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과거 이 블로그의 주인장 되는 사람이 현역으로 군복무하던 시절, 인트라넷 카페 <휴머니스트>에 작성한 글을 복원한 것이다. 다만, 당시 글을 쓸 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에 마음대로 접근할 수 없어 머리 속에서 생각한 것과 기억에 의존해 글을 쓰다 보니, 사실관계가 맞지 않거나 숫자에서 오류가 있어 이러한 부분은 수정하였고, 다시 글을 읽으면서 발견한 비문과 논리구조 상의 오류 역시 고쳐 이 블로그에 올린다.
당시 내가 쓴 글에 관심을 갖고 읽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함을 담아, 그 당시 나와 함께 동고동락한 동기들을 생각하며 이 글을 다시 백업한다.
전우님들 안녕하십니까. 여전히 숨 붙어있는 어느 평범한 군사경찰입니다. 원래는 이전에 예고한 바대로 ‘명나라 F4’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글을 올리려 했는데, 요즘 들어 머리가 굳었는가 뭐를 잘못 먹었는가 글이 잘 써지지 않아 다른 방향으로 회전시키는 겸해서 약 3주 전부터 끊어서 쓰던 글부터 먼저 올릴까 합니다. 이번에는 평소에 쓰는 글과는 달리 약간은 잡설스럽게 만들어본 글입니다. 가끔은 좀 다른 주제도 섞어 골고루 써보자 싶어서 말이죠. 물론 큰 틀은 벗어나진 않습니다.
최근에 영화 「미운오리새끼」를 보다가 영창에 관한 부분이 나오길래, 이 부분에 잠깐 관심이 생겨 조사하다보니 나름 흥미로운 분야가 아닌가 싶더군요. 뭐, 저도 엄연히 헌병, 아니 군사경찰이다보니 동일 업종에 대한 관심이 동해서 말입니다. 작중 주인공인 전낙만이 방위병으로 근무하던 곳이 육군 59사단 헌병대이다보니, 과거 헌병들의 모습을 약간이나마 확인할 수 있는 영화이자 당시 헌병에 대한 고증이 잘 지켜진 몇 안 되는 영화라는 평이 많았습니다.
너튜브에 올라온 영화 부분영상을 보시면, 소원수리에 찔려서 징계성으로 영창에 온 인원들이 정화조에서 분뇨청소(...)를 하고 있는 장면과 함께, 낙만을 위시한 방위병들의 대화를 시작으로 당대 영창의 충격적인 장면과 더불어 낙만의 방위병답게 살자는 마인드를 잠깐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진짜 헌병도 아닌데 괜히 수용된 인원들한테 뭐라 하며 굴리기도 뭣하다며, 낙만은 ‘그냥 방위답게 시키는 거나 하자’는 마인드를 온몸으로 보여줍니다. 80년대 당시의 민무늬 전투복에 대강 견식줄 늘어뜨리고 헌병 헬멧은 마빡 다 드러나게 대강 머리에 얹은 뒤, 헌병 벨트는 그냥 허리에 걸쳐놓은 채로 영창 관리하며 퇴근 시간만 바라보는(...), 어찌 보면 참 부러운(?) 모양새를 하고 있......크흠, 이쯤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이상은 그래도 군인으로서 가져야 할 품위를 생각해야 하니 말입니다. 아무튼 오늘은 2020년 8월까지 전군이 실질적으로 운영했었던 군 내부의 구금시설, 영창에 대해 얘기해볼까 합니다.
뭐, 저도 엄연히 군사경찰이지만 제가 일병 꺾일 무렵에 처벌 기능이 법적으로 없어진 시설인데다, 저는 무엇보다 교도병이 아니라 출입통제병이라...... 일반인의 관점에서 보면 ‘군사경찰이라 해도 영창에 대해 조사해야 하는’ 모습은 참 웃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더군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과거 전입신병 위로휴가 때 제가 군사경찰 특기를 받았다는 말에, 육군 출신이셨던 아버지 당신께서는 육군 수방사 헌병의 힘과 여기 헌병을 동급으로 생각하시고는 “야, 우리 아들 죽이네~”라고 하실 때...... 속으로 ‘뭘 죽입니까, 아버지. 당신 아들 죽게 생겼습니다......’라고 말하던 작년이 떠오르네요.
그럼 오늘은 들어가서 신나게 피아노 두들기던(?) 시설에 대해 얘기해보도록 합시다.
(이 글에서는 현재 ‘군사경찰’의 과거 특기 명칭, ‘헌병’으로 병과명을 통일하겠습니다. 사실 그 이름을 꽤나 많이 쓴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과거 명칭이 입에 익어서 그런 것과 더불어 이 글에서 하나하나 다 치기 힘들어서인 것도 주된 이유입니다(...) 또한 이 글에서의 영창은 처벌 목적으로 운영되었던 영창의 성격에 주안점을 두고 작성된 것임을 미리 밝히는 바입니다.)
1. 진짜 이런 이유로도 잡혀온다고?
영창은 과거 1896년 제정된 ‘육군징벌령’에 근거해 탄생하여 해방 후 대한민국 국군이 창설된 이래로 지금까지 존재해왔고, 불과 작년이었던 2020년 8월부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시설입니다. 다들 알다시피 영창은 잘못을 저질러 들어온 인원을 징계성으로 구금하거나, 군사재판에서 형이 확정되어 국군교도소로 수감될 인원을 잡아두는 일종의 구치소 역할을 수행한 수용시설이었습니다. 처벌성 시설로서는 없어진 지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이와 관련해 수많은 이야기와 ‘썰’이 존재하고 그만큼 강렬하게 인식되는 존재이자, 군인이 아닌 일반인들은 알면서도 잘 모르는 시설이기도 하죠.
그런데 저도 실제로 간 적은 없습니다. 과거 모 전투비행단 소속 병사가 탈영을 시도하다 제가 복무하는 지역 근방에서 잡혀 소속 부대로 신병인계되기 전까지 잠깐 영창을 운영했다고 듣거나, 신병들이 중대로 전속 받았는데 생활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서 영창에서 살았는데 돈벌레가 기어나오는 환경이었다고 하는 걸 듣는 등 말로만 경험한 인간이라서 말입니다.
아무튼 전우님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영창에 잡혀오는 인원의 죄목은 상당히 다양한 편입니다. 보통은 여자친구와 헤어져 받은 정신적 충격으로 탈영을 시도해 잡혀 온다거나, 하도 꼽창짓을 하다가 찔려서 징계성으로 잡혀 온다거나, 그 외 자잘한 잘못을 저질렀다가 간부님들에게 걸려서 들어가는 것으로 이미지가 형성된 곳이지만, 상상 이상의 기상천외한 이유로 잡혀오는 경우도 꽤 많았습니다. 실제 헌병으로 근무한 전역자들의 각종 썰이 그것을 증명하죠. 간단히 몇 가지 실례만 적어보겠습니다.
1) 특전사 소속 특전병. 휴가 나갔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뭐를 잘못 먹었는지, 논두렁에서 자기 사촌 여동생을 강간하려 시도했다가 경찰에 잡힌 후 헌병에 인계되어 형이 확정될 때까지 영창에 수감.
2) 보급대 대위. 혼인빙자간음죄를 저질렀다가 졸지에 대위에서 이등병으로 강등당하고 군사재판 후 교도소로 이감되기 전까지 수감.
3) 육군 최전방 모 부대 병사. 잘 때마다 자기 후임을 자신의 침상 쪽으로 오라고 하여 주요 부위를 만지는 등의 행각부터 시작해 후임을 성노리개로 쓰다가, 결국 신고를 받고 출동한 헌병대에 체포되어 교도소에 수감되기 전까지 수감.
4) 모 부대 전역 예정자. 여자친구에게 선물하겠다 해서였던가, 전역 기념품으로 가지고 나가겠다는 이유에서였던가 탄피(!)를 몰래 챙겨 가려다 걸려 전역 전날 14박 15일 만창으로 수감당하고 전역이 그만큼 연기됨.
5) 모 전역 예정자. 전역 당일의 전역자 환송식에 나와 전역자들과 악수하던 대대장 면전에 대고 쌍욕을 갈긴 후 열받은 대대장의 “야, 저 새x 당장 잡아 와!”라는 호령과 함께 영창으로 끌려감. 상관면전모욕죄가 적용되어 6박 7일 동안 영창에 수감되고 전역은 그만큼 연기.
6) 의장대 병사. 3kg이 넘는 쇳덩어리 매일 돌리는 군생활이 너무 거지 같아서 못 해 먹겠다는 동기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사역 중 서로의 실수로 인해 차에 치인 것처럼 위장해 동기를 의병제대시킨다는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겼다가, 동기를 아주 황천길로 보내버리고(...) 들어온, 사례를 처음 접한 필자의 입장에서 정말 실소가 터져버린 케이스.
그 외에도 훈련소에서 비폭력을 주장하며 끝까지 집총을 거부하다 잡혀 온 여호와의 증인 신도라거나, 위병소 근무 중 안에 들어가 자다가 순찰 나온 당직사관이 깨우자 후임으로 착각하고 ‘바른 말 고운 말’을 시전했다가 잡혀 오는 육군 병사라거나, 여기에 다 적자니 사례가 너무 많아 다 못 적은 온갖 기상천외한 이유로 잡혀 오는 인원은 매우 많았습니다.
물론 그 안에서 일어난, 과거 군대의 무자비함과 시궁창스러운 처우 등이 어우러지며 벌어지는, 인간성을 아예 없애버리는 대우와 폭력이 존재했다는 것 역시 사실이죠. 군홧발로 하는 발길질이나 곤봉질은 기본에, 개기는 것처럼 보일 경우 시전하는 ‘복날 개잡이’ 곤봉 세례는 부가가치세, 삐딱하게 나온다고 판단될 때 군홧발로 배를 차서 엎어놓은 뒤 서너 명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날리는 ‘방방곡곡 시술법’은 서비스였던 시절이 불과 2000년 이전 20세기의 영창이었습니다.
2. 원래는 창고에서 출발했다만......
영창(營倉)이라는 말은 단어 그 자체에 기반한 원래 뜻을 보면 알 수 있듯, ‘영내에 있는 창고’라는 뜻입니다. 영창의 기본 원리는 과거 어린 시절, 빼액거리며 난동을 부리거나 누군가와 싸우고 나서 초등학교나 유치원, 집에서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가끔씩 쓰는 스킬, ‘벽 보고 반성하기’나 소위 ‘생각의 방’과 같이 장 안에 들어가 반성하게 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랄까요. 단지 그 기간이나 분위기가 ‘어릴 때랑은 많이 다르다’ 뿐이긴 하지만, 사람이 생각하는 구조는 나이를 먹건, 시간이 흘렀건 예나 지금이나 그닥 다르진 않은가 봅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영창의 기본 원리도 이와 비슷하긴 하죠. 다만 쓸 만한 공간으로 군 내에 있는 창고를 쓴 것이 시초였고, 소량의 식량과 물만 주고 반성하라고 가둬두는 게 ‘생각의 방’과의 차이점이긴 합니다. 그리고 2000년 이전까지는 영창이 ‘생각의 방’이라기보다는 「범죄도시」에 나오는 ‘진실의 방’과 유사한 면이 없지 않았다는 것도 차이점이겠죠(...)
아무튼 영창의 출발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창고 안에 소량의 식량과 물만 넣어주고 반성하라고 가둬두는 제도가 그 출발점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군이 대한제국군으로 재편될 무렵, 육군징벌령에 근거해 등장했다가, 해방을 맞으면서 다시 군대를 갖게 되었을 때 군인사법과 병역법에 의거해 부활해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죠. 다만 당시까지 잘 정착되지 않았던 인권 의식이나, 과거 일본군에서 활동했던 인원들이 신생 국군에 대거 유입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군의 폭력성이 그대로 유입됨에 따라 2000년대 이전의 영창에서의 시궁창스러운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라 추정할 수 있을 겁니다.
3. 그래도 나은 줄 알어. 옛날이었으면 불명예 전역이여.
영창의 존재 근거는 국방개혁 2.0에 의해 개정되기 이전의 구 군인사법 제57조(징계의 종류)와 병역법 제18조(현역의 복무)였습니다. 두 조항은 각각 영창의 정의와 징계성 영창으로서의 처벌 기간, 영창 수감 기간의 병역 복무기간 미산입을 규정했습니다. 영창이 물론 70여 년의 세월 동안 존재해왔다고 하지만, 한 번도 변화가 없었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일 겁니다. 하다못해 국가의 최고 법인 헌법도 몇 번씩 개정을 했는데, 영창이라고 무슨 철떼기마냥 버티고 있을리가요.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영창 관련 규정 중 하나는 바로 ‘영창 수감기간만큼 전역이 늦춰진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규정은 민간인들도 꽤 알고 있는 사항이죠. 다만 이 규정은 생각보다 늦게 만들어진 조항입니다. 1994년 있었던 육군 53사단 장교 무장탈영사건 때부터 영창에서의 수감 기간을 군 복무기간에 미산정한다는 규정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바꿔 말하면 이전까지는 영창 수감 기간을 군 복무기간으로 인정했다는 말이 됩니다.
그리고 그 말대로였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한가지 함정이 있습니다. 바로 이겁니다.
“3번 이상 영창 갔다오면 불명예 전역 처리한다.”
영창 수감 기간을 군 복무기간으로 인정하지만, 대신 3번 이상 영창을 들락거리면 ‘과사실이 있는 불명예 전역’ 처분을 당한다는 것이 1994년 이전의 규정이었습니다. 뒷일을 생각해보면 개정된 규정보다 더 심각한 것이, 군에서 가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처벌로 건너 뛰어버리는 셈이 되기 때문이죠.
다만, 여기서 생겨난 오해가 하나 있습니다. ‘영창 3번 갔다 오면 ’빨간 줄‘ 그인다’는 것인데, 이건 사실과 다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창을 들락거렸다고 빨간 줄이 그이지는 않습니다. 이 경우는 지금도 가능한 케이스인데, 영창을 들락거리는 수준을 넘어 군 형법에 의한 형사처벌을 받게 된 경우, 영창-국군교도소-민간교도소로 이감 당하는 케이스에서 비롯된 오해입니다. 이 경우 때문에 영창을 3번 들락거리면 전과 기록이 남는다는 오해가 생긴 거죠.
여담으로 규정을 개정하면서 불명예전역에 관한 사항을 폐지할 때, 영창 수감 기간을 군 복무기간으로 인정하자는 의견이 없진 않았습니다. 다만 실현되지는 않았죠. 당시 일부 간부님들이 이 의견에 반발하고 나섰는데, 그 이유는 영창에 수감될 대상들이 ‘어차피 수감당할 거 아주 엿 먹이고 들어가서 시간이나 때우고 오겠다’라는 생각하에 죄를 저지르고 들어오면, 영창의 징계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사실 일리 있는 이유이긴 합니다. 어차피 지를 사람은 ‘처벌이 어떻건 간에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심리가 있기에, 이런 장치라도 없으면 한 번쯤 스스로에 제동을 걸 여지마저 없어지고 바로 사건·사고 증가로 연결될 가능성도 없진 않겠죠. 예컨대, 맘에 안 드는 후임이 있다고 두들겨 반 죽여버린 다음, 영창 가서 시간만 때우다 오는 사례가 없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는 겁니다. (아, 물론 우리 정예공군 전우님들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전우이기 전에 하나의 사람으로서 사랑해야 하니까요.)
한편, 국방부 소속의 육해공군과 달리 의무경찰이나, 지금은 없어진 경비교도대(경교대)‘의 경우, 자신들이 근무하는 시설의 특성이 특성인 만큼, 별도의 수용시설을 두는 대신 경찰서 유치장이나 교도소 내 독방을 영창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본인들이 관리하는 곳에서, 그리고 경교대는 여기에 더해 본인들이 관리하는 인원이 사는 곳에서 반성하는 셈이 되는 거죠. 상상해보니 기분 참 묘하겠더군요.
* ’: 경비교도대는 과거 2012년에 폐지된 의무복무 방안으로, 교도소에서의 수감자 감시, 교도 업무 보좌를 주 임무로 한 조직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순경 이상 직원 밑에 병력으로 편성되는 전의경처럼, 교정공무원 휘하 병력으로 편성되어 군 복무를 하는 조직이라 보시면 됩니다.
4. 영.창.가.자. 아니 그전에 주요군기 위반으로 군기카드 긋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징계성 영창으로서 언급을 안 할 수가 없는 군기위반자 처리 규정에 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이 글을 쓴다고 군 형법을 뒤지는 것까진 대강 예상을 했는데, 과거 모든 헌병들이 거쳐가고 지금의 군사경찰 전우님들도 다 거쳐온 행정학교 시절에 배운 내용을 도로 끄집어내 다시 볼 줄은 몰랐습니다. 행정 시절 나눠줬던 유인물과 필기본, 교육사 마크를 보니 ‘이 시절에 뭘 했나’부터 시작해 ‘이 시절을 어떻게 버틴 걸까’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한편으로는 ‘고라니교’의 교주이신 ‘고라니 교관’께서 실내학과 강의를 마친 후 등장해, 고라니 교관이 푼 고라니를 특수탄약으로 다 죽인다는 드립을 치시던, 본인 피셜로 11전비 주임원사 시절 군기 순찰 당시 군기카드 200장을 그었다는 미친 존재감을 자랑하던 김 모 상사님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아무튼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도록 하죠. 군기위반이건 잘못을 저지르건 해서 이 글을 볼 대부분의 인원인 병사가 받는 처벌은 그 수위에 따라 ‘근신-휴가 제한-영창-1계급 강등-불명예 전역’, 5단계로 구분됩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근신 수준은 사랑의 벌, 감점이고 좀 더 커지면 휴가 제한이나 군기교육이지만, 이 경우를 넘어서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다만 형사처벌을 받는 수준의 사건을 저지르는 게 아닌 이상에야, 어지간해서는 병사가 1계급 강등이나 불명예 전역 처분을 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긴 합니다. 그렇다 해도 군 생활이 인생에 있어 전부는 아니지만, 강등이나 불명예 전역과 같은 처벌을 받은 기록이 남는 건 인생에 그닥 도움이 안 될 것은 자명하죠.
우선 징계성 영창에 과는 과정을 말하기 전에, 군기위반 처리에 대해 얘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보통 군기순찰이나 그 외 경우로 군기 위반 행위가 적발되면 군기카드가 그일텐데, 군기위반은 여기서 일반군기위반과 주요군기위반으로 분류됩니다. 각각의 경우는 다음과 같이 처리됩니다.
-일반군기위반: 1개월 내 2회 적발 시 군기교육대 입과가 원칙. 현지교정으로 정상참작할 경우에는 교육대 입과 처리를 하지 아니한다. 단, 일반군기위반으로 1개월 내 2회 초과 적발 시에는 주요군기위반으로 처리.
-주요군기위반: 징계 의뢰가 원칙. 징계 권한은 소속 대대장이 가지며, 해당 대대장은 처리결과를 헌병대대장에게 통보. 여기서 처분이 둘로 갈림.
┗징계불요구: 결정 5일 내로 사유를 통보. 위반자는 주요군기위반에 의거해 군기교육대 입과.
┗징계요구: 징계 결정 확정 3일 내로 징계처분서를 통보.
이런 과정을 거쳐, 군기교육 선에서 끝날 높은 확률을 여러분의 대대장님이 신들린 컨트롤을 시전에 다 뚫어버리시고, ‘이놈만큼은 진짜 징계를 먹이고 마리라’는 투지를 불태우며 징계처분서를 날리신다면...... 예, 축하(?)드립니다. 여러분은 이제 징계성 영창에 갈 확률에 한 발짝 다가간 겁니다.
추가로 군기단속사항에 이의가 있다, 나는 누가 봐도 납득할 수밖에 없는 합당한 이유가 있는데 막무가내로 그였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이↗건↘ 너-무한거 아니냐고, C8-!”이 나오는 상황을 맞이하셨다면, 이의신청제도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위반자가 헌병대대 운영통제실로 직접 형식을 갖춰 신고하는 형태로 항소할 수 있는데, 이는 미란다 원칙과 유사한 겁니다. 경찰이 용의자 체포하면서 미란다 원칙 고지하듯이, 원칙상 군기순찰 때에도 위반처리를 하면서 이 규정을 알려주도록 되어있습니다.
물론 원칙이 이렇다고 저도 이렇게 배우긴 했는데, 실제로 이행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저는 출입통제병이라 군기위반자를 상대하기보다는 부대 출입하는 인원과 맨날 부대끼며 울고 웃고 얼굴 구기고 하번한 뒤 베레모랑 장구 풀면서 내뱉는 쌍욕과 함께 사는 몸인지라......
6. 이번엔 진짜 간다. 너.또.영.창
아무튼 이렇게 주요군기위반으로 걸리거나, 사태가 상상 이상으로 커져 징계가 결정되면, 징계위원회가 열리게 됩니다. 보통 중위급 인사관들이 모여 결정하는데, 위원장, 간사, 장교, 부사관들로 구성된 징계위원회가 처벌 수위를 결정하며, 공정성 문제를 고려해 징계대상자의 소속 소대장과 부소대장은 징계위원회에 참석이 불가합니다. 여기서 의결된 바에 따라 징계 수위가 결정되는 거죠.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바로 영창에 가진 않습니다. 의결 결과를 군법무관이 심의하는데, 군법무관의 재량으로 중도에 처벌 수위가 조정될 수도 있습니다. 그 말인즉슨, 하는 거에 따라 감형될 수도 있지만 만약 아니라면, 괘씸죄가 적용돼 속칭 ‘올려치기’를 당할 수도 있다는 말이 성립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심의를 거쳐 적법성 심사라는 이름의 서류작업이 이뤄지는데, 여기서 승인될 수도 있고 기각될 수도 있습니다. 기각 이유는 처분을 안 하겠다는 것도 있긴 하지만, 주된 이유는 서류상 갖춰야 하는 형식이 잘못되었거나 서류상 조건이 미비해 다시 쓰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렇게 ‘징계위원회 의결-군법무관 심의-서류 적법성 심사’까지 다 거친 후 지휘관의 재가가 떨어지면? 재.가.가.난.다.면?
이제 영.↗창↘↗. 확정인 겁니다.
한편, 이 얘기를 하면 십중팔구로 추가되는 탈영처분이나, 징계성 영창으로 안 끝날 사건 징계는 다음과 같이 처리됩니다.
보통 ‘탈영하면 영창간다’고 하는데, 이 부분은 전후관계가 바뀐 점이 없지 않습니다. 원래 탈영의 정식 명칭은 ‘군무이탈’로, 원칙대로면 형사처벌 대상입니다. 다만 이러한 경우를 일일이 다 형사처분으로 넘기면 일 처리하는 사람 포함해 여러 사람이 피곤해지고 여러모로 좋을 것이 없는데다가, 대부분의 탈영은 현역복무의사가 있으나 순간의 판단 착오나 실수로 ‘조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군 검찰도 이 점은 어느 정도 참작을 합니다. 그래서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군 검찰의 판단하에 단순탈영 1회까지는 기소유예 처리하고 징계성 영창으로 마무리하다보니 이런 말이 생겨난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탈영을 해도 된다는 건 아닙니다. 특히, 우리 정공 전우님들이 그럴 일은 없겠지만, 무장탈영이나 상습탈영, 성범죄 같은 중범죄는 군 검찰도 절대 기소유예로 안 끝내고 본인들이 직접 처리하기에...... 인생이 새 되는 것마저도 즐길 각오가 되어있는 도M이 아닌 이상, 본인이 거기서 일하는 게 아니라면 절대 군 검찰과 엮이는 일이 없길 바란다고 이 자리에서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징계성 영창으로 안 끝나는 경우, 다시 말해 미결수로서 영창에 갇히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영창의 범위를 초월해 교도소행입니다. 교도소는 다시 1년 6개월을 기준으로 국군교도소와 일반교도소로 갈립니다. 군사재판에서 1년 6개월 미만의 징역이나 금고를 선고받으면 국군교도소, 속칭 ‘남한산성’으로 직행합니다. 이때부터는 그 유명한 ‘빨간 줄’이 그이는거죠. 1년 6개월 이상 6년 미만의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현역에서 제2국민역으로" 분류되는데, 이렇게 되면 대상자는 군의 손을 떠나버립니다. 이들에 대한 행정-사법절차는 군사가 아닌 민사로 넘어오기에 군 관할 교도소가 아닌 법무부 소관 민간교도소로 넘겨버리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6년 이상 실형은 선고받은 경우라면, 제2국민역이고 뭐고 그딴 거 없이 군적을 아예 말소해버린 후 일반교도소 직행입니다.
* ": 신검 기준 5급입니다. 이들은 국가비상사태나 전시가 아닌 이상 소집될 일이 없습니다.
6. ??: 허리 똑바로 펴!
영창 그 자체만큼 관심이 갈 사항이 있다면, 영창에서의 생활일 겁니다. 영창에서의 생활을 보면, 의외로 사회의 유치장과 비슷한 면에 많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상할 건 없습니다. 영창의 원래 기능 중 하나가 형 집행이 이뤄지기 전까지 형(刑)이 미결된 인원을 수용하는 것인 만큼 기능적 면에서는 경찰서 유치장과 공통분모를 갖기 때문이죠. 군사경찰 전우님들은 아시겠지만, 영창에 수용된 인원이 없으면 영창 앞에 백기를 게양하는데 이는 경찰서 유치장도 동일합니다. 단지 그걸 사회에 있을 때는 세심히 볼 이유가 잘 없고, 무엇보다 경찰 생활이 ‘모자라는 물로 불 끄기’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만큼 유치장에 사람이 없는 날이 거의 없다 보니(...) 우리가 잘 못 봤을 뿐입니다.
그럼 영창에서의 생활은 어떨까요. 이번엔 이 점에 대해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창에서의 생활은 사실 반성하라고 가둬두는 게 목적인 만큼, 신체활동을 제약받는다는 점에서 1차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입창하면 난동을 부린다거나 뭐를 해서는 안 된다거나 하는 등등의 내용이 적힌 서약서를 쓰고 들어가는데, 영창 안에 있을 때는 바른 자세로 앉아 허리를 펴고 전방을 주시하라는 지시를 받습니다. 물론 아무것도 안 하고 바보마냥 무조건 앞만 보고 면벽수행 하라고 하지는 않고, 책 같은 건 읽어도 된다고는 하지만...... 여기도 조건은 붙습니다. 앞서 말한 자세를 유지하며 읽으라는 것, 그러니까 옛날 60년대 초등, 아니 국민학생들이 국어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교과서 읽듯이 하는 자세로 읽으라는 말이 됩니다. 어찌 됐든 안에 있을 때, ‘바른 자세로 허리 펴고 전방을 주시하며 앉아있을 것’을 주문받습니다.
만약 책 읽다가 허리가 앞으로 굽어진다거나 한다면? 그때는 영창을 순찰하는 헌병 전우님들이 과거 기훈단 빨모 조교로 빙의한 발성을 시전하는 걸 목격할 수도 있을 겁니다. 뭐 하도 답답한 마음에 개긴다면 모자 키스(?) 세례와 함께 “해보자는 거야?!”와 같은 말을 들을까......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70-80년대에 비하면 나아진 거긴 합니다. 뭔가 이런 말을 하면 너무 ‘꼰 to the 대’스러워지는 것 같아 그닥 내키진 않지만, 아닌 게 아니라 과거에는 양반다리가 아니라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을 것을 요구하는 곳도 있었기 때문이죠. 더 심한 경우에는, 아예 일본식 정좌 자세로 무릎 꿇고 앉아있을 것을 요구하는 곳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헌병도 엄연히 사람인지라 아주 사이코거나 도S가 아닌 이상, 과거 일상적으로 구사하던 곤봉질이나 군홧발로 날리는 발길질과 ‘삐-’ 효과음으로 처리되는 발언은 2000년대부터 사라졌습니다. 수용자랑 헌병이 무슨 척지는 관계도 아니고 어차피 대부분은 길어야 15일 있으면 나갈 인간들이라 그렇게 원수질 이유가 없기도 하니, 신체적으로 접촉하는 것 역시 과거와 달리 없어졌죠. 굳이 터치하는 거라면 수용자가 누구랑 싸운다거나, 벽에 머리를 찧으면서 자해를 시도한다거나, 갑자기 약이라도 잘못 먹은 것마냥 난동을 부리는 것 정도인데, 이 경우도 떼놓으려 하지 때리지는 않습니다.
한편으로 영창은 각종 물품을 제한하는데, 이 경우도 유치장과 원리가 똑같습니다. 물품 제한의 모든 목적은 바로 ‘자해 방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죠. 당연히 날붙이나 뾰족한 물건은 무조건 제한대상입니다. 목을 조를 수 있을 만한 도구도 다 제한대상이죠. 이런 점 때문에 칼, 가위 등은 당연히 안 되고, 침낭을 포함한 침구도 끈이 있다면 무조건 끈을 다 빼버린 상태로 사용하게 하며, 필기구 역시 사용할 때만 빌려서 쓰고 사용이 끝나면 무조건 회수하게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점은 화장실이나 샤워할 때도 적용됩니다. 화장실이 수용시설 안에 있는 데다 문이 원래 높이의 절반밖에 안 되어있어 상반신이 노출되는 구조이다 보니, 이 점에서 유치장과 유사성이 상당하고 그만큼 인권 문제로 시끄러웠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자해, 자살 방지를 위해 감시한다고는 한다지만 인간으로서 남에게 공개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까지 다 감시하는 것은 인권침해의 소지가 상당하다는 것은 엄연히 사실이지만, 이 역시 딜레마인 것이 영창을 운영하는 헌병들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자해·자살을 시도하는 경우가 하도 많아서였죠. 면도하라고 면도기를 줬더니 면도칼로 목을 그어 자살 기도하는 것 정도는 진짜 고전적인 수법이라 특별한 축어도 못 끼고, 양치하라고 치약을 줬더니 치약 튜브를 삼켜 자살을 기도하질 않나, 화장실에 볼 일 보러 간다 해서 두루마리 휴지를 줬더니 휴지를 꼬아 밧줄을 만들어 목을 매달지 않나(!), 샤워하러 간다 해서 보냈더니 비누를 삼켜 자살을 기도하는 등 온갖 기상천외한 수법으로 자해·자살 시도를 하려 해서, 결국 인권침해 논란을 감수하고 이런 규정을 유지한 것입니다. 뭐 구실 만들려고 이런 사례 지어난 게 아닌가 생각이 들 만큼 얼토당토않은 방법 천지이지만, 놀랍게도 앞서 언급한 경우는 다 실제 사롑니다. 사람이 죽으려고 작정하면 온갖 방법을 이용해 죽으려고 시도하다 보니 이렇게 한 겁니다. 이런 점에서는 헌병들도 나름 할 말은 있죠.
그렇기에 화장실 구조를 상반신이 노출되게끔 반쪽자리 문을 단 형태로 만들었고, 휴지 역시 옆에서 감시하는 헌병이 딱 쓸 만큼만 뜯어서 주는 방식을 취하는 한편, 샤워도 헌병 2명이 입회한 하에서 진행하도록 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전우님들이 생활하는 공간과 같은 보통의 샤워장처럼 나체를 다 노출시키는 구조는 아니고, 보는 눈도 시력을 고려해야 하기에(...), 몸의 2/3는 가릴 수 있게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과거 비누를 이용한 자살기도 때문에 모든 비누는 시판되는 비누를 1/4 크기로 잘라 지급하며, 샤워 시간 역시 제한됩니다. 물론 연장 신청하면 얼마든 연장 가능하지만, 이 점에 귀찮아서 짧게 갇혀있다 나오는 인원들은 ‘아C, 그냥 안 하고 만다’는 심정으로 버티는 경우도 꽤 있었다고 합니다.
7. 사실 따지고 보면 예는 그동안 법 위에 있었다니까?
여기까지 얘기를 들으셨으면, ‘왜 영창을 폐지했는가?’라는 의문이 들 겁니다. 영창이 폐지된 결정적인 이유는 실질적으로 영창에 가는 경우 중 상당수 이유와 징계성 영창을 보내는 절차가 UN 자유권 협약에 위배될 소지가 매우 높았기 때문입니다. 정확히는 UN 자유권 협약 제9조 ‘자의적 구금에 관한 사항’ 위반입니다. 자의적 구금은 법률이 정하는 합당한 이유가 아닌 개인 또는 집단의 임의 판단하에 이뤄지는 개인에 대한 모든 구속·구금 행위를 지칭하는데, 한번 자세히 알아봅시다.
보통 영창에 오는 이유는 잘못을 저질렀다거나, 위규행위를 저질러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중 지휘관의 재량 발동이라는 이유로 하여, 원래 같았으면 군기교육 선에서 끝났을 행위가 군기교육 패싱하고 바로 영창으로 건너뛰는 경우나 정말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끌려오는 경우 역시 많았습니다.
육군의 역우, 자주포나 장갑차, 전차 조종수들이 기동훈련 이후 잡혀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이유는 대부분 조종 미숙으로 기동·주차 중 사고를 내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문제는 조종 미숙에 의한 중대 사고만 있었으면 합당한 이유에 의한 거니 뭐라 안 하겠는데, 주차 중 어느 불쌍한 이병 아저씨가 중대장이 새로 뽑은 싸제 애마에 경미한 기스를 내 버린 탓에 분노한 중대장이 원래였으면 군기교육으로 끝냈을 사항을 기어이 키워서 영창으로 날려버리는 경우가 꽤 있었다는 것이었죠. 해군의 경우, 함정이 입항할 때 배를 부두에 붙이기 위해 배에서 던지는 홋줄을 부두와 연결하는데, 이 과정에서 던진 홋줄이 수병의 실수로 바다에 빠져버리는 경우가 주요 입창 사례였습니다. 원래는 과실보고 선에서 끝나는데, 이게 많이 쌓이거나 그날 지휘관의 기분이 매우 안 좋은 상황에서 걸리는 등 운이 안 좋은 경우라면, 홋줄 과실보고 한방으로도 영창에 직행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죠.
그 외에 한방에 영창 직행하는 주요 사유로는 이 글을 읽고 계실 모든 전우님들이 깨구리를 달고 나가지 않는 이상 끝까지 따라올 의무, 정치적 중립 준수 위반입니다. 특히 정치에 대한 ‘다소 과격한’ 개인 의견을 SNS에 게시하거나, 다 보는 자리에서 현직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욕한다거나 하는 등, 소주 한 병 원샷하지 않고서는 영내에서 맨정신으로 할 수 없는 정치적 행위를 시전한다? 재수 없으면 영창 선에서 끝나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사태를 경험할 수도 있을 겁니다....... 보안위규 행위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는데, 실제로 과거 의경 출신 전역자가 모 갤러리에 의경들이 무전에서 사용하는 음어표를 사진으로 찍어 올렸다가 소동이 벌어진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외에 정말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영창에 가는 경우도 있었는데, 지금 나오는 사례가 그것입니다. 어느 러시아어 어학병이 본인 직무상 언어 공부를 해야 하기에 휴가 복귀하면서 시중에서 판매되는 러시아어 교재를 반입해 왔는데, 영화 「변호인」에서나 나올 법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시중에서 멀쩡히 팔리는 어학 교재를 불온서적이라 하여 해당 병사를 보안위규로 엮어 영창으로 날려버린 겁니다. 뭐, 이 병사가 『세기와 더불어』라거나''' 『로동신문』울 반입해 온 거라면 정말 빼도박도 못하지만, 본인 직무상 필요한 교재를 이렇게 엮어버리는 경우는 뭐라 해야할지...... 사실 인문학 계열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1980년대에 있었던 실제 사례 ‘썰’인,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를 보고 사복 경찰들이 막스 베버가 칼 맑스와 이름이 비슷하니 비슷한 계열 사상가일 것이라는 지극히 0차원적인 발상으로 학생들을 닭장차에 집어넣던 짓을 생각하면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긴 합니다. 물론 이게 무슨 요즘 초등학생도 안 세울 논리구조를 따른 결과인가라는 생각은 빼고 말입니다.
* ''': 『세기와 더불어』는 김일성의 회고록입니다. 단지 회고록치고는 자신의 행적에 대한 윤색이 매우 심한, 사실상 소설을 썼다고 평가받는 회고록이라서 문제일 뿐이죠.
이러한 점 때문에 징계성 영창의 운영이 자의적 구금으로 해석될 소지가 높다는 평가를 받은 겁니다. 위 사례까지 놓고 보면 우리 헌법에 명시된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합당한 이유에 의한 처벌이 아닌 이상, 부당한 처벌이나 구금을 당하지 아니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을 정면으로 위배하고도 멀쩡히 있어온 시설이 될 수도 있겠죠.
이러한 측면뿐만 아니라 영창을 보내는 절차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 역시 있었습니다. 징계성 영창은 앞서 말한 바대로 징계위원회가 결정한 바대로 보내는 구조입니다. 문제는 중위급 인사관들이 마음만 먹으면 징계상 필요한 논의를 요식행위로 만들어버릴 여지가 있었던 것에 있었습니다. 미리 입을 맞춰 처벌을 정해놓고 논의는 형식적으로 한 뒤 징계처분서를 발부해버리는 방식 역시 충분히 쓸 수 있었기에 논란이 있었던 것이죠.
결국 상기한 이유 때문에 2010년대 초반, 국회에서 영창을 없애자는 안건이 한번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2018년 발표된 국방개혁 2.0이 나오기 전에 이미 이런 논의가 있었는데, 당시에는 딱 1표가 모자라 합헌 처리되었고 몇 년간 더 있어왔던 거죠. 하지만 당시의 발의가 훗날 2020년에 이뤄진 징계성 영창 폐지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여하튼 이러한 논의 이후 2018년 발표된 국방개혁 2.0에 따라 2020년 8월 5일자로 징계성 영창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군사재판에서 형이 확정 안 된 미결수를 수용하는 데에만 역할이 국한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병사에 대한 처벌 규정은 지금과 같은 형태의 ‘근신-휴가제한-강등-불명예전역’에 더해 ‘정직’, ‘급여의 20% 선 내에서의 감봉 또는 견책’이 신설된 것이죠.
원래 계획과 달리 원고가 잘 안 써져서 이전에 계속 이어쓰던 것을 마저 완성해 업로드했습니다. 쓰고 보니 재수 없으면 날아가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발 그런 일이 안 일어나기를 빌어봅니다. 원래는 이것 때문에 업로드하지 말까 싶었는데, ‘인생 뭐 있나!’ 싶은 오기가 있어서, 또 한 번쯤은 다뤄보고 싶었기에 올려봅니다. 계획에 예정되어있는 글은 최대한 퀄리티 보장하는 선 안에서 작성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변변찮은 글 읽어주신 전우님들께 감사하다는 말과 저는 물러가 보겠습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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