완벽히 깨닫게 된 것이었습니다.
3. 혼신을 다한 중년의 발레
사실 당대 파티 문화를 생각하고 보면 결이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S끼를 발휘한 또 다른 사건이 되어버린 일이 있긴 합니다. 외교관인 퓌르스텐베르크 백작의 저택에서 열린 1908년의 연회가 그것이었죠. 사실 시작은 보통의 연회와 다를 게 없었습니다. 문제는 연회가 물이 올랐을 때 즈음이었는데, 빌헬름 2세는 연회에 참석한 군부대신 디트리히 폰 휠센헤슬러에게 이런 명령을 합니다.
“경 한번 나가서 발레 춰 보게나”
사실 당대 연회에서는 물이 올랐을 즈음 되면 연회 주최자나 참석한 고관 중 1명이 일부러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고 나타나 참가자들을 웃겨주는 관례가 있었기에, 아주 이상한 건 아닙니다. 사실 휠센헤슬러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에 카이저의 순 S끼라고 할 수는 없지만, 중년의 나이에 핑크빛 발레복에 토슈즈 신고 사람들 앞에 등장하라는 건......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아무리 위치가 국방부장관급인 고관이라고 해도 황제가 명령하라는데 까라면 까야죠. 그는 중년 아저씨의 몸으로 핑크빛 발레복을 입고 연회장 중앙에 나타나 꽤 그럴듯한 발레를 선보입니다. 대략 어떤 모습일지는 전우님들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여하튼 카이저가 연출하고 휠센헤슬러가 제공한 이 우스꽝스러움에, 기훈단 시절 조선팔도 전역에서 모인 개그맨 집결 프로그램 같은 쇼를 보는 것 마냥 참석자들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가히 대폭소의 향연이었죠.
다만 문제가 생겼다면, 파티가 끝날 때 즈음 그가 너무 혼신의 힘을 다해가며 발레를 선보이다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무리를 한 탓인가, 심장발작을 일으켜버린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마리오네트 조종용 실이 툭 끊어져버린 것 마냥 맥아리 없이 휠센헤슬러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버렸고, 보좌관들이 사색이 되어 급히 뛰어나오면서 소동이 벌어집니다. 다만 그의 위치가 위치인 만큼, 이 꼴로 병원을 데려갈 순 없으니 자리에서 급히 옷을 갈아입히느라 대소동이 벌어졌고, 그렇게 그는 연회장을 중년의 발레로 화려하게 불태우고 참가자들에게 웃음 하나만큼은 제대로 선사했습니다. 아, 웃음 뒤의 충격도 포함해서요.
5. 영국인(들): 아니, 우리가 좋다는겨 X같다는겨?
빌헬름 2세가 영국을 향해 가진 감정만큼 복잡하면서 미묘한 것도 없을 겁니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자면, 적어도 초보수주의자였지만 외교에 있어 ‘스킬’ 하나는 매우 뛰어났던 비스마르크의 말을 끝까지 들었어야 했지만, 결국 빌헬름은 그 말을 안 들었다가 외교에서 소탐대실해버린 인물이 되고 말았죠. 비스마르크는 신생 강국인 독일제국이 큰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진 것을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독일을 둘러싸고 있는 대륙의 전통적인 강국인 프랑스와 러시아의 힘 역시 매우 크고 독일 혼자 둘을 상대하기에는 버겁다는 점, 대륙도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해양으로 나가 전통적인 해양강국 영국과 대결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자살행위 밖에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독일의 외교를 이끌어 갑니다.
‘우리의 처지를 볼 때, 독일제국에 있어 최상의 국제형세는 유럽 내에서는 균형이, 유럽 밖은 영국이 지배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은 통일된 독일의 힘을 이러한 원칙에 녹여내는 것이고, 이를 위해 베를린은 국제 사회에서 정직한 중개자를 자처해야 한다. 즉, 강한 독일은 평화를 원해야 한다.’
그러나 빌헬름 2세는 달랐습니다. 즉위식 때 “그대들을 가장 찬란한 세기로 인도하겠노라!”고 선언한 황제답게 그는 독일이 세계의 중심이 되고 ‘전 세계 위에 있는 독일’이 되길 바랐기에,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독일의 외교를 끌고자 합니다.
‘지금은 제국의 시대다. 우리도 이에 맞춰 제국을 확장하면서 유럽 외에서는 균형이 지배하게끔 해야 하고, 우리도 그 균형이라는 흐름을 타야 한다. 찬란한 세기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유럽 내에서 우리 독일이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힘의 정치가 필요하다. 어차피 영국놈들도 영광스러운 고립인가 뭔가 하면서 대륙에 신경 안 쓰니, 대륙에서의 헤게모니 장악은 불가하지 않고, 또 반드시 이뤄야 하는 제국의 과업이다.’
이러한 점을 본다면 독일제국의 급속한 발전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독일의 2차 산업혁명 주도와 제국의 화려한 모습은 대륙의 지배자가 되고팠던 독일이, 새로운 강국으로서 과거의 꿈과 현대의 기술을 조화시키기 위해 최신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발전시키는 한편, 과거를 윤색하면서 그들이 원하던 그들의 모습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결과였습니다. 일종의 ‘졸부 마인드’였달까요? 하지만 한편으로 이러한 팽창주의는 전 유럽의 국가를 자극하면서 결과적으로 영국이 ‘영광스러운 고립(Splendid isolation)’ 노선을 포기하고 유럽 대륙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한편, 독일에 대항하는 연합전선이 구축되는, 비스마르크가 상정했던 최악의 결과를 몰고 와 버립니다.
그럼 이 중에서 빌헬름 2세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영국을 보는 그의 감정을 좀 더 자세히 봅시다. 사실 빌헬름이 재위 기간 내내 보였던 태도를 보면 영국인들은 그를 보고 이해를 못 할 겁니다. 딱 이 파트 소제목처럼 생각하면서요. 왜냐하면 그는 한편으로 영국을 욕하면서도 영국을 사랑했기 때문이죠.
일단 영국을 욕했던 면모부터 봅시다. 우선 독실한 기독교도를 자처했던 그는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를 향해 사석에서 ‘사탄’이라는 욕을 날리면서 ‘교활하고 멍청한 뚱보’라고 욕을 박아댔습니다. 문제는 에드워드가 빌헬름의 외삼촌이었다는 거였죠. 예, 그렇습니다. 전우님들이 지금 생각하시는 것처럼 이 사람, 자기 외삼촌에게 패드립을 불사한 겁니다. 이게 왕실 간의 문제니까 이렇게 얘기하지, 보통 가정이었으면 빌헬름은 에드워드에게 한 반나절 간 신나게 맞았겠죠. 여기에 더해 황화론(黃禍論)을 들먹이며, 빌헬름은 영국이 1902년에 맺은 영일동맹을 비난하며 “영국이 백인종을 배신하고 황인 놈들과 손 잡았다”고 영국을 욕해댔습니다. 제국수상 베른하르트 폰 뷜로우(Bernhard von Bülow, 1849-1929)와의 상의도 없이 멋대로 진행한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라프』와의 인터뷰에서는 ‘영국인들은 발정난 토끼마냥 미쳤다. 왜 우리와의 동맹 체결을 망설이느냐(...)’고 한 발언 때문에 물의를 일으킨 것은 덤이었죠. 여기에 더해 영국에 제풀에 지쳐 먼저 나가떨어질 거라 믿고 더 밀어붙인 건함경쟁은 추가 서비스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면만 보면 정말 전생에 영국인들한테 몰매 맞고 죽은 원한이라도 있는 건가 싶지만, 한편으로 그는 영국을 향한 사랑과 두려움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본인 역시 뛰어난 영어 실력을 보유했으며, 영국이 선물한 해군원수 예복을 아주 맘에 들어 하며 ‘이 옷은 넬슨 제독의 옷이다‘라고 자랑하면서 자신이 자주 입고 다니는 제복 콜렉션 안에 넣었을 정도였죠. 영국인들을 향해 ’발정난 토끼‘ 드립을 쳤음에도 한편으로는 영국인들이 자신을 천박한 놈이라고 여길까 두려워하는 한편, 사석에서 삼촌에게 사탄이라는 패드립을 불사하며 영국과 건함경쟁을 벌이는 모습과는 딴판으로 ’무덤 속의 내 삼촌은 살아있는 나보다 훨씬 강하다. 영국을 이길 수 있다고 여기는 자들이 제국 내에 있던데, 그런 자들이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말하며 영국과의 전쟁을 극구 피하려 빌헬름 2세는 노력했습니다. 1차대전 당시 유틀란트 해전이라는, 왕립해군과 제국해군이라는 두 대양함대가 격돌하는 초유의 함대전이 결과로 나타난 것과는 별개로요.
그리고 정작 영국인을 백인종의 배신자라 욕하면서도, 인종전쟁이 일어나면 영국인들이 다시 주님의 품으로 돌아와 백인의 편에서 성전(聖戰)을 치를 것이라고 하면서 자신은 영국을 사랑한다고 말했죠. 아까 말한 그 『데일리 텔레그라프』와의 인터뷰에서 말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반감에서 출발한 것일런지, 영국을 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영국에 대한 경외심과 사랑을 표현한 이런 복잡미묘한 행동은 물론 본인만이 속내를 알겠지만, 신생 독일제국의 면모 중 하나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시 글을 쓰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점점 가십성 글을 쓰는 삼류 작가마냥 되어가는 듯해서 좀 이런 면을 경계하려 합니다만, 그동안 여건이 안 돼서 글을 안 쓰다가 다시 쓰다 보니 확실히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곤 합니다. 아직까지 제 앞에 걸린 국방부 시계가 남은 만큼, 최대한 쓰고 갈 예정이긴 합니다만 점점 퀄리티가 원하는 만큼 안 나오다보니 전우님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참 마음이 착잡한 것도 현실입니다.
제가 예전에 쓴 글에서 넬슨의 인간적 면모에 대해 얘기하며 이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 속 인물을 굉장히 교과서적으로 바라보는 면이 없진 않은데, 사실 그들도 당대를 산 우리와 같은 보통 인간이라고 말입니다. 그들도 우리같이 희노애락 감정표현 다 하면서 가끔씩 밤에 이불킥도 할 일 하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사실 군주들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진 않습니다. 뭔가 제국의 황제라 하면 다들 근엄하고 똥도 안 쌀 것 같은데, 이 인간들이라고 해서 보통 사람들과 아주 유별나게 별종마냥 다른 점은 그닥 없더군요.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보통 사람보다 더 파격적인 깨는 행동을 서슴치 않던 사람들일 때도 있습디다. 일국의 군주라는 자리에서 오는 이미지와 느낌 때문에, 그런 면모를 알고 나서 깨는 게 크기 때문일까요? 사실 역사를 왜 배우는가, 어떤 점이 재밌어서 그러냐고 질문을 많이 받곤 하는데 이러한 의외의 면모가 갖는 맛 때문에 역사를 공부하는 재미가 있는 게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해보곤 합니다. 물론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그것이 부(副)가 될 수는 있어도 주(主)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간만에 돌아오면서 좀 가볍게 적어봤는데, 어떨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변변찮은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저는 물러가 보겠습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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